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정 Aug 16. 2024

실종신고 좀 하려고 하는데요

차라리 이대로 영영 사라져 주면 좋겠어

가만히 앉아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수 없었던 엄마는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는 곳에 직접 가봐야겠다며 주민센터로 가 오빠의 등본을 발급받았다. 손에 쥐어진 종이 한 장. 그 안에는 또 다른 진실이 펼쳐져 있었다. 타지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던 그의 거주지가 본가 근처로 옮겨져 있는 게 아닌가. 차로 겨우 10분 남짓한 거리. 그는 왜 가족들을 속여가며 이리도 가까운 곳에 숨어있었던 걸까.


무턱대고 찾아갔다가
더러운 꼴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무언가 미심쩍다며 만류하는 내 연락을 뒤로하고, 엄마는 등본 속 주소지로 향했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고, 연신 소리쳐 봤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단다. 우편함과 현관 아래 켜켜이 쌓인 고지서. 그것들을 펼쳐보니 얼마나 밀렸는지 알 수 없는 공과금으로 빼곡했다고. 그리고 그 모든 독촉은 오빠의 이름 세 글자를 향하고 있었다고 말이다.


거처를 찾아냈음에도 그의 행방은 묘연했다. 우편물이 쌓인 모양새를 보니 발길을 끊은 지 꽤 된 것 같은 상황. 아들을 꼭 찾아야겠다는 엄마는 그 집 앞에 죽치고 앉아 긴 시간을 보냈고, 서울살이 중인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 물론 가까운 곳에 지내고 있었다 한들 내 태도는 달라질 것 없었겠지만. 그녀의 불안은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아비를 닮아 도박을 한 게 아닐까, 그래서 빚쟁이들에게 쫓기고 있는 건 아닐까, 네 아빠도 예전에 그런 적이 있었다며 하루에도 몇 통씩 내게 전화해 벌벌 떨었다. 이번에도 신기하리만큼 아무렇지 않은 건 나뿐이었다. 엄마가 낳은 또 다른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 외할아버지 장례식 이후, 이미 스스로를 외동이라 여기며 살아온 내겐 되려 반가운 소식이기도 했다. 제 손으로 빚을 졌다면 알아서 갚으면 될 일이고, 채무를 불이행하고 있다면 어디 잡혀갔대도 싸지. 지 인생 지 손으로 아작 내겠다는데 나라고 별 수 있나. 차라리 이대로 영영 사라져 준다면 오히려 고맙겠다 여겼다.


그 사이, 엄마의 일상은 점점 무너져 내렸다. 차마 재혼한 배우자에게 제 자식의 상황을 알리지 못해 틈만 나면 연락을 해대는 바람에 나 역시 고역이었다. 결국 우리는 실종신고를 택했다. 이미 수일이 지난 터라 더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상황. 절차는 꽤 간단했다. 112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고, 경찰이 주는 서류를 직접 작성했으며, 그렇게 접수가 마무리 됐다. 생애 첫 신고라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는데, 여자 혼자 있는 집에 남자 경찰이 세 명씩이나 들어와 서류를 작성하게 했다는 것과 그들이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신랑에게 전화해 "이제 접수 다 끝났다"고 알렸더니, 신고 직후 누구랑 무슨 이유로 통화를 했냐며 나를 의심하는 듯한 질문을 했단 거다. 거지 같은 형제 덕에 별 꼴을 다 겪는다 싶다.


그들은 제일 먼저 오빠의 휴대전화를 조회했다. 전원이 꺼져있어 위치파악이 되지 않는다고, 혹시나 휴대폰을 사용하게 되면 바로 추적 후 연락을 주겠다 말했다. 이후 경찰은 그의 집도 수색했다. 같이 들어가서 볼 수 없냐는 엄마의 요구는 거절당했단다. 혹시나 실제 거주자가 아니라면, 남의 집에 들어온 게 되니까. 답답했던 엄마는 "그럼 신발 한 켤레만 보여주세요. 신발만 봐도 우리 아들건지 알 수 있는데... 제발 여기 살았던 게 맞는지만 알 수 있게 해 달라"며 사정했지만 그 부탁도 대차게 무시당했단다. 원칙을 잘 지킨다 해야 할지, 융통성이 없다 해야 할지, 참 모르겠는 노릇이다. 건진 것 하나 없이 또 며칠의 날이 저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경록 씨 실종 신고하신 동생분 맞으시죠?
김경록 씨 찾았습니다.
이전 12화 오빠가 사라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