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죽어있던 쥐는 사라지고 없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10-
10화. "죽어있던 쥐는 사라지고 없었다."
2부.
10.
전화를 끊고 머리를 굴려본다. 할머니 신분증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일단 이계성 할머니 집으로 가야겠지. 그래야겠지. 이계성 할머니와 어떤 연관도 맺고 싶지 않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그래야겠지. 팀장님께 출장을 가겠다는 보고를 드린다.
"팀장님. 말씀드리자면 긴 이야기인데, 일단 이계성 할머니 집 좀 뒤지고 오겠습니다."
"뭐?"
"아. 그 뭐라고 할까요. 탐사? 노획? 하여튼 이계성 할머니의 생명이 걸린 일입니다."
"그럼 중요한 일이네. 수진 주임이랑 다녀와. 생사가 걸린 일인데. 한 명 더 데리고 가는 게 낫잖아."
팀장님으로부터 수진이와 동시 출격 명령을 받고. 수진이를 툭툭 친다.
"나의 자랑스러운 후배이자 하남시 인구 한 축인, 위대한 사회복지 공무원 이수진 나으리. 같이 출장 갑시다."
"나도?"
"너도 반말이나 존대 중 하나만 해주지 않을래?“
”시끄러. 마음 같아서는 팀장님 앞에서도 오빠한테 막말하고 싶은데 참는 거야.“
”그렇다면, 조금 더 존중을 담아 말해주지 않겠나 나의 후배이자 벗 수진이여.“
”한 번만 더 그딴 식으로 부르면 뒤질 줄 알아.“
”알았어. 어차피 뒤지러 가는 거니까 괜찮아."
수진이가 경악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농담의 맥락을 설명하는 건 애잔한 일이니, 윙크나 한번 날려준다.
"윙크? 오빠 술 취했어? 고생 끝에 낙은 안 오고, 병만 왔구나."
수진이는 주먹으로 내 팔꿈치를 정확히 가격했다. 맞아서 아픈 걸 보니, 나는 아직 살아는 있구나. 요새는 가끔 살아있다는 감각이 생경하다. 내가 살아있는 건지, 죽은 건지. 여러모로 살고 싶어서 수진이를 데리고 이계성 할머니 집을 향했다. 얼른 집을 뒤져서 신분증만 빼내자.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수진이 밥도 사주자. 다만 커피는 얻어먹어야겠다. 오전은 그렇게 밖에서 숨 좀 돌려야겠다. 주민센터 입구 자동문이 열리고. 수진이와 찬 공기를 밀어젖히며 문밖으로 나간다. 출장용 차량에 시동을 걸고 따뜻해질 때까지 잠시 기다린다.
"동노 오빠. 요새 괜찮아?"
"뭐 똑같지. 산다는 게 그렇잖아. 다들 이러고 살고."
"아니 농담하지 말고. 요새 표정이 너무 안 좋아. 오빠 가끔 얼굴에 경련 일어나는 거 알아?"
"글쎄. 그냥 못생긴 건 아는데 경련까지는 몰랐네."
"오빠 진짜 미쳤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고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해."
"농담 좀 그만해! 오빠 원래 이러지 않았어. 진중하기도 했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뭐든 헛소리로 대충 때우려고만 하잖아. 사람이 좀 불안정해 보여. 오빠 좀 쉬어. 빈말이 아니라 걱정이야."
"그런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오빠 예전에는 되게... 하여튼! 요새 좀 이상해."
"이는 원래 상했어. 임플란트 해야 할 것 같아."
"시끄러! 됐고. 이번 이계성 할머니 사건 끝나면 길게 휴가도 다녀와. 요새 오빠 보면 진짜 뭔가 불안해. 무슨 사고라도 당장 칠 것 같아."
"그래. 그래. 걱정 해줘서 고맙다. 역시 경기도 하남시의 왕! 강병1동의 마더 테레사 우리 대효지니아누스의 식견에 무릎을 탁 친다!"
"야잇 미친놈아! 걱정 해줬더니 염병을 떠네?"
"엇허. 나의 사랑하는 동문 수진아. 그래서는 안 돼. 이제는 사회적 위신이 있으니. 우리 고상하게 지내자. 작금의 너의 행태는 아주 배우지 못한 행동이란다. 조금 더 고상해지렴."
