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레이먼드 카버.’ 내가 좋아하는 미국 작가다. 그의 이야기에는 늘 평범한 소시민들이 등장한다. 주인공들의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을 통해 그 안에 들어있는 삶의 치부와 상처를 드러낸다. 그들의 삶에는 보고도 외면하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진실이 들어 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어둡고 불편하다. 카버는 동정이나 연민이 아닌 정직하고 무심한 태도로 삶을 응시한다. 그리고 이를 더없이 간결한 언어로 그려낸다.
‘셰프의 집’ - 관계가 악화되어 헤어졌던 부부는 헐값에 새로 세든 집에서 평온한 나날을 보내며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이제 그 집을 비워줘야 한다.
‘열’ - 아내가 직장 동료와 바람이 나 아이들을 버리고 집을 나가고, 주인공은 배신의 상처와 육아 문제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 8살이 된 아들이 생일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던 길에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제과점에서는 케이크를 찾아가라고 계속 연락이 오고, 이에 화가 난 부부는 제과점을 찾아간다.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제과점 주인은 방금 구운 빵을 먹으라고 내어주고, 그들은 빵을 먹으며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다. 불행 중에도 따스한 위안과 희망이 엿보이는 이야기다. 약간 바뀐 내용과 제목으로 다른 책에도 실린 적이 있다.)
‘대성당’ – 아내가 화자와 만나기 전부터 알고 지낸 맹인 친구가 이들을 방문하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많이 배우지도 않았고, 좋은 직장을 가진 것도 아니다. 이혼을 했거나, 실직을 했고, 알코올 중독인 사람들이다. 이 책뿐 아니라, 내가 읽은 대부분의 그의 소설이 이와 비슷하다. 카버 자신이 경험한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인생의 2/3를 궁핍하게 살았다고 한다. 부모는 가난했으며, 학력도 별 볼 일 없었다. 대부분의 블루칼라 계급이 그렇듯이 그의 아버지도 말년에는 반복되는 실패에 절망하며 반 폐인으로 지냈다. 그 역시 소설가로 성공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십 대 후반에 결혼했고, 늘 궁핍했으며, 일찍 얻은 두 아이들의 양육비도 부담해야 했다. 그래서 공장 잡역부, 정원사 등 다양한 일을 전전했다. 부족한 시간을 짜내서 작품을 써야 했기 때문에 단편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