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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 Aug 13. 2024

오빠가 사라졌다

도대체 네 말에 진실이란 게 있기나 할까

결혼 후 그토록 원하던 안정감을 되찾았다. 예식을 위해 만들었던 상견례 자리가, 함께 한복을 맞추는 시간이, 가족들과 무언가를 조율하는 과정이 끝나니 비로소 평온해졌다. 매일 빼곡하게 웃었다. 나로 인해 온 집안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일 일은 더 이상 없다 생각하니, 입꼬리가 절로 가벼워졌다.


파괴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대게 극단적으로 갈린다. 최대한 빨리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쪽과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나는 전자에 속했다. 적어도 배우자는 내가 선택할 수 있으니까. 천운이었다. 지금의 신랑을 만난 건. 서로를 뜨겁게 사랑해 결혼한 부모 사이에 태어나 다정하고 반듯하게 자란 남자. 그가 건네는 온기는 각진 내 모서리를 말랑하게 녹여 자꾸만 더 동그랗게 만들어 버리곤 했다. 그렇게 나는 온전한 "행복"이라는 게 뭔지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조함을 잔뜩 머금은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엄마였다. 오빠가 일주일째 연락이 되지 않는단다.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며 내게 연락한 것이다. 그는 내가 결혼하던 시기쯤 독립했었다. 친구랑 타지에서 도배를 배운댔나, 어쩐댔나... 혼자 사는 30대 아들의 소식을 고작 며칠 확인하지 못한 탓에 이렇게나 호들갑이라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아 바쁜갑지"

"아이다.. 오빠야 이렇게 연락 안 된 적 없었다.."

"지가 나이가 몇 갠데 연락 좀 안 된다고 호들갑인데?"

"내가 전화하면 꼬박꼬박 받았었는데..."


가족 연락이라면 의도적으로 피하는 내 입장에서는 사실 그리 큰 일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그가 본인 연락을 안 받을 리 없다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사라졌다 한들 날더러 어쩌라는 건지... 좀 더 기다려보자며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끊은 후에도 시간은 흘렀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해가 지고 다시 뜨기를 몇 차례나 반복하는 동안 오빠는 나타나지 않았다. '진짜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나 역시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20년을 부대끼며 살아 놓고 그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아들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엄마도 다를 바 없었다. 그가 일하고 있는 곳이 어딘지, 지내고 있다는 집 주소는 뭔지, 함께 일한다는 친구의 연락처는 뭔지, 종종 만나는 다른 이들은 없는지. 갖고 있는 정보가 전혀 없었다. 학창 시절, 유일하게 나와 번호를 교환했던 오빠 친구에게 연락했더니 '애가 점점 거짓말만 하고 이상해져서 아마 연락하고 지내는 동창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답장을 받았다. 참 인생 한 번 더럽게 병신같이 도 살았다.


엄마는 졸업앨범을 찾기 시작했다. 타지에 가 함께 일하기로 한 친구를 '고등학교 동창'이라 말한 적이 있단다. 옛날 졸업앨범에는 전교생 연락처와 주소지가 다 나와있었으니, 그 아이 것도 있을 거라며. "요즘엔 그런 거 없다"고 만류했지만 기어이 방구석에서 앨범을 꺼냈다. 당연히 개인정보는 적혀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뭐라도 알아내야겠다며 첫 장부터 끝장까지 넘겨보길 반복했다. 그러더니 이상하단다. 졸업생 목록에 그 친구가 없다고. 분명히 고등학교 동창이라 했고, 오빠와 함께 일하는 게 고마워 밥도 몇 번 사줬었다고. 얼굴도, 이름도 똑똑히 기억하는데 그런 사람이 졸업 앨범 속에 아예 없다고. 오빠 친구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졸업생 중 이 사람을 아냐고. 아니? 그런 이름은 처음 듣는단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본인과 가장 친했는데, 모르는 친구가 있었을 리 없다고 말이다. 그럼 대체 왜 엄마에게 그를 동창이라 소개한 걸까? 그 사람은 대체 어디서 알게 된 사람인 걸까?


그렇게 오빠가 사라졌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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