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과 황토집
전에 있던 농가의 소개로 찾아간 경남 고성의 한 농가. 이곳은 위치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마을버스를 타고 내린 곳에서 또 차를 타고 굽이굽이 마을길을 돌아 들어가니, 자연 속에 숨어있던 황토집이 살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내가 다녀본 농가 중 '친환경'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먼저 가장 눈에 띄였던 황토집은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과는 다르게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건강을 위해서 내가 직접 만든 집이야"
"이 집을요?"
이곳은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어머님의 남동생 이렇게 총 3분이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고 계셨는데, 이분들이 지내는 집 2채뿐만아니라, 가끔 민박 손님을 받는 객실 건물까지 총 3채의 건물이 모두 황토집이었다. 이 모든 황토집은 모두 아버님의 손길을 거쳐 탄생된 곳이라고 하셨다. 건강을 생각해 모두 친환경 소재로 지었을 뿐만 아니라, 실내에는 불가마 같은 것도 만들어 두셔서 불을 지펴 찜질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있었다.
"민박으로 사용하는 곳은 가끔 몸이 안 좋은 손님들이 오셔서, 며칠간 묵으면서 찜질도 하고 밥도 먹으며 힐링하고 간다고"
아버님 말씀처럼 황토라는 소재는 왠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을 주었다. 나도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황토가 주는 편안함 때문인지, 잠을 정말 편하게 잤던 것 같다. 집 내부에서 가만히 있어도 은은하게 퍼지는 황토향은 정신을 맑게 만들어주었고, 눈이 편안해지는 황토색은 눈의 피로를 덜어 주는 느낌이었다. 마치 힐링 캠프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건강을 생각하시는 이분들의 철학은 농사에서도 이어졌다. 이분들은 돌배라는 아주 작은 배를 키우고 계셨는데, 마치 낑깡(금귤)처럼 작은 크기의 돌배는 '이것도 배인가?' 싶을 정도로 작고 귀여웠다. 단맛보다는 신맛이 강해 오미자처럼 다양한 맛을 가지고 있는 돌배는 과일처럼 먹기보다는 주로 약용으로 사용된다고 하셨다.
세분은 이 돌배를 농약과 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자연의 섭리대로 키우는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계셨다. 사실 말이 좋아 자연농법이지, 잘 모르는 내가 봤을 땐 그냥 방치시켜두는 것 같았다.
"알아서 잘 크겠지"
이분들은 정말 돌배나무만 심어놓을뿐, 그 이후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그래도 좀 관리를 해주셔야 하는거 아닌가요?"
"얘네들도 힘든 환경에서 자라야, 약효가 더 좋아지는 거야"
음...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보단, 척박한 땅에서 자란 잡초가 더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자연농법으로 키우다 보면, 화학 비료를 쓰지 않기 때문에 생산효율이 줄어들게 된다.
"그럼 생산량이 많지는 않겠네요"
"그렇지. 그래도 우리는 이걸 돈을 목적으로 하는 건 아니니까"
참 신기한 분들이다. 농사짓는 평수로는 작은 규모가 아닌 것 같은데,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신다니... 이분들이 지향하는 것은 '건강한 식생활 교육'이었다. 사람들이 친환경에 대해 생각하고, 직접 느껴볼 수 있는 식생활 교육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하셨다. 자연의 맛을 느끼고 싶은 분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식생활 교육을 하기도 하고, 며칠간 머물면서 진짜 친환경이라는 것에 대해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이분들의 목표라고 하셨다. 이런 목표를 가장 확고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음식이었다.
나는 며칠간 이곳에 지내면서, 어머님이 해주신 음식을 맛보며, 식재료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어머니가 음식을 준비하는 주방에는 이것저것 신기한 게 정말 많았다. 돌배 효소, 양파 효소 등 각종 효소와 여러 종류의 집간장 그리고 소금까지. 어머님은 인공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우리 집은 신안에서 소금을 사 와. 그리고 직접 3년 이상 간수를 빼고, 신랑이 만든 황토가마에 구워서 사용해. 그리고 그런 소금으로 간장을 만들고..."
