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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8-

8화.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by 동노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8-

8화.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2부.



8.


다음날이 되었고, 머리가 아프다. 스트레스 때문일까. 아니면 술 때문일까. 술 마신 걸 후회하며 출근한다. 계약 기간이 얼마 안 남은 월세방에서 나와, 사거리를 지나, 로또 명당을 지나, 주민센터 입구에서 출근 확인용 지문을 꾸욱. 8시 57분. 완벽한 도착시간이다. 팀장님은 아침부터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신문을 읽고 있다. 아차. 어제 이계성 할머니 사건을 보고하지 않고 퇴근한 게 마음에 걸린다. 어쩌겠는가. 팀장님이 먼저 사라졌는데. 혼내면 죄송한 척하고 넘어가련다. 팀장님의 눈치를 슬쩍 본다. 팀장님이 매일 아침 세 스틱씩 부어 먹는 믹스 커피가 찰랑찰랑 가득 차 있다. 즉, 지금이 적기다.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강 주임 왔어? 어제는 고생했어."

"안 그래도 어제 바로 보고를 드렸어야 했는데. 어제 보고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다만! 강병1동 주민센터의 참 일꾼 주임 강동노. 이계성 할머니 일은..."

"오케이! 오케이! 우리 강 주임이 어련히 잘했을까. 전권을 줄 테니 뒷일도 한번 마음껏 해봐! 난 강 주임을 믿어."

"아... 네. 감사합니다. 변동 사항 생기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팀장님은 전권은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그냥 귀찮은 일을 자기한테 안 넘어오게 하라는 말이다. 전권 운운하는 건 그저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것뿐이다. 내 까짓 게 권한이 뭐가 있다고 전권을 운운하는지 참.


"그리고 강 주임. 바쁜 건 알겠는데, 혹시 내 조카 숙제 때문에 그런데 인터뷰 하나 해주라. 강 주임이 또 말은 기깔 나게 잘 하잖아."

"팀장님이 하라면 북한 간첩과도 인터뷰 해야지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별거는 아니고. 내 조카가 이번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전공이 사회복지학이더라고. 근데 조카 놈 숙제가 사회복지 현직자 인터뷰를 하는 거래. 그래서 내가 강 주임 생각나서, 조카한테 인터뷰 해줄 사람을 소개 해준다고 했지!"


일개 대학교 1학년 과제 때문에 아침부터 나를 괴롭혀야 하는 걸까. 게다가 과제가 아니라 숙제라고 하니 더 하찮은 느낌이다. 근무 중에 이런 일까지 협조해야 한다는 게 서글프다. 참자. 이를 꽉 깨문다. 그리고 이어지는 치통. 내 판단이 어찌 되었든 난 팀장님의 충실한 부하여야 하기에 인터뷰에 응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인사 평가를 받아 성과급을 받고, 이 돈으로 급상승할 보증금도 내고, 월세도 내야지. 그렇게 돈을 모아 언젠가 행정고시를 도전할 수 있겠지. 이 아수라판을 떠나야지.


"팀장님. 그러면 언제 인터뷰 하면 될까요? 제가 다음 주 목요일은 휴가를 써야 하는데. 조카분이 저한테 이메일로 질문 주면, 제가 성심성의껏 답변 써서 보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요새 또 인터넷의 시대잖습니까. 또 조카분이 여기까지 오기도 힘들 거고."

"아니! 지금 해주면 돼! 조카가 탕비실에서 있으라고 했어. 들어가 봐!"


처음부터 내 의사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물어보지나 말든가. 언제 한번 회식 때 팀장님이 취하면 부축하는 척하고 배빵을 날려야겠다. 주님. 세상을 구원하실 때 우리 팀장님은 구하지 말아주소서. 아멘. 부처님도 협조 부탁드립니다.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팀장님의 조카가 기다리고 있다는 탕비실로 들어간다.


