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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Oct 01. 2021

과학의 탄생

야마모토 요시타카

이 책 ‘과학의 탄생’은 원제가 ‘자력과 중력의 발견’으로서 야마모토 요시타카라는 일본인의 저작으로 약 870 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전체적으로 자기력에 중점을 두어 근대 과학의 탄생을 서술한 특징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은 3부작 중의 하나이다. 근대 과학의 탄생에 대해 저자는 모두 2500쪽이 넘는 방대한 양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보통 뉴턴의 만유인력이 어떻게 도출되었는지를 보통 갈릴레이, 데카르트 등의 기존 잘 알려진 학자들 중심으로 역사적으로 끌어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그런 방법으로는 뉴턴이 힘의 개념을 어떻게 끌어내었는지 알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어떤 힘의 개념이 있고 그러한 힘에 대한 적극적인 관찰의 시도가, 비록 잘 알려지지는 않았어도 더 중심적인 이유가 될 것이라는 얘기이다. 저자는 그 점을 찍어내어 방대한 자료를 동원하여 설득력 있게 몰아간다. 저자는 자기력이 근대 과학의 탄생에 중요한 기여가 있었다고 판단하였다. 길버트의 예를 보면 분명히 그러한 면이 있고 그가 지동설을 신봉하고 왜 지구가 자전하는지를 자력으로 설명한 부분이 오늘날 관점에서는 틀렸을지라도 그가 자기력의 발전적 연구를 수행하고 후대 특히 갈릴레이와 케플러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전자기력이 왜 뉴턴의 중력보다 약 200년 후가 되어서야 이해하게 되었는지 왜 고대에서 근대 초기까지도, 심지어 길버트까지, 자력 현상을 영혼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오늘날에서야 이해한다. 중력과 전자기력의 힘의 크기는 중력이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작다. 힘의 절대 크기로서 중력이 10의 마이너스 38승이라면 전자기력은 10의 마이너스 2승으로서 전자기력이 매우 크다. 바로 이것이 자력에 의한 현상에의 작용은 고대로부터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이고 중력 현상에서의 물체의 움직임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중력은 원격력으로 그냥 치부될 수 있었고 전자기력은 장의 개념 없이 그 이해가 가능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론에서의 휜 공간의 개념이 바로 중력에서 장의 개념이다. 20세기 들어와서 중력도 장의 개념으로 이해된 것이다. 이로부터 중력파는 일반 상대론이 나온 지 100년 만에야 관측되었다. 그만큼 작은 힘이다.


고대부터 자석이 철을 잡아당기는 현상을 신비한 것으로 생각했다. 물질들이 서로 접촉을 통해 밀거나 당기는 것 없이 서로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석이 영혼을 가진 것으로 생각했다. 운동이란 접촉에 의하지 않고 일어날 수 없는 것이므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석과 전기 현상은 고래로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이들 현상들에 대해서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 이래 괄목할 만하게 새로운 사실을 기술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까지도 없었다. 


BC70년 경 루크레티우스는 원자론에 기초해 자석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자석에 철가루가 붙는 현상을 자석에서 나온 원자들이 공간이 비게 만들고 철에서 나온 원자들은 빈 공간으로 흘러들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어 철가루가 이동한다. 자석의 인력을 설명한 것으로 척력은 설명하지 못한다. 물론 척력에 대해는 철에 청동이 섞이면 그렇다는 설명을 제시한다. 왜 자석이 철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가에 대해 철은 다른 금속에 비해 무게가 중간쯤으로 적당해서 그렇다는 논리를 편다. 물론 오늘날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틀린 것이라도 원자론의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기술한 최초의 기록에 의의가 있다. 천칠백 년 후의 데카르트의 설명도 이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아무런 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항해 시대의 16세기엔 편각과 복각이 알려져 자침이 북쪽을 가리키는 현상이 하늘의 영향이라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편각과 복각의 발견은 지역마다 다른 각들의 정보를 수집하도록 유도했고 이 정보는 항해를 위해 필수적인 데이터가 되었다. 영국의 윌리엄 길버트는 1600년 자석과 전기 현상을 관찰 등을 통하여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어 책을 낸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간간이 문헌을 통하여 나타나는 반복적인 설명의 중세적인 사고의 틀에서 깨어난 첫 번째 사례였다. 


길버트는 지동설 추종자로서 지구가 왜 어떻게 움직이는 가를 알고자 했다. 나침반을 사용하는 항법사, 제작에 관여한 금속 주조 공과 용광로 작업자들을 직접 접촉하여 정보를 끌어내고 직접 실험을 하였다. 자화된 철이 저절로 회전 운동하면서 특정 방향을 가리킴을 발견하고 지구 위에서 나침반의 바늘이 움직이는 것과 같이 동작함을 알아내어 지구가 거대한 자석일 것이라는 추론을 하였다. 지구는 N/S의 북극과 남극으로 이루어져 있는 거대 자석임을 주장하여 자극이 물리적으로 축을 이루어 지구가 자전하게 된다고 하였다. 지동설대로 지구가 움직일 수 있는지에 자연 철학적 설명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그는 더 나아가 자력이 온 우주에 퍼져 있어 모든 현상을 지배한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관점은 새로운 시도로서 후대 케플러, 갈릴레이, 뉴턴 등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무엇인가가 퍼져 있어 이것이 우주의 현상을 지배한다는 생각 자체가 기존의 생각을 뒤엎는 것으로 오늘날 말하는 장의 개념과 닮아있다.


  이와 아울러 길버트는 자력보다 훨씬 미약한 전기력의 탐구를 위해 전기를 띤 물체를 바늘에 접근시켜 바늘이 움직이는 여부를 확인하여 전기를 띤 물체를 알아내는 최초의 검전기를 개발하였다. 이로부터 전기를 띤 물체를 알아내어 종류를 작성하였다. 길버트는 전기와 자기 연구의 방향을 처음으로 제시한 인물로서 전자기 연구에 중세의 잠을 깨워 근대 과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오늘날 실험과학의 창시자로 여겨지고 자연 지식과 기술 결합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인식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길버트의 역사적인 업적이 있기까지 숨은(잘 알려지지 않은) 조력자와 당시의 선구적인 그들의 일들이 있었다. 물론 변화의 상황은 르네상스로부터 대충 시작되지만 이태리에서의 문예부흥이 수사학이나 예술의 관점에서 부흥이 이루어질 때 독일에서는 천문학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포이어바흐, 레기오몬타누스 등은 직접 관측을 통하여 새로운 알마낵을 만들고 후자는 삼각법에 관한 책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그들이 바람을 일으킨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당시에 관측을 직접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중세를 벗어나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앞선 행동들이었고 이런 선구적 행동들이 있음으로 뉴턴의 만유인력이 도출되었을 것이다.


물론 유명 학자들의 거대한 족적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공헌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고 하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니까 만유인력이라는 인류 역사상 드문 사건이 도출된 이유는 과학의 발전을 위해 숨은 조력자들이 있었고 심지어 당시의 문화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바로 이점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그의 주장을 위해 총 3부작의 작품을 내놓았다. 1부가 ‘과학의 탄생’, 2부가 ‘16세기 문화혁명’, 3부가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이다. 현재 3부의 2편이 출간되지 않았고 모두 나왔다. 각각은 9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이다. 일본의 깊이를 알 수 있는 전형적인 예일 것이다. 한 주제로 이토록 깊게 상황을 파헤치는 저자는 사회가 지성을 존중하지 않는 한 결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의 20년 간에 걸친 불굴의 노력에 찬사를 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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