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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총각 Nov 23. 2018

거절에 익숙해지기

텐트와 침낭

오늘만 벌써 히치하이킹 4번, 버스 1번이다. 도착한 곳은 버스도 자주 없는 경기도 연천의 한 시골 마을. 마을의 이장님을 찾기 위해 마을회관에 들어섰는데, 분위기가 썰렁했다. 회관에는 아무도 안 계셨지만, 다행히 이장님 전화번호가 보여 연락을 드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역 음식과 지역 특산물을 주제로 배낭여행 중인 청년입니다! 저는 시골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밥을 얻어먹으면서 여행을 하고 있는데, 혹시 이 마을에 일손 필요한 곳이 있을까요?"


"우린 그런 거 안 합니다"


내 말이 끊어지게 무섭게 이장님의 싸늘한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이장님의 싸늘한 말투보다 '그런 거'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내 나름 의미 있다고 생각한 여행이 남들에게는 그저 '그런 거' 혹은 '의미 없는 것'이 될 수 도 있겠구나. 


이날은 배낭을 멘 채 6km 이상을 걸었다

마음을 다잡고 다른 마을회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또 다른 마을회관에 가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시간은 늦었고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이제는 일할 곳이 아닌 '잠잘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다시 이장님께 연락을 드려 마을회관에서 잠이라도 잘 수 있는지 여쭈어 보았다. 결과는 또다시 'NO'였다.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가지고 다녔던 텐트와 침낭이 사용될 타이밍이었다.


"이장님, 그럼 혹시 마을회관 앞에서 텐트를 치고 하루만 자도 될까요? 일찍 나가겠습니다."


"그래요. 대신 일찍 정리해주세요. 마을 어르신들이 싫어하실 수도 있어서요. 미안합니다."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진 않았지만, 그동안 나를 받아주신 분들에게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 


'그래 이렇게 거절하는 게 당연한 거야.'


아무리 일손이 필요하다고 해도 낯선 사람을 자기 집으로 받아준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그동안 내가 너무 당연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세상이 흉흉해졌기에 모르는 사람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나는 그동안 내 배낭 속에 꼭꼭 숨겨져 있던 텐트와 침낭을 꺼내기 시작했다. 

텐트를 치고 근처 수돗가에서 간단하게 세수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몸을 구겨 자그마한 텐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처음으로 사용해보는 텐트 안은 혼자 들어가기에 딱 알맞은 사이즈였다. 발을 뻗고 누워 오늘의 일정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왜 이곳에 텐트를 치고 누워 있을까? 무엇을 위해 이런 고생을 하고 있을까?'


5월의 연천은 더웠지만, 해가 지고 나니 제법 쌀쌀했다. 예비로 가져온 두꺼운 옷을 모두 꺼내 입고 침낭 속에 들어가 있었지만, 바닥의 찬 기운이 그대로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내가 시작한 일이지만 괜한 서러움이 몰려왔다. 집으로 돌아가면 따뜻한 곳에서 마음 편히 잘 수 있을 텐데...  


이제는 거절에 익숙해져야 한다



2018.05.25

경기도 연천의 한 마을회관 앞에서


@도시에서온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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