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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Sep 12. 2023

목포 떼르미니 Termini

목포역

떼르미니 Termini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떼르미니는 이탈리아어로, 라틴어 떼르미누스 Terminus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떼르미누스는 '선의 끝'이라는 뜻입니다. '가만있자, 떼르미니? 터미널? 버스터미널? 우리가 사용하는 그 터미널?' 맞습니다. 그 터미널이 떼르미니 또는 떼르미누스에서 온 말입니다. '터미널은 웬만한 도시에는 다 있는 거 아닌가? 그리고 그게 끝이라는 뜻이 맞나?' 그 말도 맞습니다. 떼르미니는 우리가 평상시 이용하는 터미널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됩니다.


떼르미니는 우리말로 하면 종착역쯤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더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전적으로 떼르미니는 도로나 철로가 건설될 때 마지막 구간, 즉 그 노선이 끝나는 곳을 의미합니다. 특히 기차노선에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떼르미니가 되는 기차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은 바로 선로 끝이 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해당 노선을 달려온 열차는 떼르미니에서 승객과 화물을 모두 내리고 다시 원래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떼르미니가 단순하게 끝나는 마지막 기차역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다른 지선으로 연결되는 지선열차가 출발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즉, 떼르미니는 일정한 지역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교통 거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역이 떼르미니가 된 이유는 지리적인 영향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해당 역이 다양한 곳에서 출발한 인원과 화물 그리고 자본이 흘러들어와 합쳐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떼르미니가 이탈리아어이기 때문에 가장 유명한 떼르미니는 역시 로마 떼르미니 Roma Termini 기차역입니다. 오랜 기간 로마는 역사, 정치, 경제, 군사, 교통 중심지였습니다. 당연히 이탈리아 각 지역에서 출발하는 철도노선들은 모두 로마 떼르미니로 향합니다. 그래서 로마 떼르미니에 가 보면 눈이 휘둥그레해 질 정도로 많은 선로가 있습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도 자기가 가는 열차를 찾으려면 엄청 고생해야 합니다. 자칫 시간을 착각하거나 노선을 헛갈리는 경우에는 제시간에 기차를 타기 위해 먼 거리를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야 합니다.

로마 떼르미니 전경. 출처: Google image, Booking.com


목포역은 대한민국 가장 서쪽에 위치한 호남선 시종착역입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13년 5월 15일, 바다를 매립해 만든 10만 평 대지 위에 120평 규모로 역사驛舍를 짓고 정거장으로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1912년에 먼저 군산역을 짓고, 그다음 해에 목포역을 건설했습니다. 두 역은 일본식 모임지붕에 유럽식 건축장식이 첨가된 독특한 외관을 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당시 일본 철도역사 표준설계를 따르고 있었는데, 전통적인 목조양식이면서 전형적인 의양풍건축 擬洋風建築 스타일로 보입니다. 의양풍건축은 일본을 벗어나보지 못한 일본 건축가들이 일본 전통건축의 관점으로 서양의 건축양식을 보고 모방하면서 생겨난 건축양식이라고 합니다.

1914년 목포역 모습. 철도박물관 도록


애초 대한제국은 자력으로 호남선 철도를 부설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1904년 호남철도주식회사에 부설을 허가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일본은 우리 정부에 허가해 줬던 부설권을 취소하도록 강요했고, 강제 병합된 이후 자체적으로 공사에 착수하여 1914년 1월 11일, 대전-목포 간 호남선 전 구간을 개통했습니다. 호남선은 호남지방의 서부 평야지대를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어, 정치와 군사적 목적이 강했던 경부선과 경의선과는 달리 곡창지대를 위한 노선이었습니다. 프랑스가 1896년부터 철도부설을 끈질기게 요청했을 정도로 경제적 이점이 큰 노선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한제국 역시 1898년 호남선 관설안을 의결하여 서울에서 목포에 이르는 독자적인 철도를 부설하고자 노력했던 것입니다.

호남선건설공구약도. 1929년 발행된 조선철도사 제1권에 수록되었던 도면입니다. 출처: 철도박물관도록


현재 목포역은 호남 고속선과 일반열차가 운행하는 역입니다. 운행하는 열차로는 KTX, ITX 새마을과 무궁화호 열차가 있습니다. KTX는 용산역에서 목포역을 오가는 열차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용산역을 기준으로는 약 2시간 20분 정도가 걸려서 서울에서 목포를 가장 빠르게 이어주는 교통수단입니다. 그 이외 일반 열차로는 용산역과 목포역을 오가는 ITX 새마을과 무궁화호 열차가 있으며, 목포역에서 광주역으로 향하는 무궁화호, 그리고 목포역에서 부전역으로 향하는 무궁화호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목포역을 출발해 부전역으로 가는 이 열차는 광주 송정역, 서광주, 화순을 거쳐 순천, 창원 방향으로 향하는 열차인데, 하루 한 편 운행하고, 아침 9시 23분에 목포를 출발하면 오후 4시 4분에야 부전에 도착합니다. 약 6시간 41분 소요되어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행 중인 열차 중에서 가장 긴 편에 속한다고 합니다.

