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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나이 Jun 20. 2021

개츠비와 그린라이트

서울에 올라온 엄마와 함께 강원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하루 동안 맛있는 것을 먹고 산책하는 일정이었다. 해 질 녘, 우리는 바닷가에 위치한 카페에 앉아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는 여유를 즐겼다. 해가 태백산맥 건너로 몸을 숨기기 시작한 찰나에 어디선가 희미한 초록 불빛이 눈에 들어온다. 짙은 남색 어둠이 내려앉은 동해바다 저 멀리서 외로운 등대가 내비치는 그린라이트.


언젠가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린라이트'라는 단어의 뜻은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데이지를 갈망하는 개츠비가 이따금씩 비추곤 하던 초록 불빛에서 '그린라이트'라는 단어가 의미가 갖기 시작했음이 틀림없다던 시시콜콜한 대화.


20대 초반, 여행의 즐거움을 알아가던 때였다.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고독한 달콤함에 빠져 여행이 너무나도 고팠던 어느 해 여름. 나는 성산포 근처 캠핑카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곳에서 너를 알게 되었다. 너는 나와 나이가 같았고, 혼자서 여행을 왔다. 흰옷을 입고, 가냘픈 어깨에 무거운 배낭을 어색하게 들쳐맸다. 혼자 온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온 것처럼, 너 역시도 그러하리라. 나와 비슷한 혹은 또 다른 이유로 혼자서 이곳을 찾았겠거니 생각했다.


여느 여행이 그렇듯,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고 현실에서의 역할 따윈 내려놓은 채, 친숙한 듯 낯선 그 품에서 가까워진다. 너는 고독이 필요했던 사람이었다. 그 공감대로 우리는 성산포 달 밝은 마당 아래에서 끊이지 않은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이 즐거움은 오래가진 못할 것이라 단정 지어야만 한다. 여행에서 만난 인연은 여행지에다 묻고,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순간 모두 내려놓고 가야 한다던 성산포 어느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한마디가 어찌나 공감되던지.


간 밤의 대화를 태워버릴 듯 이글거리는 제주의 여름의 해가 뜨고, 우린 조용히 헤어졌다.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을 배우는 것도 여행의 일부지.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가면, 살면서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것처럼 그리고 또 스쳐 지나쳐도 모르는 척 살아갈 텐데. 잊지 못할 추억만을 간직한 채로 살아가면 그만일 테다.


스쿠터를 타고 성산포를 떠나 남쪽 어딘가로 이동했다. 며칠이 지나고 새로운 이야기들로 여행이 풍요로워지고 있었다. "어디야". 나를 찾던 너의 문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우린 제주에서 두 번째로 마주했다.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보니 밤늦게 도착한 쇠소깍. 보름달 가득해 어두웠지만 밝았던 그날, 한가로운 정자에 앉아 바라보았던 바다 건너 외로운 등대의 초록 불빛. 그렇게 나눴던 개츠비와 그린라이트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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