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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Feb 17. 2021

목적론적 세계관

목적론적 세계관

파르메니데스의 변화 부정은 그가 존재론을 바탕으로 이끌어낸 논증의 결과였으나, 일각에서는 운동의 설명이 까다로워 이를 부정하는 수단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 어렵기에, 플라톤 역시 이 문제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플라톤은 세계의 다양한 변화는 실재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실재는 변하지 않는 초월적 영역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과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의 변화를 단순히 무시하거나 변화가 비현실적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플라톤의 이데아는 감각적인 사물의 불필요한 복제에 불과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 현상에 깊이 관심을 가지고, 어떤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이 왜 존재하며,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상태가 되었는지를 아는 것이었다. 감각에 기초하여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인간의 사고 범위인 모든 것을 수집하려 했다. 우주는 플라톤이 언급한 것처럼 정돈되고 완벽하며 변함없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의 자연 세계는 다채롭고 역동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지구와 우주가 서로 다른 본성을 지닌다고 봤다. 그래서 그의 주 관심은 두 가지 다른 세계를 어떻게 조화롭게 통합할 것인가였다. 이를 위해 자연 세계를 설명하는 포괄적인 분류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변화를 이해하려면 먼저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을 리스트업하는 것이 필요했다.


세상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분류해도 변화를 일관되게 설명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몇 가지 기본 원칙으로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의 모든 변화를 기본 원칙에 따라 설명하고자 했다. 모든 운동(변화)을 무생물과 생물의 운동으로 크게 분류하고, 생물을 다시 식물과 동물로 나누었으며, 인간을 동물 중 특별한 종으로 분류했다. 운동, 생명의 탄생과 존속 과정, 인공적으로 생성된 물체, 자연의 작용에 따른 변화 등 다양한 움직임을 하나의 법칙으로 통합하고자 했으며 이 과정에서 인과성을 중심 원칙으로 삼았다. 세계 이해의 핵심은 인과적이다.


알다시피, 고대의 운동 개념은 현대 물리학에서 다루는 무생물의 운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를 거대한 유기체로 보고 지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변화를 운동으로 간주했다. 운동은 공간과 시간에 따라 변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물체의 이동, 생식, 동식물의 성장과 부패 등을 포괄한다. 이 모든 유형의 운동을 포괄하고 단일한 방식으로 설명하려 했으며 운동의 목적, 즉 왜 일어나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모든 운동은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 목적을 알아내려는 노력은 인간의 호기심 중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이 목적론적 세계관은 플라톤의 우주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탐구는 사물의 운동을 이해하고 사물들 사이의 연계성을 규정하는 상호 연결된 접근 방식이었다. 따라서 특정 학문보다는 다양한 학문 분야와 자연의 여러 측면 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접근은 통일성을 중시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기준은 사회 과학에서도 지속되며, 모든 학문을 목적론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정지 상태뿐만 아니라 운동과 변화도 설명하려는 노력을 통해 학문의 통합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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