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정 Aug 09. 2024

난 쪽팔려, 내 가족이

콩가루 집안 속 개 같은 내 인생

나는 결혼은 하고 싶지만,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딸을 감정쓰레기통 취급하는 엄마, 도박 중독으로 집 안을 풍비박산 내버린 후 감감무소식인 아빠, 그 둘 사이에서 미쳐버린 형제까지. 온 가족이 한날, 한시에 모이는 행사만큼 끔찍한 자리는 없을 테니까.


이혼 후, 이따금씩 내 훗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엄마는 "오빠 손 잡고 걸어가라"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댔다. 아빠가 없으면 없는 거지. 저 병신 같은 새끼 손을 잡고 내 생에 가장 소중한 걸음을 내딛으라니. 상상만으로 환멸이 난다. 혼주석에는 이모부를 앉히겠단다. 외갓집은 왕래가 잦지 않았다. 태어나 총 몇 번을 만났는지 손가락, 발가락만으로 충분히 셀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름도 모르는 친척 어른이 왜 내 아비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다 한 번 연락이 닿으면 물어뜯기 바쁘다가도, 서로의 자녀 결혼식에서는 하하 호호 웃어대는 엄마와 이모들도 거북했다. 인간관계 선이 뚜렷했기에 초대하고 싶은 지인도 많지 않았다. 행복하려고 하는 결혼에 '식'이 끼어드니 골치 아픈 것 투성이었다.


그러던 중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코로나(COVID-19). 당시 거리두기 2, 3단계에서 위험도가 낮아지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라 내게는 꼴 보기 싫은 하객들을 쳐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웨딩 커뮤니티에서 우연히 소규모 예식장을 발견했고, 방문했고, 그날 바로 계약해 버렸다. 수용 가능한 인원은 총 99명. 엄마에겐 속상한 척 우는 소리를 내며 '가족 인원을 20명 이내로 정리해라' 통보했다. 나의 결혼과 그녀의 재혼 시기가 겹친 덕에 평소보다 내게 관심이 덜어져 모든 게 수월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준비가 끝나고 한창 청첩장을 돌리던 때, 엄마로부터 황당한 강요를 받았다. "오빠 친구 한 명이 참석할 예정이니 자리를 비워두라"는. 대구에서 서울 예식장까지 그 친구가 데려다 주기로 했는데, 내려주고 그냥 갈 순 없으니 내 결혼식에 함께 와야겠다는 거였다. 인원 제한 탓에 친구도, 가족도 다 부르지 못하는 상황에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형제의 친구를 초대하라니. 게다가 서른 처먹고 혼자 기차로 오면 될 일을 왜 친구가 바래다줘야 하는 거지? 온통 이해하기 힘든 뻘소리였다. 더 웃긴 건 본인 손님 정리에는 그토록 쿨하던 엄마가, 아들 새끼 친구를 못 오게 하니 "대체 그게 왜 안 되냐"며 고함을 쳤다는 거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가족 그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는 아이였다. 고막에 피가 나도록 소리쳐 미칠 것 같아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일 뿐. "친구랑 와야 하는 상황이라면 니가 안 오면 된다"며 명단에 기재하지 않은 하객은 출입을 막겠다 선언했다. 결국 그 친구는 결혼식에 오지 않았다.


솔직한 내 심정을 글로나마 끄적여보자면, 그날 오빠에게 일이 생겨 내 결혼식에 오지 않길 바랐다. 평소처럼 술이 떡이 돼 일어나지 못하기를, 차가 막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기를.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라도 도착하지 못하길 바랐다. 만천하에 '저 인간이 내 형제예요.'라고 밝히고 싶지 않았다. 행여나 외할아버지 장례식날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사촌 오빠들에게 미리 연락해 "혹시 그가 취한다면 꼭 밖으로 끌어내달라" 신신당부했다.


내 기도는 통하지 않았다. 그가 예식 시작도 전에 도착했다. 등교도, 출퇴근 시간도 지키는 법이 없더니 하필 그날은 기막히게 성실했다. 저 혼자 뭐가 그리 애틋한지 시작부터 끝까지 제일 앞에서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져 속이 울렁거렸다. 방문한 하객들과 차례대로 사진을 찍던 중 갑자기 내 옆에 와 어깨에 손을 얹은 채 친한 척을 하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설마 니 결혼식날까지 취해서 오겠냐"던 사촌들의 말이 무색하게 다가오는 그의 발걸음에서 알코올 냄새가 진동을 했기 때문이다.


기어이 부어라 마신 거다. 더럽다. 역겹다. 아무런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한들, 그건 내게 중요치 않았다. 신이 있다면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따위 인간들 틈에서 자라도록 내던져놨냐 묻고 싶다. 손님들과 웃고 떠들다가도 반쯤 정신 나갔을 오빠의 모습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손에 땀이 고였다.


그날 나는, 콩가루 집안에서 태어난 딸년 주제에 감히 결혼식을 한다는 게 얼마나 가슴 졸이는 불안의 연속인지 똑똑히 배웠다.


정말이지.. 개 같은 인생이었노라 말하고 싶다.

쪽팔린다, 내 가족이

이전 10화 아픈 손가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