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달콤하다
찬 겨울이었지만 행궁동은 반짝 반짝 빛났다. 화성행궁은 밤에 가장 예쁘다. 한옥과 빛이 어우러져 더욱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겼고, 몇몇 커플들이 오빠와 나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오빠는 관광을 하러 온 것 같다며 신기해했다.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궁을 본 건 처음이었나보다. 예쁘고 신기하다고 말했다. 추위를 뚫고 우리는 예약해둔 양식집에 들어갔다. 내가 미리 예약을 한 곳이었는데 파스타가 꽤 맛있는 식당이었다. 2개의 메뉴를 시킨 후에 우리는 마스크를 벗었다.
마스크에 가려졌던 오빠의 모습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정말 한 가지 완전히 달라진 게 있다면 쌍커풀이었다! 분명 대학생 땐 쌍커풀이 없었던 오빠에게 짙은 겉쌍커풀이 생긴거다. 수술을 한 것 같지는 않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 같았다. 코는 오똑했고 오빠의 입술은 도톰했다. 사실 내가 외모에서 꼭 보는 게 있다면 입술인데, 나는 도톰한 입술을 참 좋아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좋다. 처음으로 오빠의 얼굴을 찬찬히, 그리고 자세히 보았다. 왠지 모르게 오빠에 대해 조그만 호기심이 생겼다.
그 양식당에서 우린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학생활에 대해, 그리고 취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걸로 기억한다. 오빠는 나의 안부를, 나는 오빠의 안부를 물었고, 우리는 서로를 보고 웃었다. 아마 그 식당의 누군가가 봤다면 우리를 커플, 아니면 이제 서로 알아가는 남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밥을 먹은 후, 우리는 작은 와인바에 가기로 했는데, 걸어가는 그 길이 무척이나 추웠다. 아직도 그 살을 에는 듯한 바람과 추위가 기억난다. 마치 요새 날씨처럼 참 아리고 추운 날씨였다. 우리는 살짝 떨어져서 몇 분을 걸어 작은 건물의 2층 와인바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와인을 한 잔씩 시키고, 고구마 맛탕을 시켰다. 달달한 와인과 맛탕처럼 우리 사이의 분위기도 7년 전과는 다르다고 느껴졌다. 오빠와 별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회사생활과 나의 연수원 일화같은 일상적인 얘기를 하는데도 왠지 대학생때 만났던 오빠같지가 않았다. 눈치가 빠른 나는 바로 알게 되었다. 나는 오빠에게 호감이 생겼어. 라고.
그리고 오빠에게서도 비슷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웃으면 오빠도 웃었고, 잠깐의 침묵에도 우린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의 미소를 쳐다볼 뿐이었다. 감정에 솔직한 나는 와인바의 마감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아쉽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은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 나 오빠가 좋아질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는 택시를 타고 집 앞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우리집과 오빠의 자취방은 정확히 반대방향이었지만, 오빠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택시를 타고 함께 우리 집까지 갔다. 가는 도중 오빠에게 말했다. “대학생 때 우리 엄마께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오빠가 참 좋은 사람이라고 말을 했고, 우리 엄마도 오빠같은 사람이 진국이라고 하더라.” 오빠는 살짝 부끄러운듯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다니 너무 감사하다.” 고 말했다. 오빠의 말에 따르면, 그 말을 듣고 내가 오빠에게 호감이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애프터를 잡을 수 있었다고.
오빠는 원체 안정적이고 가능성이 있는 것에만 투자를 하는 성격이라, 나의 확실히 보이는 마음에 용기를 얻은 듯했다. 전에는 내가 관심이 없어 보여서 바로 포기했다고 하니. 이번엔 내가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나보다. 그렇게 오빠는 다음번에는 광교에 가서 놀자며 자연스럽게 나와의 약속을 잡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한 후 우리는 카톡을 했다. 그 때 오빠는 완전히 우리 사이가 연애감정으로 발전될만한, 오빠로서는 용기있는 말을 했다.
”사실 대학생 때 너에게 관심이 있었어.“
아직도 이 말을 기억한다. 지금도 카톡방 맨 위로 올려보면 볼 수 있는 그 말. 나의 마음과 오빠의 마음이 서로의 손을 잡은 그 따뜻한 밤을 2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