팀장님의 조카는 뭐가 그리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맑은 눈을 요리조리 굴려대며 탕비실을 구경하고 있다. 어휴 잔망스러운 것. 너가 악의 원흉이구나. 빨리 인터뷰를 끝내고 보내 버려야겠다. 짐짓 젠틀한 척 웃어본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인터뷰 상대를 어디서 구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삼촌이 도와주신다고 해서요. 자기 부하 직원 중에 똘똘한 놈 있다고 하셔서."

"그 똘똘한 놈이 접니다! 조카분 이야기는 팀장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제가 시간이 많지 않아서... 바로 시작하죠. 저는 강병1동에서 기초생활수급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강동노입니다. 뭐든 질문 주시면, 솔직하게 답해 드릴게요."

"네! 일단 왜 사회복지를 하시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중에서도 공무원은 어떻게 선택하게 되셨는지 말씀 해주세요."


팀장님 조카와의 인터뷰는 무미건조했고 내용상 의미가 있는 답도 없었다. 그저 뻔한 질문에 적당한 답을 했다. 누가 봐도 문제가 없지만, 또 한번 더 자세히 보면 아무 내용도 없는 그런 적당한 답변들 말이다. 죄책감은 없다. 그저 빨리 인터뷰를 끝내고 이계성 할머니 문제를 해치우고 싶다. 그렇게 그저 몽롱한 시간이 흘러갔다.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인터뷰가 끝난 모양이다. 대충 칭찬이나 해주고 돌려보낸 뒤, 나가서 담배를 태워야겠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등이 아프다. 두통도 좀 있다. 치통이야 꾸준히 올라오고 있고, 그냥 다 좋지 않다. 의자 끄트머리에 앉아 시계를 본다. 어영부영 시간도 참 많이 갔다. 슬슬 마무리 멘트를 해야겠다. 볼펜을 정리하던 팀장님 조카가 다시 볼펜 뒤를 눌러 매서운 볼펜 촉을 보인다. 어라. 이게 아닌데.


"아! 잊을 뻔했네요. 마지막 질문이 하나 더 있어요."


어머나. 인터뷰에 감사하다는 마무리 멘트를 해놓고 또 질문을 하려 하다니. 재수 없는 놈. 짜증이 치민다. 엄마가 보고 싶다. 근데 또 막상 엄마를 만나면 엄마는 나를 보면 왜 결혼 안 하냐고 잔소리겠지? 엄마가 보고 싶지 않아졌다. 올해 설에는 부모님에게 용돈을 얼마나 드려야 할까.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하는데, 부모님께 용돈 드릴 여유가 나한테 있기나 하려나. 박 여사님한테 제발 보증금이랑 월세 올리지 말라고 빌어야 할까.


치통이 훅 올라온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참을 때 버릇처럼 어금니를 꽉 깨문다. 이 버릇 때문에 점점 더 치아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 같다. 신경치료를 받아야겠지만 역시 돈이 부족하다. 치아는 금 대신 메탈로 때워야겠다. 그것도 어려우면 아말감인지 뭔지 그걸로 때워야겠다. 아니다. 뭐든 어떤가. 그냥 싼 걸로 해야겠다. 이제는 애써 돈 들여서 예뻐 보이고 싶지도 않다. 지친다. 지금은 그저 다 못할 짓이다. 빨리 인터뷰를 끝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아무래도 불행한 일을 많이 접하시는 직업을 가지셨잖아요. 그럼 아무래도 사람이 사회적으로 무장해제 되신 상태를 많이 보셨을 거잖아요, 그런 경험들을 돌이켜 보셨을 때, 사람의 본성은 원래 선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악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이건 또 무슨 개소리람. 안 그래도 힘든 일이 넘쳐나는데 왜 이런 비현실적인 동화 이야기에 내가 응해야 할까. 그나저나 팀장 놈은 자기가 인터뷰를 시켰으면 옆에 앉아 있던가. 자기가 하던가. 이 망할 놈의 조카 놈은 왜 면도를 똑바로 안 하고 온 걸까. 싸가지 없이. 이계성 할머니 일은 어떻게 해야 하지? 와.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머리 안에 있는 어떤 끈이 '톡'하고 끊어진다.


"조카분. 지금 홉스 성악설이랑. 루소 성선설 뭐 그런 거 말하는 거예요?"

