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그러게요. 할머니가 죽는 것도 방법이네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1-
1화. "그러게요. 할머니가 죽는 것도 방법이네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는데. 그냥 그것도 나쁘지 않아서 뭉개고 살다 보면 언젠가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 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1부.
1.
창 밖 너머 공원 언덕을 바라본다.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소복이 쌓여있다. 세상이 여러모로 참 추워졌다. 주민센터 안은 따뜻하며 포근하다. 온풍기에서 나오는 은은한 기계음은 기분 좋은 백색 소음이 된다. 여기에 정년퇴직을 앞둔 팀장님의 코 고는 소리가 곁들여진다. 고급스러운 행복을 느낀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응당 행복해져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그러나 안온한 평화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클래식이다.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찬 공기가 느껴진다. 냉랭함을 한껏 머금은 고체가 내 앞으로 다가온다. 직관적으로 내가 아는 사람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신이 든다. '좆됐다.'
“이 도둑놈의 새끼들아! 당장 시장 나오라고 해! 내가 너랑 시장 둘 다 패 죽여 버릴 거야! 이런 개만도 못한 새끼들아!”
듣기 영 거북한 말들과 함께 등장한 사람은 이계성 할머니다. 내가 근무 중인 강병1동 주민인 이계성 할머니는 한 마디로 좀 '그런' 사람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계성 할머니는 강병1동 주민센터 직원 전원과 싸운 전적이 있으며, 그 모든 싸움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었다. 이계성 할머니는 직원들에게 거둔 승리에 만족하지 않고 동네 사람들과도 끝없는 교전을 벌였다. 결과는 역시나 전승. 정확하게는 이계성 할머니가 말이 통하지 않기에 피해자들이 험한 꼴을 보기 싫어 항복한 결과였지만, 이로 인해 이계성 할머니는 우리 강병1동의 갱스터 지위에 올랐다. 오죽하면 강병1동 동네슈퍼에서 파는 소금은 김장용과 이계성 할머니가 떠난 자리 정화용으로 구분되어 판매된다는 전설이 생길 정도이다. 진짜냐고? 물론 거짓말이다.
하여튼 이계성 할머니는 종합적으로 '그런' 사람이다. 이런 이계성 할머니가 요새 자주 찾는 직원이 바로 나다. 이유가 뭔고 하니. 이계성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해서 국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기를 희망했다. 다만 할머니는 본인 명의로 된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고, 은행에 가진 돈도 많았으며, 이계성 할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 상 확인되는 자녀의 재산 역시 많은 것으로 조회되었다. 고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거하여 이계성(만 71세/서울)의 기초생활수급 신청은 합법적 절차에 의해, 매우 합리적으로 부적합 처리되었다. 그러나 이계성 할머니에게 기초생활수급자 신청 결과가 부적합인 사유를 아무리 설명해도 할머니는 이를 수용하지 못했다. 이계성 할머니는 자신이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지 못하는 걸 누군가의 농간으로 단정 지었고, 그때부터 강병1동의 갱스터 이계성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 담당인 나를 표적으로 하는 공무원 사냥을 벌이고 있다.
그런 이계성 할머니가 나에게 분노가 휘모리장단으로 뽐내며 다가온다. 대체 왜 이계성 할머니는 내가 중간에서 농간을 부렸다고 주장하는 걸까. 대체 근거가 뭘까? 근거라는 걸 고민이나 했을까. 물론 그럴 리가 없다. 이계성 할머니는 그저 문을 열고 들어와 고성과 욕설을 나에게 투척할 뿐이었다. 요새 생각에는 어쩌면 그냥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시비를 거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이계성 할머니는 내 앞에서 잠시 멈추어 호흡을 가다듬고는 반공투사라도 된 것처럼 작위적 분노를 한껏 담아 이 연사 힘차게 외쳤다!
"너지! 이 곤냐꾸를 먹여야 할 간신아! 네 놈이 중간에 농간을 부려서 내가 돈을 못 타는 거지! 자수해! 자수해서 광명 찾아! 내가 너 아들 같아서 하는 말인데. 한 번은 용서해 줄게. 그러니까 빨리 바로 잡아!”