"고상? 고등어 상등품으로 맞을래?"
"수진아. 수진아. 나의 사랑하는 공무원노조 동지 수진아. 너가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머를 계속 한다면, 나 또한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단다."
결국 또 맞는다. 맞고 나면 입을 좀 다물게 된다. 역시 가끔은 맞아야 현실을 자각한다는 불량 교사들의 가르침이 맞았다. 차 안이 따뜻해져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엑셀러레이터를 밟는다. 출발.
솔직히 수진이의 지적이 맞다. 요새 스스로에게 위화감을 느낀다. 하루를 시작하고 대충 일을 흘리듯 보낸다. 퇴근하면 부질없이 TV를 보고, 철 지난 게임들을 슬롯머신 당기듯 생각 없이 하며 살고 있다. 그러면 대충 11시 40분이 되고 잠잘 준비를 한다. 누워서는 행정고시에 붙는 망상을 한다. 그리고... 나 요새 뭐하고 살더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오빠! 오빠!!! 앞에! 앞에!!!"
알람을 들은 사람처럼 현실을 급작스레 자각한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를 출발시킨 기억은 있지만, 운전한 기억이 없다. 정신을 차려보니 수진이의 비명에 깨어난다. 그리고 차 앞에는 한 남자가 누워있다. 나는 언제 운전을 한 걸까. 진짜 운전을 하기는 한 걸까. 재빨리 차에서 내려 누워 있는 남자를 살핀다.
"아저씨. 아저씨! 괜찮으세..?"
"아... 어... 으... 누가 잠을 깨워... 대낮에 잠 좀 자겠다는데... 아니 이게 누구야! 동사무소의 꽃미남 강 주임이잖아!"
이대윤 아저씨였다. 이대윤 아저씨는 입가에 술인지 침인지 모를 액체 자국이 나있었고. 언제나철머 건강했다. 천만다행으로 교통사고는 아니었다. 그저 이대윤 아저씨는 언제나 그랬듯 술에 취해 공터에서 누워있었던 것뿐이다.
"대윤 아저씨 괜찮아요?"
"으아... 머리야..."
술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대윤 아저씨에게 약간의 미안함은 있었지만, 술 냄새를 맡고 나니 미안함이 사라진다. 약간의 안도감, 큰 짜증. 그게 잘 섞인 분노가 내 안에 퍼진다. 수진이도 차에서 내려 대윤 아저씨를 살펴본다.
"아이쿠. 동사무소 강 주임이랑 이 주임이네. 여긴 어쩐 일이야? 아으 추워. 그리고 이번 겨울 김치는 대체 언제 줘? 김치를 줘야 내가 밥이라도 먹을 거 아니야."
"김치?"
"한국 사람이면 김치가 있어야 하는데. 나라에서 김치를 줘야 내가 밥을 먹지!"
"하아... 김치는 아직 후원자원으로 들어온 게 없어요."
"이번에는 무조건 나부터 김치 줘. 알겠어? 아오. 허리야."
눈을 꾹 감아본다. 심장 아래 어디서부터인가 감정이 울컥 올라온다. 목뒤가 뻐근해지고 어지럽다. 이를 꽉 깨물어본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고, 눈이 잘 안 보인다. 그리고 입안에서 '딱'하고 깨지는 소리가 난다. 이가 깨진 것 같다.
"야. 네가 사 먹어라. 나라에서 돈 주는 건 그런 거 사 먹으라고 주는 거야."
"아니. 근데 강 주임, 나한테 반말 하는 거야 미쳤어??"
"반말은 인마 네가 먼저 한 거고. 제발 반말 좀 하지 마라. 그리고 네가 반말 할 거면, 반말을 들을 각오로 해. 술 처먹고 사람들한테 민폐 끼치지 말고."
이대윤 아저씨가 주춤한다.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당황한 모양이다.
"미스터 깡! 나 이럼 서운해. 그리고 어린놈한테 반말 좀 할 수 있지. 콱 씨! 이 박사님도 나한테 존대 하는데 말이야."
