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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총각 Jan 24. 2019

나의 기억 속 충무김밥

조작된 맛의 기억?

7년 만이다.


7년 전 이맘때쯤, 군대 동기와 휴가를 내고 통영으로 여행을 왔었다. 그 당시 통영은 한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관광객이 한창 증가하고 있었다. 통영은 관광도시로써 갖춰야 할 조건을 아주 잘 충족시키고 있는 곳이다. 관광지, 먹거리, 포토스팟, 액티비티 등... 그중에서도 '통영'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충무 김밥이다.


그 당시 아무 정보 없이 들어갔던 통영항의 한 충무김밥 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할머니께서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주셨다. 조금 이른 시간에 갔던지라 손님은 나와 친구 둘 뿐이었고, 할머니는 우리를 좌식석에 앉히셨다. 우리는 바로 충무김밥을 주문했다. 잠시 후 따뜻한 시래기 된장국이 나오고, 이어 충무김밥이 나왔다. 충무김밥의 구성은 밥에 김만 싸놓은 김밥과 꼴뚜기 무침(대부분 오징어나 오징어가 비쌀 땐 어묵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섞박지(무김치)이다.


따뜻한 시래기 된장국 한 숟가락에 아침밥을 먹을지 말지 고민했던 나의 입맛이 확 돌아왔다.


"거기 김밥이랑 오징어 무친 거랑 무김치랑 같이 찍어서 먹어봐"


할머니가 알려주신 방식대로 긴 꼬치에 김밥과 오징어무침, 무김치를 연달아 꽂아 한입에 가져갔다.


"우와"


"오~"


우리는 김밥을 입에 넣자마자 감탄했다. 생긴 게 간단해 보여서 별 기대 없이 먹었는데, 세 가지 맛이 입안에서 한데 섞이니, 복합적인 맛이 서로 어울리며 정말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할머니 진짜 맛있어요"


우리는 충무김밥 2인분을 남김없이 먹고, 다시 2인분을 주문하여 포장했다.


"넉넉하게 넣었으니까 돌아다니면서 맛있게 먹어"


"감사합니다"




2018년 8월. 7년 만에 다시 찾은 통영항 앞. 충무김밥 가게가 즐비해있는 거리는 7년 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뭔가 달라진 느낌인데?'


아니나 다를까, 전에 왔던 그 할머니가 운영하시던 충무김밥 집은 사라지고 다른 충무김밥 집이 생겨있었다. 혹시나 다른 가게에 계실까 해서 주변에 있는 다른 충무김밥 가게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그때 그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쉬웠다. 왜 그런 느낌 있지 않은가? 나만의 추억 속 장소가 사라지면 나의 추억도 같이 사라지는 느낌. '충무김밥'하면 떠올렸던 나만의 장소에 가고 싶었는데, 그곳이 사라지니 갑자기 어딜 가야 할지 고민됐다.


대충 인터넷을 뒤져 맛집이라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2명의 외국인 종업원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충무김밥 1인분 주세요"


"죄송한데 1인분은 주문이 안됩니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가끔 이런 게 안 좋다. 김밥인데 1인분 주문이 안된다니... 아쉬웠지만 그냥 주문하기로 했다.


"그럼 2인분주세요"


잠시 후, 시래기 된장국과 함께 주문한 충무김밥이 나왔다.

충무김밥

김밥의 겉모습은 내가 기억하던 충무김밥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전에 배운 대로 김밥과 오징어무침, 섞박지를 한 번에 꽂아 한입에 넣었다. 와구와구.


맛이 나쁘진 않았지만 예전의 그 맛은 아니었다. 물론 가게가 달라서 그럴 수도 있고, 그동안 나의 입맛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7년 전 먹었던 충무김밥은 정말 맛있었는데...'


음식은 단순히 음식의 '맛'으로만 기억되지는 않는다.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그때 그 음식을 누구랑 먹었는가, 그 음식을 먹었을 때의 분위기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섞여 그 음식에 대한 기억을 만드는 것 같다.(마치 충무김밥처럼) 또한 어떤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그 맛에 대한 기억을 더 좋게, 더 긍정적으로 '조작'할지도 모른다.


조작된(?) 나의 '충무김밥' 추억은 그동안 누군가가 통영에 간다고 했을 때, '통영에 가면 꼭 충무김밥 먹어봐'라고 말하던 근원이었는데...


이날 찾아간 충무김밥집은 나에겐 약간의 아쉬움을 주었지만, 다음에 또다시 통영에 가게 된다면, 그때도 역시, 난 충무김밥을 찾을 것이다.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지역 음식과 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전국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시골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151일간 전국을 돌아다닌 여행. 직접 체험했던 농사일, 각 지역 농부님들의 다양한 이야기 등. 여행을 하며 느낀 모든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2018.08.21

경남 통영에서


@도시에서온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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