매번 하는 고민이 있다. 그냥 나도 한 대 치고 감옥에나 들어갈까. 어금니를 꽉 깨물어본다. 참아야 한다. 감옥에 가도 지금처럼 나랏밥을 먹겠지만, 지금은 반찬 정도는 내가 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아닌가? 워낙 박봉이어서 사실상 반찬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기는 한데. 차라리 감옥에 가서 나랏밥을 먹는 게 요리는 안 해도 되니 더 마음 편한 일이지 않을까. 어금니에서 통증이 아찔하게 느껴진다. 치과에 가야 할까. 그럼 또 신경치료다 뭐다 해서 100만 원은 뚝딱일 텐데. 게다가 내 몸에서 신경이든 치아든 빼버린다는 건, 나의 노화를 직감할 수 있게 만들어서 영 마뜩잖다. 하지만 이계성 할머니와 몇 번 더 격돌 더 하면 나는 이제 치과가 아니라 응급실에 들어가야 할 판이다.
"이계성 할머니. 제가 몇 번이나 설명드렸잖아요. 할머니 기초생활수급 신청이 부적합 처리된 건, 제가 뭘 어떻게 해서가 아니라. 할머니 재산이 국가가 정한 기준보다 훨씬 많아서라니까요! 이계성 할머니가 가지고 강남구 신사동 연립주택 있잖아요. 그거 가격만 해도 기준을 훨씬 초과해요. 생각을 해보세요. 강남구 신사동에 주택을 가진 사람한테 나라가 왜 돈을 줘요. 저도 그런 데 사는 게 평생 꿈이에요."
실제로 이계성 할머니는 서울특별시에서, 이 와중에 강남에서, 세상에나 그것도 한강 근처인 신사동에 주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 이계성 할머니의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에 대한 부적합 처분은 세상의 이치와, 인류의 법도와, 한국의 법률에 적합한, 매우 정의로운 결론이었다.
"시끄러! 내가 그 집에 안 산다니까! 그러니까 그 집은 내 집이 아니야. 너처럼 멍청한 놈 알아들으라고 설명할 필요도 없어. 그 집은 하나님에게 바친 집이야.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집인데, 그게 왜 내 집이야! 그 집은 내 집이 아니야!"
"에이 할머니. 할머니 집 맞잖아요. 게다가 지난번 기초생활수급자 신청하실 때는 할머니가 신사동 집에서 월세 받는다는 서류도 냈잖아요. 임대계약서 그거! 우리 업무 시스템에 저장도 되어 있어요. 뽑아서 보여드릴까요?"
"시끄러! 딱 말할 수 있어. 그거 내 집 아니야. 하나님에게 바친 집이야!"
"할머니. 그렇다고 해서 신사동 집을 하나님 소득재산으로 처리할 수도 없잖아요. 그럼 하나님이 강남구 사는 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라도 기초연금 못 받으세요. 하나님 나이도 많으신데 그 돈이라도 받으셔야죠. 그리고 그것뿐만 아니라. 할머니 자녀분도 돈이 엄청 많잖..."
"야 이 공산당 같은 놈아! 네가 우리 딸 돈 버는 걸 왜 알아! 그리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할머니 그게 아니라. 기초생활수급자 신청하시면 할머니랑 자녀분 관계가 단절된 게 아니면, 자녀분 소득재산도 조사가 들어가요. 그리고 자녀분 소득재산 조사 동의서류도 할머니가 내셨잖아요. 그러면 이계성 할머니랑 자녀 분이랑 관계가 단절된 것도 아니란 말이잖아요. 잘 아시면서 왜 이러실까. 저희도 도와드리고 싶어요. 근데 법이..."
"시끄러! 너 가만 안 둬! 동장 나와! 구청장 나와! 국방부 장관도 나와!"
국방부 장관은 어쩌다 추가된 걸까. 이계성 할머니의 격노를 보고 있자니 나의 정신건강이 걱정된다. 다른 생각을 해본다. 대한민국의 정책과, 인류의 역사와, 가족의 안부 같은 그럴싸하면서도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 주제들로 망상을 한다. 그래야 견딜 수 있다.
뒷자리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던 팀장님은 잠에서 깨어나, 풀어져 있던 벨트를 고쳐 매고 나에게 오지...는 않았다. 팀장님은 나를 스쳐지나 주민센터 밖으로 나갔다. 부럽다. 나도 데리고 가지. 영화에 나오는 결혼식 당일 사랑의 도주까지는 아니더라도 갑자기 내 손을 붙잡고 밖으로 같이 도망간다면 팀장님에게 평생의 충성을 다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이계성 할머니는 무어라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다.
"도대체 내가 왜 수급자 돈 못 받는지 설명해! 내가 등신인 줄 알아 이것들이!"