대체 이 박사는 누굴까. 신바람 이박사가 트로트 열풍에 힘 입어 돌아온 걸까. 이대윤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온다. 이대윤 아저씨에게 술 냄새뿐만 아니라 이상한 악취까지 났다. 익숙한 냄새다. 순대였다. 이대윤 아저씨는 순대로 향수를 만들어 뿌린 건지, 온몸에 순대 냄새가 진동했다. 이쯤 되면 이대윤 아저씨가 순대 그 자체이지 않을까. 이대윤 한 마리 잡아서 순대라도 얻을 수 있을까. 요새는 순대도 비싸서 먹을 엄두가 안 난다. 다만 이대윤 아저씨 순대는 더러울 거다. 이대윤 아저씨는 담배를 많이 피우니까 순대에서 폐는 빼달라고 해야겠다. 알코올 중독이기도 하니까 간도 빼야지. 섬뜩한 망상이라는 걸 인식한다. 정신이 조금씩 돌아온다. 눈앞도 다시 잘 보인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
"아. 그... 아니에요. 대윤 아저씨 죄송해요. 제가 놀라서 반말을 했나 봐요. 대윤 아저씨 몸은 좀 괜찮으세요?"
"내가 미스터 깡이니까 봐주는 거야! 한잔하고 곤히 자고 있었는데. 미스터 깡이 나 죽지 말라고 이렇게 또 이렇게 깨워주네. 그래도 미스터 깡 내가 걱정됐지? 히히."
"대윤 아저씨야 내가 특별히 애정하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걱정돼죠. 그리고 제가 올해는 김치 큰 놈으로다가 꼭 챙겨드릴게요!"
"약속이다! 나 꼭 줘!"
"집에 가 계시면 제가 연락드릴게요. 날 추우니 얼른 들어가세요."
대충 너스레를 떨고. 대윤 아저씨를 돌려보낸다. 일단 시장 앞 공터에 차를 세운다. 수진이는 많이 놀랐는지 말이 없다. 다만 수진이를 위로해 줄 여력이 지금 나에겐 없다. 마음을 좀 진정시키려 운전석에서 멍하니 밖만 바라 본다. 역시 몽롱하다. 자동차 창문에 손을 붙여본다. 차갑다. 손끝에는 서늘한 추위가 느껴진다. 손바닥에는 땀인지 뭔지 모를 습기가 느껴진다. 내가 살아는 있구나. 수진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오빠. 진짜 정신과 한번 가봐. 요새 진짜 진짜 이상해. 교통사고 안 났으니 다행이긴 한데, 아니다. 나도 오빠 갑자기 다그쳐서 미안해. 요새 오빠 힘든 거 뻔히 아는데... 내가 도움이 못 되네."
"아니야. 아마 몸살일 거야. 하하하. 나도 이제는 늙고 병들었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수진이와 크게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받는다. 나도 너에게, 너도 나에게 화가 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크게 의미값은 없는 대화다. 수진이도 미안한지 억지로 즐거운 이야기를 이어갔다. 역시 수진이는 참 좋은 친구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뭔가 박살났다.
스무 살 어귀부터 나와 비슷한 길을 걸었던 수진이라면 지금 내가 왜 이렇게 이상한지 이유를 알지 않을까. 나중에 수진이한테 통닭 한 마리 사주고 물어봐야겠다. 정신 차리자. 다시 차에 시동을 걸고, 엑셀러레이터를 밟는다. 그렇게 이계성 할머니 집으로 향한다.
오늘은 이계성 할머니가 사는 빌라 앞에는 관찰하기 좋아하는 집주인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귀찮을 일이 없을 것 같다. 빌어먹을 똥궁빌라의 어둠을 헤치고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간다. 이계성 할머니 집의 문고리는 119 구급대원이 뜯어낸 상태 그대로다. 죽어있던 쥐는 사라지고 없었다. 왜 쥐만 갑자기 사라졌을까. 그 쥐는 이계성 할머니의 손톱을 먹은 쥐였으려나. 이계성 할머니 집 문을 열고 들어간다. 어둠이 더 짙어졌다. 휴대전화 랜턴을 손전등 삼아, 나와 수진이는 이계성 할머니 집을 뒤지기 시작한다. 목표는 이계성 할머니의 신분증이다. 노인 특성상 신분증은 분명 집 안에서 찾기 쉬운 곳에 있을 거다.
"쿵."
우리가 문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