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희 Feb 26. 2021

물체의 운동

무생물 2: 물리학

운동은 두 상태 간의 진행으로서 변화이다. 운동에 관해서 여러 관점이 있는데 엘레아학파는 운동(또는 변화)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였고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및 원자론자들은 혼합과 분리만을 강조하고 질적 변화는 인정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 학파 중의 메가라학파는 운동을 분할이 불가능한 단일 운동으로 나눔으로 운동의 불연속성을 인정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의 실재성과 연속성 모두를 주장하여 기존 사상과 각을 세웠다. 지구 상에서 일어나는 각종 기상 현상에서의 변화를 운동이라 여길 수 있고 그 외에 무생물의 운동은 물체의 운동에 관한 것이다. 이 운동은 인위적으로 물체를 움직이게 하는 경우와 자연적으로 물체가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경우로서 기상 현상과는 다르다. 자연의 모든 변화와 운동에 기본 원리인 4 원인이 적용되므로 지표면에서 물체의 운동도 이 원리에 준거하여 설명되어 운동에 목적인이 반드시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을 자연적 운동과 비자연적 운동으로 나누었다. 자연적인 운동이란 지구 상에서는 직선운동이고 우주에서는 원운동이다. 직선운동은 무거운 것은 아래로 하강하고 가벼운 것은 위로 상승한다. 원운동은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지속하는 불멸의 것이었다. 직선과 원운동이 아닌 것은 모두 비자연(또는 강제적) 운동으로 분류하였다. 특히 지표면에서 일어나는 상승과 하강 운동을 제외한 여타 운동은 모두 강제적 운동으로 분류할 수 있다.


흙, 물, 공기 및 불의 4 원소 중에 흙과 물은 무거우므로 하강하며 공기와 불은 가벼우므로 상승한다. 무거우면 하강하지만, 더 무거운 것은 더 빨리 하강하므로 지구는 중심에서 지표면까지 흙과 물의 순으로 덮여 있다. 가벼운 것들도 상승하는 속도가 가벼움의 정도에 비례한다. 그래서 지구는 중심으로부터 무거운 순으로 원소가 배열되어 있다. 흙의 중심부는 곧 지구의 중심이고 불이 있는 곳의 바깥쪽은 달의 안쪽으로서 달은 지구와 우주를 나누는 분기점이다. 낙하하는 물체의 목적인은 무거움이므로 무게가 다른 두 물체를 같은 지점에서 떨어뜨릴 때, 무거운 것이 먼저 떨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가 운동하는 과정에서 물체의 속도와 시간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운동 a는 물체 0.5b를 거리 2c만큼 움직이는 데 시간 d가, 0.5b를 거리 c만큼 움직이는 데 시간 0.5d가 걸린다. 또한 b를 거리 0.5c만큼 움직이는 데 시간 0.5d, 운동 0.5a는 0.5b를 거리 c만큼 움직이는데 시간 d가 걸릴 것이다.’ 오늘날 용어로 ‘운동 a는 힘(F)이고 움직이는 물체 b는 질량(m), c는 그것이 움직인 거리(x), 시간 d는 t로 표시할 수 있다. 그러므로 ’F는 0.5m의 질량을 가진 물체는 거리 2x만큼 움직이는데, 시간 t, 0.5m을 x만큼 움직이는데 0.5t가 걸린다. 또한 m을 0.5x만큼 움직이는 데 0.5t가 소요되고 0.5F는 0.5m를 x만큼 움직이는데 t가 소요된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속도는 x/t이므로 주어진 네 식은 모두 F = mv로 귀결된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자연학 저작에서 물체의 운동은 식 F = mv로 분명히 표현하고 있다. F = mv로 표현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학은 F = ma로 표시되는 뉴턴의 운동학과 대비된다. 


이 식을 설명하면, 우선 질량이 무거울수록 물체를 움직이기 힘들므로 힘은 질량의 크기에 비례한다. 힘에 비례하는 다른 변수를 찾기 위해서 질량을 고정하고 힘의 크기를 변화시켜 물체가 어떻게 운동하는지를 보면 힘을 더 주면 더 멀리 가서 멈춘다. 힘을 더 줄수록 움직인 거리가 커지지만 정지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힘의 강약에 상관없이 같다. 즉, 힘을 더 주면 같은 시간에 움직인 거리가 늘어난다. 그러므로 힘은 단위 시간당 거리에 비례하는데 단위 시간당 거리는 속력(또는 속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힘이 질량과 속도의 곱에 비례하는 양으로 정의할 수 있었다. 지구 상 어디에서도 움직이는 물체는 결국은 정지하므로 이 식이 상식적으로 맞다. 지구 상에서 피할 수 없는 중력의 존재나 지구 상의 모든 물체는 결국 정지한다는 사실이 마찰력에 기인한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체가 운동할 때 마찰을 고려하면 F = mv가 된다는데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지구 상의 어디에서도 마찰이 없는 곳은 없으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찰되는 힘과 질량과 속도의 올바른 관계식을 구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의 운동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내려 했다. 어떤 것이 움직이는 것은 다른 것에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별 의문 없이 단순하게 운동을 정의할 수도 있다. 자동차가 달린다든지 비행기가 난다든지 하는 것은 무엇에 대하여 움직이는 가이다. 자동차의 속도는 도로가 기준이 되고 비행기는 지구가 기준이 된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기준계는 움직이는 대상 물체의 주위에 있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다. 만약 지상의 모든 운동이 지구에 대해 상대적이라면 지구가 회전한다는 사실을 고려치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물체의 운동에 지구가 유일한 기준계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모든 운동에 적용될 수 있는 어떠한 임의의 기준계는 절대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운동을 정의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계가 있는가는 의문이다. 이 문제에 정확히 답을 내리는 것은 오늘날에도 쉽지 않다. 그만큼 아리스토텔레스는 심오한 질문에 답을 내려고 시도하였다. 