참자. 한 번만 더 참자. 이를 꽉 깨물어본다. 이제는 어금니가 아니라 턱관절까지 아프다. 이계성 할머니한테는 이미 수십 번 설명했지만, 다시 한번 더 설명을 해본다. 공무원 일이 다 그런 거지 뭘. 한 거 또 하고. 또 하고. 의미는 없고, 또 없고.
"할머니.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우리 이계성 할머니가 은행에 돈아 무지하게 많잖아요. 게다가 이계성 할머니 명의로 된 집도 가지고 계시잖아요. 그것도 강남에! 그리고 부양의무자 제도라고. 할머니 자녀분 재산도 조사해야 하는데, 이계성 할머니 따님이 재산이 많아요. 그리고 할머니 따님이랑 아예 안 보고 사세요? 그러면 관계 단절 소명서 쓰세요. 할머니랑 따님이랑 남남처럼 사는 걸로 판정이 되면, 자녀분 때문에 못 받지는 않으실 거예요. 근데 지난번에도, 지지난번에도, 지지지난번에도 자녀분이 직접 서명하신 조사동의서 받아오셨잖아요. 그러니까 할머니랑 자녀분은 관계단절이 아니라서 조사를 해야만 해요.”
"이게 누굴 등신으로 아나. 단절? 어려운 말 쓰면 내가 그냥 넘어갈 줄 알고? 우리 딸이 나한테 얼마나 잘하는데. 네놈 또 거짓말하는 거지? 너 때문에 안 되는 거지? 됐어! 동장 나와! 구청장 나와! 대통령도 나와!"
역시 반복해서 설명해도 의미가 없다. 그리고 이계성 할머니는 이번에 국방부 장관도 아니고 대통령을 내놓으라고 급을 높인 걸 보아하니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하지만 이건 주상 전하가 나와도 안 될 일이다. 심지어 하나님이 강남구 신사동에서 난초를 진짜 키우고 있다고 해도 안 될 일이다. 침착하자. 다시 망상을 하자. 그래야 이 시간을 해치울 수 있다.
"너 내 말 안 들어?"
들켰다.
"내가 이래서 호랑이 상(像)인 사람이랑 상종을 안 해! 내가 너 아들 같아서 하는 말인데, 일 똑바로 해! 그래야 사람 구실이라도 하지! 사람은 정직하고 올곧게 살아야 해!"
틀렸다.
이계성 할머니의 주장과 달리 난 할머니의 아들뻘 나이는 아니다. 그리고 나는 이계성 할머니 관련 일도 똑바로 처리했고, 호랑이의 상(像)도 아니다. 나는 호랑이를 닮지 않았고, 그저 평범하게 못생겼을 뿐이다. 손해 본 기분이지만 그냥 못생긴 것과 호랑이 상인 것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다. 말은 논리적 정합성을 가져야 한다. 암. 그렇고 말고.
"일 똑바로 해! 다음에 왔을 때는 내가 돈을 탈 수 있게 만들어 둬. 그렇게 알고 있어!"
이 문장은 이계성 할머니의 일장연설이 끝나간다는 신호다. 이제부터는 음악이 언제 끝날지 몰라 박수 칠 준비만 하고 있는 어수룩한 클래식 공연 관객이 된다. 곧 음악이 끝날 것도 같은데, 타이밍을 몰라서 귀만 쫑긋하는 그런 관객 말이다. 얼른 마무리해라. 시원하게 박수를 쳐주마.
"에휴. 망할 공무원 놈들. 이럴 바에야 내가 빨리 죽어야지. 더 살아서 뭐 해. 늙었으니 죽어야지. 얼른 죽어버려서 이런 더러운 꼴을 그만 봐야지. 그래. 죽자 죽어."
이계성 할머니는 자리를 박차고 주민센터 문밖으로 나간다. 문이 열렸고, 찬 공기가 다시 내 눈가에 닿고, 문이 닫히고, 다시 온풍기의 온기가 주민센터에 차오르고, 다시 문이 열리고, 팀장이 돌아와 나를 보며 ‘거 늦어서 죄송!’ 정도의 눈인사를 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숨을 고른다. 조용하다. 그리고 지친다. 나의 월급 중 욕값은 얼마쯤 될까. 누군가의 패딩 점퍼에서 빠져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오리털이 공중에서 부유하고 있다. 오리털이 부유하는 장면을 멍하니 보며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을 읊조렸다.
"그러게요. 할머니가 죽는 것도 방법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