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캐나다의 국민 카페 '팀홀튼'
60년의 역사를 가진 브랜드로, 캐나다에서는 맥도날드를 능가할 정도로 큰 규모, 저렴한 가격에 커피와 도넛 등을 즐길 수 있는 이른바 '가성비' 커피 전문점으로 인기가 높다. 캐나다에는 무려 3581개의 매장이 있다고 하니 그 인기가 실로 대단하다. 싸고 맛있는 커피를 제공한다는 의미로 보면, 한국의 '메가커피' 느낌이라고 보면 될까. (메가커피 비하 아닙니다. 나는 메가커피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마시고 있다.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커피를 제공해주어서 정말 고맙다.)
그런 '팀홀튼'이 며칠전, 2023년 12월 14일 신논현에 1호점을 오픈하며 한국에 진출했다. 미국에서도 버거킹을 소유한 레스토랑 전문 브랜드 RBI가 팀홀튼을 소유했다던데, 한국 진출도 한국 버거킹을 운영하고 있는 BKR이 사업을 담당한다. 강남 교보타워 앞 특이한 그 빌딩 1층이다.
어떤지 호기심이 생겨서 와봤다.
궁금하면 직접 가서 보는게 최고다.
내부는 이렇다.
주문해보자. 역시 키오스크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캐나다 대표 가성비 커피라고 하지 않았었나? 캐나다 팀홀튼에서는 커피 한잔을 2,700원에 먹을 수 있다며? 신논현 팀홀튼에서 주문한 아메리카노는 4,000원이었다. (M사이즈 기준)
그래서 좀 찾아봤다.
한국의 가격 책정을 보자.
왜죠? 100원 200원도 아니고, 1,300원을 더 받는다고?
혹시 다른 메뉴도 마찬가지인 걸까. 설마. 팀홀튼의 인기 메뉴인 미니도넛 '팀빗'을 살펴보자. 작고 귀여운 도너츠를 상자에 넣어 저렴하게 판매한다니 인기가 높을만 하다. 간식으로 제격이다. 던킨 도너츠의 먼치킨 같은건가보다.
그런데 가격이 이상하다? 분명히 싼 도너츠라서 국민 간식이라고 했는데?
응? 한국은 4,000원을 더 받는다고? 7,000원이면 캐나다에선 두박스 사고도 남는 돈이잖아요. 대체 왜?
https://n.news.naver.com/article/031/0000800505?sid=101
팀홀튼의 국내 운영사인 BKR 측은 "각 국가별 경제·시장·니즈·운영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책정했다"고 밝혔다.
아니, 선생님. 저렴한 국민 카페라면서요. 혹시 한국이 캐나다보다 선진국이고 GDP가 높은건가요? 아니면 정부에서 우리 몰래 커피에 어마어마한 세금을 붙이고 있는 건가요? 무엇을 종합적으로 검토했으며, 저렇게 비싸야 될 이유는 무엇인지?
답은 간단하다.
'팀홀튼'은 한국의 과시적 국민성을 잘 파악했다. 비싸야 팔린다. 간지나고, 우월감을 느끼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으니 잘 팔린다. 그걸 ‘프리미엄 전략’이라고 포장한다. 영리하다. 한국은 그런 나라가 되었고, 여기서는 그래도 된다. 샤넬백을 사려고 새벽부터 백화점 앞에서 줄을 서는 나라다. 오픈런 알바가 있는 나라다. 한국이 세계 사치품 소비 1위 국가임을 잊지말자. 일단 비싸게 팔면 명품이 된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그렇게 하는거다. 누구 욕할 것 없다. 내가 '팀홀튼' 대표라도 그렇게 할거다. 팔리는데 왜 가격을 낮추지? 최대한 올려! 그래도 줄 서서 먹어준다구!
이른바 호구가 되었다.
호구(虎口) : (명사)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커피를 1,700원 비싸게 팔고, 도너츠를 4,000원 비싸게 팔아도 되는 나라. 그래도 외면하지 않고 아침부터 줄을 서서 팔아주는 나라. 글로벌 호구.
이런 일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늘 그래왔고,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다. 다른 브랜드를 더 알아볼까나.
이케아의 '한국 고가 정책'은 유명하다. 한국 이케아 제품은 미국보다 비싸다. (미국을 이겼다고 자랑스러워 해야 되는건가?) 왜 그렇게 했냐면,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탄산수의 대명사 '페리에'의 경우는 어떨까. 당연히 한국이 더 비싸다. 그 물가 비싸다는 영국보다도 3배 더 비싸다.
천연탄산수 가격을 조사한 결과, 프랑스산 페리에는 서울보다 물가가 53%(액스패티스탄닷컴 2015년 발표 기준) 비싼 영국에서 가격이 3배가량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750㎖ 용량의 페리에는 국내 홈플러스 매장에서는 4800원인 반면, 영국 내 대형마트 테스코에서는 1558원(0.96파운드)이다.
출처 : 시사플러스(https://www.sisaplusnews.com)
하나만 더 확인해보자. 청소기로 유명한 '다이슨'. 여긴 더 심각하다. 한국만 비싸게 파는 것에 더불어 A/S는 신경도 안쓴다. 비싸게 팔고, 관리는 무시해버린다.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다. 하지만 괜찮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다들 집에 다이슨 청소기 하나 쯤은 놔야 제법 그럴듯 하다고 생각하니, 너도나도 팔아준다. 인테리어의 완성은 역시 다이슨 아니던가? 헤어 드라이기도 비싼 다이슨으로 하나쯤 있어야지. 어쩐지 더 고급스럽게 머리를 말릴 수 있는 것만 같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건 물론이다. 비싸고 A/S는 엉망인데, 없어서 못산다. 줄을 선다.
한국에서는 비싸게 팔고, A/S는 안해줘도 돼~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왜 한국에서만 이러는 걸까.
저러면 팔아주지 않아야 하는데, 팔리니까 그러는거다.
타인과 비교하여 자신의 행복을 측정하는 사회에서는 남들보다 비싼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곧 행복이 된다. 우리가 그렇다. 하루종일 SNS을 들여다보며 남들과 비교하고 본인 처지를 비관한다. 나도 남들이 올린 피드 속의 사진처럼 '고급' , '럭셔리'를 가져야 행복해진다. 아니 적어도 남들 하는 건 따라서 해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다. 허세의 피라미드 꼭대기를 향해 열심히 기어 올라간다. 빚을 내고, 대출을 받아가면서 말이다.
가계 부채는 세계 1위지만, 비싼걸 소비하면 '부자처럼 보일 수 있다'는 믿음.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중요한' 한국인의 습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공략한 '팀홀튼'. 글로벌 브랜드 마케팅의 승리이다. 우리는 패배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패배할 공산이 크다.
팀홀튼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커피가 이상하게 쓰디쓰다.
이제 그만 알아봐야겠다.
한국은 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