특징적인 주장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허공(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물체가 운동할 때 속도는 매체의 밀도와 물체의 무게에 따라 달라진다. 무거운 물체는 가벼운 물체보다 매체로 작용하는 공간을 더 빠르게 통과한다. 예로 물체가 공기 중에서 떨어질 때보다, 물속에서 떨어질 때 속도가 느려진다. 매질의 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물체의 속도는 작아지므로 속도는 매질의 밀도에 반비례한다. 만약 밀도가 0이면, 즉, 진공상태이면, 속도가 무한대가 되어 물리적으로 무의미하므로 진공은 존재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찰로부터 매질에서의 물체의 속력이 매질의 농도에 반비례한다고 결론지었다. 


물체가 팽창과 수축하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질적인 변화로 설명을 시도한다. 같은 재료의 물체는 감각되는 덩어리의 크기가 공간을 더 차지하거나 덜 차지할 수가 있다. 외부로부터 어떤 것이 가해짐이 없이 팽창과 수축을 할 수 있는데 가능한 정도의 밀도로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재료 때문에 가능하다.


물체의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 왜, 어떻게 움직이는지와 더불어 무한, 시간 및 공간과 더불어 연속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며 연속적이며 무한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무한은 부가와 분할의 측면에서 존재한다. 부가적 측면이란 부분에 부분이 더해지는 것을 의미하고 분할은 글자 그대로 나눌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부가의 측면에서 무한대는 수가 해당하겠고 분할의 측면에서 무한대는 공간이 해당한다. 시간은 둘 다에 해당한다. 만약 무한대가 없다면 시간의 시작과 끝이 존재할 것이며, 크기는 크기가 아닌 것으로 분할이 가능하고 무한대의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무한은 반드시 존재한다. 공간적 크기의 현실태는 유한하나 분할 가능성의 측면에서는 무한하다. 무한은 그것의 일부가 다른 일부 다음에 생겨나므로 존재하는 영원한 현실태로서 사실로서는 존재하지 않고 연속적인 생성 상태로 존재한다. 시간과 생성의 연속인 경우는 일부가 다른 일부 다음에 확보되므로 존재한다. 그러나 무한은 존재하지만, 개체로서 실체로 보일 수 있지는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간과는 다른 개념인 장소(place)의 존재를 다음과 같이 증명한다. 한 물체가 있는 곳에 다른 물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장소는 물체들과는 다른 어떤 존재이다. 각 원소는 고유의 어떤 장소에 멈춰있으려 하는 성향 때문에 장소에 의미가 더한다. 위와 아래는 단지 상대적인 의미를 넘어서 위는 불이 움직이는 쪽이고 아래는 흙이 움직이는 쪽이다. 이처럼 고유의 장소가 있고 당연히 공통의 장소 또한 존재한다. 각 사물은 실제로 하나가 다른 하나 안에 있는 식으로 구성된 장소들의 겹속에 존재하며 사물 자체를 둘러싼 것이 장소이다. (흙, 물, 공기, 불의 무거운 순서대로 존재하는 지구를 상상) 그렇다면 장소는 무엇인가? 장소는 재료나 형상이 아니고 둘러싸는 것의 맨 처음의 움직이지 않는 한계로서, 부연하면 어떤 사물의 장소는 그것을 둘러싸는 맨 처음의 움직이지 않는 물체의 내부 경계로 정의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주 안의 물리적인 모든 것은 장소 안에 있지만, 우주는 그렇지 않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이다. 실재하지 않거나 거의 실재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였다. 시간은 운동이나 변화와 동일시할 수 없는데 시간은 한 가지이고 빠르고 느린 개념이 없으나 운동은 여러 종류이고 빠르거나 느린 개념이 있다. 그럼에도 시간은 변화를 함의하고 있다. 변화가 있을 때 시간이 흐른다고 하기 때문이다. 운동이 연속적인 공간을 통해 일어나므로 연속적인 것과 같이 시간도 연속적인 운동에 시간이 존재하므로 연속적이다. 운동에서 앞과 뒤의 구분이 인지될 때 시간의 경과가 인지되므로 시간은 앞뒤와 관련된 운동의 어떤 수이다. 그러므로 시간은 운동이 지닌 셀 수 있는 측면이다. 시간은 현재에 의존하고 운동은 움직이는 물체에 의존한다. 시간은 운동의 척도이자 정지의 척도이므로 운동 가운데 있거나 정지 상태의 것들만이 시간 안에 존재한다. 현재는 본성상 과거의 끝이고 미래의 시작으로 시간은 영원하다. 물론 혼이 없으면 시간도 없다. 관찰자가 없으므로 운동이 존재할지라도 측정이 없어 시간은 없다. 


계속과 접촉의 정의는 운동에 중요하다. a가 b 뒤에 있고 그것들 사이에 같은 종류가 없으면 a는 b에 계속된다고 정의된다. 접촉은 a와 b의 극단들이 직접적으로 같은 곳에 있을 때를 이른다. 이때 접촉하는 경계가 하나이면 a는 b에다 연속이다. 그러므로 접촉은 계속을 포함하는 관계이다. 역은 성립 안 한다. 마찬가지로 연속은 접촉을 포함하지만,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전 14화 우주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