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시작
그 이후로 우리의 관계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오빠의 말 한마디가 나에겐 큰 의미로 다가왔고, 나의 말 한마디도 오빠에겐 가슴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다가갔다. 우리는 첫 데이트 후, 매일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큰 이유는 없었다.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회사가 끝나고 집에 도착해서 오빠와 긴 시간 통화를 했다. 새벽 3~4시까지 통화를 하느라 다음날 회사에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랑의 힘이란 건 얼마나 강력한지! 오빠는 연애 초반 우리가 그렇게 새벽까지 통화를 했어도 그 땐 피곤함도 잘 못 느꼈고, 내 생각이 계속 났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누군가를 좋아한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상대방이 7년 전 처음 만난 동아리 선배라는 것도 신기했다. 사람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르는구나.를 또 한 번 느꼈던 순간이었고, 사실은 2년이 지난 아직도 신기하다. 내가 오빠의 여자친구라는게. 오빠도 내가 자신의 여자친구라는 게 아직도 신기하다고 말한다.
새벽까지 잠도 안 자고 했던 통화 중, 우리는 장난을 친 적이 있다. 나는 오빠에게 장난식으로, “나랑 데이트 하려면 번호표 받아야 해, 오빠!”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써놓고 보니 굉장히 부끄럽고 오글거리긴 하지만, 이런 장난이야, 썸 탈 땐 누구나 하는 거니까 솔직하게 적는다. 오빠는 ”나는 번호표 몇 번인데?“ 라고 물었고, 나는 ”아마 한 50번쯤인 것 같아.“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오빠는 50번이면 너무 멀리 있는 거 아니냐며 너털웃음을 짓곤 했다. 그런 유치한 말 하나하나가 우리에겐 참 설레고 두근거리는 순간들이었다.
첫 만남 후, 일주일이 지났을까. 오빠는 회사가 끝나고 우리동네에 오겠다고 했다. 우리는 내가 친구들과 자주 가는 단골 술집에 들어갔다. 차돌짬뽕과 크림파스타가 맛있는, 우리술을 주로 파는 식당이었다. ‘도원결의’라는 달달한 복숭아향이 나는 술을 시키고, 우리는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짙은 속눈썹 사이로 보이는 오빠의 눈이 반짝거렸고, 나는 그 눈에서 빛나는 별을 보는 듯 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오빠의 눈엔 내가 어떻게 보일까? 갑작스레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사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뜩이나 오빠와 마셔서 술이 달았는데, 술 자체도 복숭아향이 나서 기분은 더욱 좋아졌고, 음식도 맛있고, 나를 쳐다보는 오빠의 눈도 밤하늘에 수놓은 별 같았으니까. 그 날의 공기, 날씨, 분위기, 그리고 오빠의 눈이 생각난다. 그 날은 1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추웠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꽁꽁 언 날씨는 아니었다. 적당히 좋은 겨울 날씨였다. 방금 내린 눈의 품에 안겨 밤하늘을 보는 듯한 기분에 달달하게 술기운이 올라왔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도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우리 둘은 나란히 술집 밖으로 나갔다. 날씨는 쌀쌀했고, 공기는 차갑지만 시원했다. 마치 스페인에서 살 때 따뜻했던 크리스마스를 맞았던 날씨와 똑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화장실은 술집에서 멀지 않았는데, 밖으로 나와서 2분 정도 걸으면 되는 거리에 있었다. 오빠랑 조금 떨어져서 걷다가 순간적으로 걸음을 멈추고 오빠의 눈을 올려다 봤다. 오빠도 나를 쳐다봤고, 예쁜 오빠의 눈이 희미하게 빛났다. 그 순간이었다. 오빠의 따뜻한 손이 내 손을 감싸 잡은 것이. 그리곤 오빠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 번호표 1번 줄래? 받고싶어.”
그게 우리의 첫 시작이었다. 2023년 1월 31일. 따뜻했던 겨울의 어느 날, 오빠와 나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