거실에서 어머님과 나의 대화를 들으시던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그거 알아? 예전에 염전 근처에 사는 아이들은 소금을 훔쳐먹었어"
"왜요?"
"소금이 달짝지근하거든"
"소금이 달다고요?"
"응 간수가 잘 빠지고, 잘 구워낸 소금은 약간의 단맛을 가지고 있어. 한번 먹어볼래?"
나는 아버님이 건네신 소금을 손으로 조금 집어 입에 털어 넣었다. 반신반의했던 나의 생각이 달라졌다. 정말 소금에서 달짝지근한 맛이 났다.
'뭐지?'
나를 바라보시며 흐뭇하게 웃으시는 아버님. 나는 다시 한번 소금을 맛보았다. 짭짤하면서 달짝지근한 감칠맛이 입안에서 계속 맴돌았다.
"진짜 소금에서 단 맛이 나요"
"이걸로 음식을 하면 뭐든 맛있어"
정말이었다. 내가 이곳에 지내는 동안 어머님이 차려주신 밥상은 이번 여행을 하면서 먹어본 음식 중에 가장 맛있고 기억에 남는 음식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특히, 나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음식은 바지락 국이었다. 바지락과 소금, 그 위에 올라간 쪽파 조금이 전부였는데도 불구하고, 깔끔하고 감칠맛 나는 국물이 일품이었다. 자꾸만 손이 갈 정도로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국물 요리 중 단연 으뜸이었다.
"바지락은 아시는 분이 직접 잡으신 거고, 소금은 우리가 직접 간수를 빼 구운 거고, 쪽파는 우리가 요 앞에 직접 심어놓은 거로 만든 거야"
"정말 재료가 좋으니 맛이 훌륭하네요"
"이래서 뭐든지 기본이 가장 중요한 거야"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음식에 관심이 많아 조리고등학교에 입학해 조리에 대해 배웠고, 이후 식품영양학과에 진학하여 나름 음식과 식품에 대한 기초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크나큰 자만이었다. 지금껏 소금의 참맛도 모르고, 음식의 재료가 어디서 왔고 어떻게 생산되었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음식에 가장 기본이 되는 재료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그저 음식을 '어떻게 조리할 것인지' 조리하는 방법에만 신경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재료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아... 좋은 재료를 사용하면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다고"
"그렇네요..."
"뭐든지 대가가 필요해. 우리가 소금에 이런 투자를 하지 않고, 음식을 맛있게 만들려면 각종 조미료를 사용하면 돼. 그런데 그런 것들은 우리에게 좋은 게 아니잖아. 나중에 언젠간 몸에 반응이 올 거라고"
"실제로 우리 딸은 어릴 때부터 인공조미료를 아예 안 먹였는데, 지금은 밖에서 외식을 못할 정도야. 밖에서 먹는 음식이 맛있고 편하지만 몸에는 좋지 않아. 특히 편의점 음식 같은 것들. 싸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지만 그게 몸에 좋을까?"
"내가 짓는 황토집도 그래. 황토집이 짓기는 힘들고 오래 걸려도 재료가 거의다 친환경 소재라 아토피에도 걱정 없고, 건강에 좋다고. 그런데 요즘 아파트나 건물들 짓는 거 보면, 화학적인 소재도 아무렇지 않게 쓰고 해서 아토피 환자들이 늘어나잖아. 실내 공기도 안 좋고. 물론 쓰기에는 콘크리트로 지은 집이 편할 수 있어
하지만, 뭐든지 편리함의 대가는 있는 거야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지역 음식과 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전국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시골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151일간 전국을 돌아다닌 여행. 직접 체험했던 농사일, 각 지역 농부님들의 다양한 이야기 등. 여행을 하며 느낀 모든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2018.08.21-08.24
경남 고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