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가 관광객들의 발 길이 닿지 않는 어느 골목에 들어서면, 살아생전 본 적이 없는 음식들을 팔고 있는 현지인들을 만납니다. 그분들은 그 자리에서 몇 년 혹은 몇 십 년 동안 같은 음식을 만들고 계셨겠죠. 그런데 그거 아세요? 매일 같은 음식을 팔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그 음식을 시도할 때, 관객들의 표정은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제가 느낀 바를 묘사하자면 다음과 같았어요. ‘와 저 사람한테 이 음식은 어떤 맛으로 느껴질까? 우리가 느끼는 맛있음이 전해지면 좋겠다.’
반대로 생각해 봅시다. 아주 유명한 관광지에 가게 되면, 많은 사람들에 의해 길이 닦인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다수의 사람의 데이터가 축적된 가장 최적의 즐거움일 테지요. 그런데 그런 생각해보신 적 있으세요? 우리한테는 처음 보는 신기하고 즐거우며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이를 인도하는 가이드한테도 똑같은 감정이 매번 전해질까요? 우리에게는 ’이 바다 밑으로 내려가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산호를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 순간은 어쩌면, 정말 어쩌면 전달을 위한 노력의 결과물일 수도 있겠지요.
단조롭고 반복되는 일상은 동일하겠지만, 이를 받아들이게 하는 감정의 크기는 아주 사소한 단어 하나로 차이를 가져온다고 생각합니다. ‘익숙함.‘ 어쩌면 익숙함에 젖어 우리의 일상을 버텨내는 하루로 만들 것인지 혹은 사소한 경험이나 적은 결심에 따라서 일상을 보다 풍족하게 만들 것인지.
그렇기에 저는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경험과 결심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런 것들 있잖아요. ”퇴근하고 걸어서 귀가할 거야 “라던지, ”오늘은 버스가 아니라 스쿠터를 타고 출근해 볼까?” 혹은 ”오늘은 혼술집에 가서 맥주 한 잔을 즐겨야지 “와 같은 것 경험들이요. 그리고 ”오늘은 어깨 운동을 해서 제대로 해서 내일 팔을 못 움직이게 해야지“, ”한강까지 자전거 타는 운동을 하며 야경도 즐겨볼까?”와 같은 운동 경험이 있을 수 있겠네요.
거기에 더해서 단순한 일상의 범위를 넘어서 우리 삶 전체를 주제로 한다면, 보다 장기적인 흥미로운 결심들이 우리의 하루하루 삶의 감정의 파이를 넓혀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이번 생에는 내 이름으로 된 에세이 한 권을 펴내볼 거야 “, ”스페인어를 배워서 몇 개 국을 더 재미있게 여행해 볼 거야”, “테니스를 평생의 스포츠로 삼아 나이 들어서도 즐겁게 운동할 거야”, “프리다이빙을 배워서 휴양지마다 스노클투어를 재밌게 할 거야”라는 것들이요.
한 번은 친한 형님의 청첩장을 받으러 가는 날이었어요. 단 둘이 앉아 피자에 맥주 한 잔을 했는데, 형님이 결혼을 결심한 이야기를 듣다가 어느덧 결혼은 먼 얘기라는 저의 얘기로 흘러가게 되었죠. 일련의 삶의 과정을 듣던 형님께서는, 저보고 ’순간‘을 살아간다고 하시더군요. 마주하는 찰나의 ’순간‘에 집중해서 에너지를 쏟는 것 같다고 말이었죠. 저는 그 단어가 저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순간’을 산다는 건, 모든 일상 그리고 삶 전체를 행복하고도 즐기며 살아간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어요. 아 물론, 그 이면의 ‘현실적인’, 그리고 ’안정적인‘이라는 단어는 보다 옅어진 채로 살아감은 받아들여야 하겠지만요.
그렇지만 즐거워요. 호치민에서 발리로 넘어가는 비행기 안에서 글을 쓰는 지금을 포함한 순간순간을 삶아가는 제 삶 전체가. 마주할 저의 앞날에 위기도 있겠지만 그 끝에는 결국 즐거움으로 가득할 예정이라 확신하거든요.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의 앞날도 더욱 행복함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어요. ’순간‘을 집중해서 즐거움을 느낄 때, (물론 그 과정 속에 불안감을 느낄수도 있겠지만) 두려움 이면에 자리한 행복함의 크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사실을 배워가요.
우리 순간의 행복함에 집중해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