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너스 스트릿 #1 / RS_005
긍정의 힘 마라톤 10Km: 여의도 문화의 마당
Cue the music: Wildson_(Do me right) The things you do
6월, 7월, 그리고 8월. 앞으로 이 계절엔 마라톤은 자제해야겠다고, 백 번은 다짐하게 만든 경기다.
마지막 8~9km 구간은 기억에 없다.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부렸다간, 자칫하면 평생 못 뛸지도 몰라’ 끊임없이 되뇌며 주의를 기울였다. 소금 사탕도, 전신에 부은 냉수도, 수시로 마신 이온 음료도 아무 소용이 없다. 급격한 탈수의 공포, 저 아래까지 내려가 본 경험. 끝없는 어지러움, 시야 흐려짐, 구토감에 멈춰 걷다 정신 차려 다시 뛰길 반복한다. 후반 막바지는 그저 꾸역꾸역 채워낸다. 기록도 욕심도 모두 내려놓고, 오직 ‘살아 남자’는 마음 하나로.
그늘 아래 잔디에 정신을 잃고 누운 사람, 포기한 듯 걷는 사람, 되돌아가는 사람… 평소와는 달리 무수한 포기와 멈춤의 풍경이 펼쳐져, 다짐마저 마구 흔들린다. 다행히도, 1킬로미터 남았다는 안내판 앞에서 슬며시 마음이 다시 움직인다. 나름의 전력 질주로 끝까지 내달렸다. 아, 여름 마라톤은 이제 안 해. 9시 시작 경기는 거들떠도 안 볼래. 완주의 기쁨도 잠시, 통나무가 된 듯 쥐 난 다리를 푸느라 또 한 번 끙끙댄다. 긍정의 힘으로 버텨보라고 ‘긍정의 힘 마라톤’이었던가. 11번의 마라톤 중 가장 기억에 남을 경주가 될 듯하다.
보상. 보상. 오늘은 무조건 흡족한 포상으로 긍정의 마무리를 해야 한다. 평소의 마라톤 루틴대로 서점으로 향한다. 그런데 책을 사러 갔는데 맥주라니, 여긴 천국이 아닐까? 시원한 흑맥주를 뽑아 들고 오늘의 책을 읽어 나간다. 여의도 개최 마라톤은 이제 그만 와야지 했는데, 다시 와야 할 최고의 이유가 생겨버렸다.
책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의 저자 카밀라 팡은 말한다. ‘나는 나로 살아가는 중이다. 설명은 할 수 있지만, 변명은 하지 않겠다’. 우리는 서로 다를 뿐 그건 결핍이 아닌 특성일 뿐이라고 조용히 그러나 재치 있게 대화를 이끌어 나간다. 마치 마라톤 대회에서 더욱 선명히 느껴지는,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또 다른 감각을, 저자는 언어로 정교하게 옮겨놓는다. 그녀와의 술자리에 정신없이 빠져 허기감도 잊었는지, 뒤늦게 체력을 보강하러 일어선다.
오늘의 식후경은 역시 염분과 단백질 섭취에 최적화한 국밥이다. 밥 먹으러 가는 길,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우주인들. 어쩌면 ‘여기서 내려다보면 다 거기서 거기 비슷하다. 애쓰지 말고 너 생긴 대로 재밌게 살다 가~’라고 말하는 거 아닐까. 카밀라 팡과의 대화가 여운이 진했나 보다.
뜨거운 김이 서린 국밥 한 사발을 먹기 위해, 가마솥에 올라앉은듯한 더위를 이겨낸 것이다. 자리에 앉으면 주문 없이 곧 나오는 따로국밥. 단일 메뉴이기 때문이다. 고기가 안 보인다 싶어 안쪽을 푹 퍼내면 밥공기만 한 통고기가 올라온다. 가위로 슥슥 잘라 국물과 함께 떠먹으면, 금세 몸도 마음도 부드러운 살코기 마냥 사르르 긴장이 풀린다. 오랜 시간 푹푹 끓여, 깊지만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괜히 41년의 깊은 맛이 아니다.
깊은 맛이 일품인 국밥처럼, 나라는 가마솥에 푹푹 끓여 나온 다름도 나름의 맛이 나려니 생각해 보며, 긍정을 담은 한 걸음을 내디뎌본다. 오늘 나는, 나 자신을 가마솥에 푹 고아 낸 하루를 보냈다. 이제는, 천천히 깊게 익혀야 할 것들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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