호남선종착역임을 알려주는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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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상식 1]

유명한 '목포의 눈물' 가사 속에는 삼학도라는 섬이 나옵니다. 목포항 바로 앞에 보이는 세 섬입니다. 지금은 매립되어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965년 12월, 섬이었던 삼학도가 간척사업으로 연결되면서 석탄, 곡물, 목재, 면화 같은 것을 수송하기 위해 목포역과 그 삼학도를 잇는 철도 노선이 가설되었습니다. 주택가 사이를 관통하는 열차로 소음도 심했다고 합니다. 2014년, 목포역과 삼학도를 잇는 철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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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역으로 향하는 기찻길은 2003년에 한 번 이설 되었습니다. 과거의 호남선 기찻길은 임성리역에서 현재 목포 종합버스터미널 인근을 지나 목포역으로 향했는데, 곡선화와 지중화 작업을 하면서 함께 이설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목포 시내에 있었던 작은 간이역인 동목포역이 폐역 되었습니다. 예전 노선이 있던 곳은 지금 대부분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동목포역이 있던 공간에는 옛날 역사를 복원해 놓은 작은 건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무궁화호 객차와 수도권 1호선 전동차를 연결해서 카페와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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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상식 2]

목포역사 인근 담벼락에는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비석이 하나 서 있습니다. 바로 멜라콩 다리 비석입니다. 목포역 역사를 언급할 때 가장 많이 회자되는 단어인 멜라콩은 사실 박길수라는 사람에게 붙여졌던 별명입니다. 멜라콩이라는 별명은 그가 일본 사무라이 영화 속 인물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장흥 출신으로 12살 때 목포로 건너온 그는 선천성 소아마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역 앞 과일노점, 짐꾼 등으로 매우 어렵게 살았지만 평생을 불우한 이웃을 위해 살았다고 합니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목포역 주변에는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모두 복개 覆蓋되어 길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하수로와 갯벌까지 그대로 있어 장마철에는 역사 안쪽까지 물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어 사람들 통행하는데 매우 불편했겠지요. 그래서 그는 목포시청에 다리를 놓아달라고 건의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거절과 장애인을 향한 비웃음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어렵게 번 돈과 사창가 여인들이 내어 놓은 기부금을 더해 다리를 세웠다고 합니다. 이 비석은 박길수 씨가 다리를 세운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세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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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원도심은 매우 작습니다. 처음 목포를 방문한 여행객들은 주요 관광지들이 목포역에서 걸어가면 불과 10여분밖에 걸리지 않고, 모두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라는 것에 놀랍니다. 조금 멀리 있는 목포 스카이워크나 케이블카 정류장, 서산동 시화골목까지도 시내버스를 타면 금방입니다. 더구나 현재 임성리역에서 시작해서 영암, 해남, 강진, 장흥을 지나 보성으로 이어지는 보성-임성리 간 철도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예정대로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24년에는 목포에서 보성까지 전남 남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기차 여행도 지금보다 더 편하고 빠르게 할 수 있다고 하니 기대해 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기대에 잔뜩 부풀어 올라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목포역 근처를 걷다 보면 목포역을 다시 크게 지을 사업비가 반영되었다는 커다란 현수막을 볼 수 있습니다. 노선도 더욱 확충하고 역사도 더욱 높고 멋있게 지어 상업적으로도 잘 활용해 보겠다는 의도입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아직 사업방향이나 규모가 정해지지 않아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 될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현재 목포역 부지가 너무 좁아서 외곽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고속열차가 더 많이 다니려면 선로도 더욱 확충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느 방향 든 간에 목포역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역사적 의미, 아니 최소한 멜라콩 다리 비석만이라도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 목포역과 같은 떼르미니는 서울역과 부산역 정도입니다. 목포가 누렸던 경제적 지위는 지나간 과거라고 해도 목포 떼르미니가 가지고 있는 지리적 상징성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이어지고 연결된 각종 철도노선을 통해서 사람이 모이고 화물이 도착하겠죠. 언젠가는 과거에 버금갈 정도로 문화 융성기를 맞이할 날이 오리라 기대해 봅니다. 그 중심에는 분명히 다른 것이 아닌 목포 떼르미니가 있을 겁니다.



참고자료

한국철도공사 철도박물관, 철도박물관 도록, 의왕시, 2021.

국가철도공단, 한국의 철도역(e-book), 2021.



[관람 정보]

[주소] 전라남도 목포시 영산로 98

[관람료] 무료

[관람시간] 제한 없음.

[주차 정보] 목포역 공영주차장 있음.(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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