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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6-

6화. "오늘의 강동노는 그럴 자격이 있다."

by 동노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6-

6화. "오늘의 강동노는 그럴 자격이 있다."


1부.


6.


응급실 데스크로 향한다. 간호사인지 원무과 직원인지 모를 사람은 나에게 긴급한 경우 공무원이 입원 수속까지는 할 수 있다는 안내를 해준다. 하기 싫지만, 방법이 없다. 결국 병원 직원이 서명하라고 한 종이에 서명한다. 이제부터 이계성 할머니의 일은 진짜 내가 끝까지 처리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공무원 일이 다 그렇다지만, 역시 화가 난다. 내가 생판 남인 사람 뒤나 닦아주는 신세라니.


게다가 병원 직원은 나에게 이계성 할머니의 보호자 전화번호를 당장 구해오라는 임무를 주었다. 어쩌겠나. 공무원이 까라면 까야지. 우선 주민센터로 돌아가야 한다. 이계성 할머니 입원 및 진료 동의서를 작성한다. 뒤를 돌아 병원 밖으로 향한다. 담배나 한 대 피워야겠다. 하지만 어디에도 흡연이 가능한 공간은 없다. 그렇게 흡연이 가능한 공간을 찾아 먼 여정을 떠난다.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모를 동네에 도착해서야 담배를 태운다. 격동의 오전 일과가 끝났다. 미간에 자동으로 주름이 잡힌다. 더 짜증 날 뒤처리를 하기 위해 사무실로 돌아가자.


"오빠. 어떻게 됐어? 엄청 늦었는데 할머니한테 맞아서 누워있다 온 거야?"

"엇허. 수진아. 오빠라니! 하늘 같은 선임 주임님한테. 그리고. 아! 그리고 이계성 할머니 가족 전화번호는 왜 문자로 안 보낸 거야?"

"무슨 소리야. 오빠 급한 것 같아서 내가 잠깐 끊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잖아. 그 자리에서 바로 이계성 할머니 문서 뒤져봤는데. 부양의무자 칸에 딸 이름만 있더라고. 그래서 바로 가족관계증명서 가지고 행정팀에 전화번호 따서 말해줬잖아!"

"수진아. 수진아. 나의 후배 수진아! 어디 하늘 같은 선배님인 나에게 거짓말을! 내가 너한테 이계성 할머니 가족 연락처 문자로 보내달라고 하고 전화 바로 끊었다는 사실은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사연인즉, 수진이는 상황이 급박한 것 같아 바로 이계성 할머니 가족의 전화번호를 따서 알려주려고 나에게 전화를 끊지 말라고 말했었다. 다만 내가 그 말을 듣기도 전에 바로 전화를 끊어버린 모양이다. 내 다급한 전화로 덩달아 놀란 수진이도 내가 전화를 끊었는지 모르고 이계성 할머니 가족의 전화번호를 말로 불러줬던 모양이다. 둘 다 바보 같은 짓을 한 거다. 어쩌겠나. 일을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 그저 나를 위해 노력해 준 수진이한테 조금 미안하다. 분위기를 풀어보려 일부러 너스레를 떨어본다.


"오늘 완전 조졌네. 이게 다 수진이 너 때문이야! 책임져! 너 월급 내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이거 어쩌지. 병원에서도 보호자한테 연락하라고 성화된다. 에이씨. 됐다. 이미 지난 일인데 어쩌겠어. 일단 뭉게고 있자."

"오빠. 이계성 할머니는 어떻게 된 건데?"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헛소리 하지 말고. 말해봐."

"너에게는 비밀로 하고 싶단다."

"오빠 진짜 이계성 할머니한테 맞고 온 거 아니야? 병원도 오빠 치료 때문에 간 거고."

"엣헤이. 이수진 주임! 거 참 거! 나중에 말해줄게. 일단 팀장님은 어디 가셨어? 보고해야 하는데."

"몰라. 또 어디로 사라졌어. 알잖아. 팀장님 문제 생길 것 같으면 어디 숨어있다 오는 거. 난 저렇게는 안 늙을 거야. 팀장이면 우리를 보호할 생각을 해야지. 도망가는 게 일이야 완전."

"알았다. 일단 숨 좀 돌리자. 그리고. 도와줘서 고마워."


