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나도 쇼크 상태에 빠졌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5-
5화. "나도 쇼크 상태에 빠졌다."
1부.
5.
설렌다. 기분 좋은 설렘은 아니다. 부정맥에 가까운 설렘이다. 이계성 할머니 집 현관문이 열리고 발을 내딛는다. 집에 냉기가 가득하다.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리는 방으로 들어간다. 낮이었지만 집은 어두웠다. 그렇게 어둠을 헤치고 집을 탐사하기 시작한다.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는 방문 앞에 선다. 문고리를 손에 쥔다. 낡아서 그런지 절그럭 소리가 난다.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문고리를 돌린다.
방 안도 어둡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즈음 이계성 할머니로 추정되는 물체가 방에 놓여 있는 걸 확인했다. 이계성 할머니는 죽은 걸까. 아찔해진다. 사회복지 공무원 생활을 하며 시체를 몇 차례 봤지만, 시체는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된다. 게다가 이계성 할머니의 경우는 나의 저주로 죽은 것만 같아서 기분이 더 좋지 않다. 진짜 내가 저주를 해서 죽은 거라면 나는 제법 전지전능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빨리 행정고시 준비를 해야겠다. 마음을 가다듬고 이계성 할머니로 추정되는 물체에 다가간다. 물체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계성 할머니? 문 따고 들어와서 죄송해요. 저기...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살아 계세요?“
침묵이 이어졌다.
”할머니. 혹시 의식이 있으실까요?“
멍청한 질문이라는 건 나도 안다. 그저 침묵이 무서워 아무 말이나 하는 거다. 그리고 내 앞의 이계성 추정 물체가 움찔한다.
"으...으으으으 어 히어. 어 히어"
야트막하게 할머니의 음성이 들린다. 휴. 다행이다. 이계성 할머니는 살아있다. 다만 이계성 할머니는 의식은 있었지만, 몸을 움직이질 못하셨다. 함께 들어온 119 대원은 할머니의 생체신호를 찾았고, 이계성 할머니가 살아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눈으로 보면 살아 있는 걸 아는데 굳이 저렇게 확인을 해야 할까. 됐다. 다 이유가 있겠지. 그게 아니라면 119 구급대원으로서 뭐든 해야 하니 퍼포먼스 느낌으로 한 일일 수도 있고. 직업이란 게 다 그렇게 의미 없지만 내가 일을 해야 한다는 걸 보여야 한다.
"지금 할머니 어떤 상태인 거예요?"
"환자분은 쇼크 상태인 것 같아욧."
119 대원은 몇 가지 조치를 취한다. 뭘 하는 건지 자세히는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저런 건 내 일이 아니다. 문득 이계성 할머니의 집을 돌아본다. 방구석에는 이계성 할머니가 핀 담배 꽁초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할머니의 머리맡에는 꾸겨진 종이들이 나뒹굴고 있었고, 그 옆에는 할머니 혼자 붙이려다 실패했는지 알 수 없는 형태로 뭉쳐진 파스가 배게 끄트머리에 붙어있다. TV는 켜져 있지만 요새 보기 힘든 파란색 화면만이 송출되고 있다. 그나마도 TV가 워낙 오래 됐는지, 화면이 아주 어둡다. TV 옆에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선풍기가 있다. 선풍기 날에는 먼지가 찐득하게 붙어있다. 그 옆 장롱에는 젊었을 적 이계성 할머니로 보이는 사진이 역시나 찐득하게 붙어있다. 습기에 울어서일까. 사진은 테두리가 다 뭉그러져 있었고, 사진 속 이계성 할머니의 얼굴 역시 뭉그러져 있다.
119 대원은 들것을 가지러 계단 위로 올라갔다. 다시 집안은 침묵에 빠졌다. 퍼뜩 정신이 든다. 이계성 할머니에게 언제부터 아팠던 건지, 어느 병원을 다니시는지, 챙겨야 할 짐은 있는지를 이계성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이계성 할머니는 알아듣지 못할 신음에 가까운 소리만 계속 반복해서 뱉어냈다.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는 건 포기했지만, 평소에 어느 병원에 다니는지는 알아내야 했다. 이계성 할머니는 자기가 원하는 병원이 아니면 퇴원하고 분명히 나에게 시비를 걸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할머니. 병원 가셔야죠. 다니시는 큰 병원 이름 말해 주세요!"
