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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May 27. 2023

미니멀, 멀고도 먼 길


누군가 종교를 묻는다면, 장난을 반 섞어 "나는 미니멀리즘을 믿습니다." 라고 대답한다. 고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었다.

https://brunch.co.kr/@dontgiveup/150


나는 미니멀리즘의 힘을 믿고 따른다.

어려운 시기를 미니멀 라이프를 통해 버텨냈다.


소유한 물건을 간소화하고, 근본적인 원칙을 세워 결정하는 등 삶 자체를 심플하게 만들었을 때의 효과를 경험했기 때문에, 나에게 미니멀리즘은 강박에 가깝다.


인간이 하루에 쓸 수 있는 관심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며 옷장 앞을 서성이고 입었다가 벗었다가 반복하며 옷을 고르는 에너지, 어떤 신발을 신을지 고민하는데 드는 에너지. 모두 아깝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소모하는 시간과 에너지도 아깝다. 눈 앞에 잔뜩 쌓여 있는 물건들에 관심을 쏟고, 청소하지 못한 잡동사니들을 쳐다보며 무의식 저 안쪽에서 불쾌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을 단순하고 깔끔하게 만들어 놓고, 그 에너지를 온전히 전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에 집중하고 싶다.


아래 그림은 산티아고 순례길 도중에 만날 수 있는 벽화인데, 내가 지양하는 모습을 너무나 잘 묘사했다.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다. 요새 가장 큰 관심사다. 종교적인 이유는 아니다. 그냥 '걷는 걸 좋아해서' 라고 해두자. 그래서 순례길과 관련된 글을 많이 읽고, 경험을 기록한 유튜브도 찾아본다. 얼마나 간소하게 가벼운 짐으로 갈 수 있을지, 순례길을 걷는 내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해본다. 800km를 걸으려면 무조건 가벼워야 한다.

https://santiagoinlove.com/en/myth-backpack-ideal-weight-10-percent/


그냥 보고만 있어도 힘든 그림이다. 인생과 같다. 나는 위 사진의 노인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저렇게 많은 물건과 욕심들을 내 인생에 들여놓고 짊어지고 갈 능력도 열정도 없다. 내가 만약 순례길을 걷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나는 어떤 물건을 가방에 넣고 출발할까. 지금 내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쓸 데 없는 물건이 집 안 이나 회사 책상 위 등에 놓여있다면, 내 눈엔 이렇게 보인다.

어김없다.


(c)indiatoday.com출처 : e마인드포스트(http://www.mindpost.or.kr)


그런 의미에서 예전 직장에서 내 책상을 찍어놓은 사진을 다시 꺼내봤다.

사용하지 않는 것이 차지할 자리는 없다. 간소하게 생활하려면, 정말 마음에 드는 좋은 물건을 하나 선택해야 한다. 맥북은 훌륭한 배터리 타임과 트랙패드를 갖고 있다. 따라서, 충전 케이블이나 마우스는 책상 위에서 치워도 좋다. 스티브 잡스도 이런 모습을 원했을 거라 믿는다. 창작자의 의도. 주렁주렁 연결된 선들은 원치 않았을거다.

책상 위, 빈 곳이 많으면 머릿속이 정돈된다.


현재 재직중인 회사의 자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렇게 업무하면 간소하고 편리하다. 무엇보다, 깨끗하다.


요샌 똑같은 옷을 입고 출근한다. 같은 옷을 여러벌 가지고 있다. 아침에 옷을 고르기 위해 옷장 앞을 서성이고 싶지 않다. 계절에 따라, 유행에 따라 옷을 사기 위한 고민도 없다. 사치품, 명품도 필요 없다. 세탁기로 쉽게 휙 돌리고 아무렇게나 건조할 수 있는, 손이 덜 가는 제품을 좋아한다. 놈코어 만으로도 충분히 깔끔하게 살 수 있다. 삶 자체가 가볍고 심플해진다.


집은 어떤가.

집이 간소하면 청소가 편하다. 불필요한 가구나 수납장은 없다. '바닥이 모두 보이는 상태' 이기 때문에 로봇청소기가 접근하지 못할 구역은 없다. 스스로 청소하지 못 할 상태, 규모의 집을 소유하는 것은 아무래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직접 청소하지 않으면서 그 공간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믿지 않는다.
내가 혼자 청소할 수 없는 크기의 집을 소유하는 건 괴상한 일이다.

‘나의 친애하는 적’ -허지웅-


그래서 우리 집 거실은 이런 모양이다. 필요한 것만 둔다. 벽에는 시계도 걸지 않는다.

나는 사진을 잘 못찍는다 1


집에 있는 내 책상도 작고 심플한 모양이다. 의자는 없다. 수백만원 짜리 허먼 밀러 의자가 그렇게 좋다던데, 내겐 거대한 잡동사니 일 뿐이다. 의자는 식탁 것을 필요할 때마다 가져다 쓰면 된다. 내가 식탁과 책상에 동시에 앉아있을 확률은 0에 수렴한다. 양자역학 영역에서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의자가 중복으로 놓여있을 필요는 없다. 그거 옮기는데 10초도 안걸린다. (집이 수백평이라 옮기는 데 힘들다면 의자를 하나 더 사자)


바닥이 보이면 청소가 쉽다. 지저분해질 일이 없다.


내 책상은 아래와 같다. 붉은 조명을 좋아해서 스탠드 하나를 옆에 두었다. 어두운 방, 조명을 켜 놓으면 집중하기에 좋다. 글도 잘 써진다. 개인 노트북도 맥북을 쓴다. 이유는 앞서 설명했다. 가장 좋은 것 딱 하나면 된다.

나는 사진을 잘 못찍는다 2


나는 정리할 것 없는지, 길 잃은 하이에나 처럼 집 안을 어슬렁 거린다.

마침내 뭔가 발견해서 정리하는데, 그 때 마다 기분이 좋다.

이건 강박적인 중독에 가깝다.


언젠간 내 짐 모두가 백팩 하나에 들어갈 날이 오리라 믿는다.


산티아고 순례길 짐싸기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또 해봐야겠다.

오늘은 어떤 짐을 빼볼까나.



이건 좀 사족인데,

브런치스토리 보다 브런치가 훨씬 좋습니다.

키보드를 사용하지만, 펜으로 종이에 꾹꾹 눌러쓰는 기분이 드는 플랫폼이었는데.

아날로그 감성은 이제 안녕인건지.

그냥 그렇다구요.


안녕,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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