"아... 네. 비슷한데, 제가 어렸을 때부터 계속 궁금했던 주제라서요."

"지금 작성하시는 과제랑 연관이 있을까요?"

"꼭 그런 건 아닌데. 개인적으로 궁금한 부분인데, 아무래도 조언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인간의 본성은 나빠요. 확신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아주 쓰레기죠. 분리수거도 안 되는 스티로폼 같은 쓰레기죠. 인간들은 어떻게든 상대의 호의를 이용하려고만 해요. 그래도 평범한 사람들은 예의나 체면 때문에 착한 척이라도 하죠. 근데. 제가 마주하는 사람들은 그럴 노력조차 하지 않아요. 어느 시점부터 망가진 인간은 복구가 안 됩니다. 사람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음성을 흉내 낼 수 있는 원숭이 정도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실 거예요.

"네?"

"내가. 조카분이랑 거래 계약을 맺었다고 해봅시다. 내가 조카분한테 1만 원을 주고, 조카분은 나한테 펜을 주는 거죠. 이 거래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은 누굴까요?"

"잘 모르겠어요. 펜이 1만 원이 안 되는 거니까. 제가 이익인가요?"

"땡. 틀렸어요. 먼저 거짓말 하고 계약을 안 지키는 사람이 이익이죠. 내가 줄 건 안 주고 받기만 하면 되니까요."

"저기. 제 질문은 그런 뜻이 아니라..."

"이느 시점을 지난 인간은 자기 이익만 원해요.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은 외면해요. 근데 자기가 받을 수 있는 건 억지로라도 주시해요. 이익만 보고 싶은 거지. 다만 이걸 예의나 체면 때문에 잘 숨기는 사람이 있고, 내가 만나는 사람은 그런 기본조차 안 되어 있는, 그리고 지금 이 인터뷰도!"

아차. 실수를 할 뻔했다. 순간 정신이 들어 말을 멈춘다. 팀장님의 조카가 쭈뼛쭈뼛 말을 이어간다.

"그래도... 제 주변 사람들은 다 착한 편인데..."

"하아... 조카분도 언젠가 알게 될 거예요. 아직 사회생활을 안 해보셔서 그래요.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예요. 제가 말씀 드린 걸 알고 계시는 게, 조카분 정신건강에도 좋을 거예요."

"그럼. 이 일을 하시면서 무너져 있던 사람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하셨던 경험은 있으실까요? 말씀 해주신 것처럼 다시 예의나 체면을 찾을 수 있게 된 사람들의 모습도 보셨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그런 사례가 더 많을 것 같다는 게 저의 생각이기도 하고요."

"단언컨대 다시 선해지는 사람은 없어요. 인간이 어떤 지점을 지나 무너졌다면. 그게 끝이에요. 그 때부터는 다시 돌아갈 수 없어요."

"그래도..."

"조카 분께서 아직 어려서 잘 모르실 텐데. 사회복지 일을 한다는 건, 사람을 마주한다는 건. 아주 슬픈 사실을 빨리 알게 되는 일이에요. 만약 행복이라던지, 만족,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정서적 충만함 같은 기분을 찾으신다면. 이런 직업들은 하지 마세요. 사람을 마주하면서 하는 일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은 퇴근밖에 없어요."


내가 말이 심하다는 사실은 이미 진작에 인지하고 있다. 정신을 차렸음에도 날카로운 말들을 참을 수 없다. 하아. 요새는 종종 화가 치밀어 올라 감정을 주체하기 어렵다.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모르겠다. 머리가 아프다. 숨도 좀 잘 안 쉬어지는 것 같다. 담배를 끊어야 할까. 아니다. 정신과부터 가야겠다. 우선은 팀장님 조카에게 대충 핑계를 대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여기서 벗어나자. 숨을 쉴 수가 없다.


"농담이에요! 제가 너무 장난을 쳤나요? 한번 카리스마 넘치게 냉소적으로 말해보고 싶었어요. 하하. 일은 행복하죠. 누군가를 돕는다는 저의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데요.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해내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이 직업을 하기 잘했다고 생각해요."

"역시. 그렇겠죠?"