"어 히어... 어 히어..."
"뭐라구요? 히어? 히어(here)? 여기? 할머니 영어도 할 줄 아세요?"
내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지만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나도 아예 생각을 안 하고 대화에 임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그렇게 나도 충실하게 이상해지고 있다. 하여튼 이계성 할머니는 계속 알 수 없는 소리를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잘 안 들려서 할머니 입가에 가까이 다가가 귀를 대고 할머니의 대답을 듣는다. 할머니는 숨을 가다듬고 차분히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다.
”으어. 히어.“
”네? 뭐라고요?“
할머니의 입가에 아예 내 귀를 붙인다. 그리고 한 박자 쉬고 들려오는 할머니의 음성.
"너... 싫어..."
나도 쇼크 상태에 빠졌다. 마침 119 구급대원이 들 것을 가지고 돌아왔다. 내가 먼저 누우면 나를 주민센터로 데려다 주려나.
"저기 공무원분! 환자분 가족과 연락은 하셨어욧? 빨리 연락 해서 보호자 한 분이라도 행운병원으로 오라고 하세욧. 보호자가 있어야 입원이나 치료 절차를 밟을 수 있어욧."
수진이가 연락을 했으려나. 내 휴대전화를 열어본다. 수진이는 아직 이계성 할머니 가족의 연락처를 보내지 않았다. 이 상태면 꼼짝 없이 오늘은 이계성 할머니 비서 노릇을 해야 한다. 당장은 119 구급대원에게 둘러대고 이계성 할머니 일을 넘겨야겠다.
"아... 저... 그게... 제가 이계성 할머니 가족분 연락처를 안 적어 와서."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 거예욧!?"
말이 안 될 이유는 또 뭔가. 유독 오늘 나를 혼내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역시 사회복지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나한테 안 맞는다. 난 정갈한 사무실에서 조용히 일을 하며 큰 사업과 정밀한 프로젝트 기획하는 직업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작금의 나는 말도 통하지 않는 괴상한 사람들과 살아가야 하는 사회복지 노동자이다. 못할짓이다. 그렇게 이계성 할머니는 들것에 실려 앰뷸런스에 짐짝처럼 적재됐다. 앞으로 고생할 119 구급대원에게 인사를 건넨다.
"제가 확인되는 대로 119 신고센터 쪽으로 할머니 가족들 연락처를 보내드릴게요. 나머지는 가족분들이랑 이야기 하시면 될 것 같아요."
"무슨 말씀이세욧? 공무원분도 타세욧. 당장은 보호자랑 통화 안 된 거잖아욧. 입원 절차 정도는 담당 공무원이 할 수 있어욧."
어라. 이건 내 계획에 없었다. 나를 대신 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이 빌라의 소유주이며 사람 관찰하는 데 조예가 깊은 할아버지를 바라본다.
"아유. 공무원 양반이 고생하겠네. 내가 사람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 할머니 병원에 진즉 들어갔어야 해. 잘 좀 부탁해요!"
할아버지는 마그네슘이 부족한 건지, 내가 잘못 본 건지 나에게 윙크를 날리고는 계단 위로 사라졌다. 어쩔 수 없이 나도 구급차에 승차한다. 이계성 할머니 이송 비용을 내가 지불해야 할까. 구급차도 택시처럼 미터기가 있을까. 오늘은 완전히 조졌다. 이런저런 망상에 빠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병원에 도착했다. 이계성 할머니는 역시나 짐짝처럼 차에서 내려졌고, 병원 접수처로 운송되었다. 119 구급대원과 병원 접수처 직원은 간단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이계성 할머니는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기나긴 복도를 들것과 바퀴가 합체된, 뭐라 불러야 할지 엄두조차 안 나는 쇳덩이에 살포시 올려져 119 대원과 간호사에 의해 어딘지 모를 저 먼 곳으로 끌려갔다. 안녕 이계성. 안녕 행복한 나의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