수진이는 입을 샐쭉거리며 웃었다. 숨을 돌리려 내 자리에 앉는다. 이계성 할머니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하지만 고민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내선전화가 울린다. 이 직업을 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건 전화가 끊임없이 울린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전화들은 대개 고통이 담긴 전화들이다. 벗어나고 싶다. 퇴직하게 되면 일단 내 책상 전화부터 부숴버리고 나갈 거다. 그럼 또 왜 부쉈냐고 연락이 오겠지. 전화가 없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강병1동 주민센터. 사회복지 2팀 주무관 강동노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오늘 오전에 그 이계성 할매 문제로 전화한 사람인데. 어떻게 됐나 해서. 내가 사람 관찰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데 말이야. 이계성 그 할매 요새 좀 이상했어!”


말 많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에게는 이계성 할머니 건강 상태는 개인정보라서 대답 해줄 수 없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아까 말했듯이 이 놈의 전화가 문제다. 전화선을 자른다면 나는 징계를 받게 될까. 지금 내 손에 박달나무 몽둥이 같은 게 있다면 분명히 전화를 내려쳤을 거다. 참자. 인내는 쓰고. 월급은 달다. 마음을 차분히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이계성 할머니 일을 해치워야 한다.


업무용 프로그램을 클릭한다. 이계성 할머니가 직전에 신청했던 기초생활수급 신청 건을 확인한다. 이계성 할머니가 제출한 신청서류 중 부양의무자 칸에 자녀인 딸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다만 자녀의 주소와 전화번호 칸은 비어있다. 신청서에 자녀 관련 정보까지 완전히 기재되어 있을 거란 기대는 안 했다. 하지만 그걸 또 눈으로 확인하니 곱절로 짜증이 난다.


수진이가 오전에 행정팀에 조회해 기록해 둔 이계성 할머니 자녀의 신상과 전화번호를 확인한다. 이계성 할머니의 자녀는 한 명. 자녀의 이름은 김지연이었다. 전화번호도 평범하게 010-XXXX-XXXX. 평범하고도 평범한 이름과 전화번호다. 이계성 할머니 일도 이렇게 평범하디 평범하게 끝내고 싶다. 숨을 고르고 전화기 버튼을 꾹꾹 누른다. 전화 신호가 들린다. 이계성 할머니의 자녀가 전화를 받을 때까지 기다린다. 피는 못 속인다고 이계성 할머니의 자녀도 나에게 버럭버럭 화만 내는 게 아닐까.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싸울까. 아니면 전화를 잘못 건 척을 할까.


"여보세요."

지극히 사무적인 목소리다.

"안녕하세요. 강병1동 주민센터 사회복지 2팀 주무관 강동노입니다. 이계성 할머니 자녀 되시는 김지연 씨 맞으시죠?”


침묵이 흐른다.


"무슨 일이시죠?"

"맞으시구나. 제가 연락드린 게 다름이 아니라. 저도 민원 전화 받고 나간 거긴 한데, 김지연 선생님 어머님이신 이계성 할머님께서 몸이 많이 편찮으셨나 봐요. 그래서 저희가 급한대로 119 통해서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입원 수속도 해두었습니다. 아마 전반적인 검사도 진행이 되고 있을 거예요. 자세한 건 병원에서 검사해 봐야겠지만, 쇼크 뭐 그런 거래요. 병원 측에 직접 듣는 게 좋으실 것 같아요. 이계성 할머님은 지금은 행운병원에 입원해 계시고요, 병원 주소는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근데 가족분이 또 오셔야..."

"연락하지 마세요. 그리고 제 전화번호는 어떻게 아신 거예요? 좀 불쾌하네요."


전화가 끊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화 예절을 다시 교육해야 하는 시대다. 화를 참고 이계성 할머니의 자녀에게 다시 전화를 건다. 이제는 아예 전화 자체를 받지 않는다. 내가 일을 넘길 마지막 창구가 닫혔다. 즉, 일이 완전히 틀어졌다.


시간은 흘렀고, 정신은 아득해졌고, 주민센터 자동문이 열리고 닫히고를 반복하면서 들어오는 바람이 차가웠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계성이라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만 더 커지고 있다. 시계를 보니 6시 10분이다. 일단 퇴근을 하자. 도망을 가자. 오늘은 너무 지쳤다. 팀장님한테 보고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뭐 어떻게 하겠나. 팀장이라는 인간이 갑자기 사라져서 퇴근 시간이 지나도 오지를 않는데. 무시하고 그냥 퇴근하련다. 오늘의 강동노는 그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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