"아무렴요! 사람을 만나다 보면 인간 마음속에 있는 작은 천사도 종종 확인할 수도 있지요! 게다가 저처럼 사람을 살리는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월급까지 받고 있으니 저는 행운아죠. 근데 이거 어쩌나. 제가 시간이 너무 없어서요. 업무상 약속도 좀 있어서. 좀 더 오래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미안해요."


아무래도 팀장님의 조카는 나의 날카로운 말들에 놀랐는지. 엉거주춤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재빨리 인터뷰 내용을 기록하던 펜의 뒤를 눌러 펜촉을 집어넣었다. 그 모습에 안심해 나도 화를 표정 뒤로 집어넣는다.


"아니에요. 아침부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삼촌한테 이메일로 인터뷰 하겠다고 했는데 삼촌이 아침에 부하 직원들 한가하다고 오라고 하셔서... 바쁘신 것 같은데 시간 빼앗아서 죄송해요."


미안했다. 팀장님의 조카는 사람이 갖는 빛과 에너지를 찾고 싶어서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을 텐데. 부끄럽다. 나도 한때 팀장님 조카와 비슷하게 인간의 빛과 희망을 믿었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제 나는 인간을 믿기나 하는 걸까. 생뚱맞은 자문이기는 하지만, 나는 지금 인간이기나 할까. 나도 어떤 지점을 이미 지나가 버린 게 아닐까.


"이해 해줘서 고마워요. 근데 조카분은 사회복지사 직업은 하고 싶은 거예요?"

"네. 저는 하고 싶어요. 슬픈 사람들을 좀 덜 슬프게 할 수 있잖아요. 사람들을 덜 슬프게 만들다 보면 아주 조금 더 행복한 세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요. 행복할 권리가 있는 착한 사람들에게 행복을 되찾아 주고 싶었어요. 그러면 덜 슬퍼진 사람의 주변 사람들도 조금 더 행복해질 테니까요. 그러다 보면 조금 더 좋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일들을 제가 직접 하고 싶어요."

"그러시구나."

"네."

"아직... 가지고 계신 거네요."

"네?“

”뭐라고 표현은 못하겠는데. 아니에요. 보기 좋아요, 근데. 이것도 제가 뭐라고 자세히 말씀 드릴 단어가 없는데... 그냥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드디어 내가 미쳤나 보다. 아니면 내가 신들려서 무당의 길로 나아가고 있나 보다. 내 얼굴이 호랑이의 상이니. 호랑이 기운이 깃든 무당으로 마케팅을 해야겠다. 현실로 돌아오자. 지금이라도 팀장님의 조카에게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할까. 근데 오른쪽 무릎 아파서 꿇으면 좀 아픈데. 슬프게도 자존심을 지키거나 상황을 무마하고자 하는 빠른 두뇌 회전 보다 나의 우측 관절 건강이 더 문제다. 포기하자. 어떻게든 수습해야 했지만 그럴 여력은 또 없다. 진짜 정신과에 가야겠다. 가면 가장 센 약을 달라고 해야겠다.


"죄송해요. 조카분이 이 일을 하기에는 아까워서 해본 말이었어요. 로스쿨을 준비 한다든지 대기업에 입사 한다든지. 그런 노력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아마 지금 모습을 지키실 수 있을 거예요."


인터뷰는 그렇게 끝이 났다. 나는 상황이 민망해서 도망치듯 주민센터 밖으로 나갔다. 주민센터 밖으로 나가는 길이 길게 느껴진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민센터 확장 공사라도 한 걸까. 심장에 직접 주먹이라도 맞은 듯 아프다. 주민센터 밖으로 나가 건물 뒤로 숨는다. 부족한 것 같아서 쪼그려 앉아 또 숨는다. 그리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한 모금 빨아들인다. 어지럽다. 이게 다 이계성 할머니 때문이다. 그냥 빨리 이계성 할머니 문제를 해치우고 좀 쉬고 싶다. 주민센터 건물벽에 머리를 기댄다. 눈이 내리고 있다. 어지럽다. 계속 반복해서 드는 생각은 하나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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