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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IC빠름 Apr 20. 2023

술을 마시면 이틀을 버려요

어린 시절부터 술을 참 좋아했다. 쓰디쓴 술은 맛이 없었으므로, 술을 마시는 자리를 좋아했다는 게 더 적합하다. 당시에는 돈도 없어서 맛있고 고급스러운 안주는 엄두도 못 냈다.  그럼에도 참 열심히 그 분위기를 마시고 취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과 모이는 자리가 불편해졌다. 돈이 생겨서 고급스러운 안주를 시키고 맛있는 술을 맛볼 수 있어졌는데, 술을 마시는 자리가 싫어졌다.


그때부터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는 날이면 이틀을 버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술을 마시는 동안에는 알코올 효과로 인해 흥이 나기는 했다. 그래서인지 다음날이면 그만큼 더 허무했다. 어제 술자리의 나는 내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제의 나답지 않은 나를 되짚어 보다 보면, 또 하루가 흘렀다. 실수는 없었지만,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실수인 것처럼 다가왔다. 덕분에 어제와 오늘을 모두 잃었다.


문득, 술을 마시지 않는 나의 삶이 궁금해졌다. 지금도 가끔 반주로 먹는 수준이지만, 아예 없어진다면 어떨지 궁금해졌다. 이틀을 버리지 않기 위해 하루 동안 술을 참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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