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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Oct 06. 2021

서초동 파리크라상 토요일 오전 10시


"아빠는 요 앞 빵집에서 기다리다가 시간 맞춰 올께. 잘하고 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아들을 학원 교실로 들여보내고 뒷모습을 한참 바라본다.


어느 부모든 마찬가지겠지만, 아이 학원 라이딩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특히 요즘 같은 사교육 천국의 시대에는 그 횟수가 서로 다를 뿐, 부모들은 모두 학원 라이딩을 '뛴다'. 바쁜 부모들은 '라이딩 이모' 라는 분을 두고 학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역할을 맡긴다고 하는데, 우리 가족은 그보다는 시간 여유가 있는 편이라 직접 라이딩을 한다. 주로 내가 담당한다. 나는 운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또 다른 분야에서 우리 가족을 위해 헌신한다. 아내와 나는 각자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우리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우리 가족은 그런 식으로 부드럽게 물 흐르듯 굴러간다.


토요일 오전 10시 라이딩은 이렇게 아이를 학원 교실로 들여보내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금부터 수업이 끝날 때까지 2시간 가량 여유가 난다. 기다리면 된다. 내가 아끼는 시간이다.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소중하다. 집에서 읽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게 좀 다르다. 책이 잘 읽히는 장소와 분위기, 그리고 시간이 있다. 스위치가 켜지듯 독서 모드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학원 앞 2시간' 이다.

'매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이 은근히 루틴한 강제력을 발휘하면서 독서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모든 수행자들은 이렇게 매번 반복되는, 그리고 피할 수 없는 행위들을 하며 자신을 갈고 닦지 않는가. 이렇게 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집에서 챙겨온 책을 가지고 학원 바로 앞에 있는 파리크라상으로 간다. 이 시간에는 아직 사람이 없다. 매번 앉는 가장 깊숙한 구석 끝자리로 간다. 주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없는 사람인 척 독서할 수 있는 곳이다. 적당한 소음과 음악이 독서를 기대하는 뇌를 자극한다. 가져온 물건을 대충 놓고, 주문하러 간다. 커피와 크로아상 하나를 부탁하고 자리로 돌아온다.


이 시간 이 파리크라상에는 그 특유의 나른한 분위기가 있다. 토요일 오전이라 아무도 조급해하지 않고 짜증내지 않는다. 휴일의 첫날 오전은 그렇게 사람들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나보다. (주 4일제 도입이 시급하다. 그럼 전쟁도 없어질 듯) 이 곳은 브런치를 메뉴로 제공한다. 스크램블 에그, 양송이 스프 등을 곁들인 샌드위치 정식 같은 메뉴를 브런치로 내놓고 있다. 그래서 가족단위 손님이 많다. 늦은 아침겸 점심을 먹으러 오는 가족들이 선택하기에는 이 곳 만큼 적당한 곳이 없으리라. (국밥이나 고기를 먹기는 적절치 않다.)


나는 이 시간의 파리크라상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여기 책을 읽으러 들어와 구석자리에 앉으면 일단 주변을 훑어본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금 이 자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부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들이 오붓하게 와 책을 읽는 가족도 있다. 커피 한잔과 브런치를 주문해놓고 셋이 조용히 책을 읽는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과 엄마는 별 말 없이 묵묵히 독서하고, 아버지는 노트북으로 문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내용은 나도 잘 모르겠다.)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분이 오셔서 조각케잌에 커피를 드신다. 뭐라 조용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서두름과 호들갑이 없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나누신다.

가끔 대가족끼리도 온다. 할아버지,할머니,아들,며느리,손자,손녀까지 온 가족이 테이블 2개를 차지하고 브런치를 먹는다. 가끔 애가 울기도 하고 손자가 포크를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괜찮다. 그래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따뜻하고 편안하다.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서 식사를 하는걸까. 웃으며 즐겁다.

가끔 이질적인 무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시끌벅적 떠들기도 한다. 성별과 연령을 말하면 차별이 될까바 특정하지는 않겠지만, 시끄럽게 떠들고 무례하게 굴며 분위기를 망친다. 그런 날은 그냥 운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을 모두 피해다닐  없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위에 이야기한 가족이나 커플처럼 특유의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일반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옷차림도 맘에 들어서 유심히 살펴보곤 한다. 그 흔한 츄리닝에 슬리퍼를 신고 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부분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면바지에 로퍼, 셔츠까지 입고 온 분들이 많다. 이 시간에 멀리서 온건 아니고 가볍게 집 앞을 나왔을텐데, 다들 과하진 않지만 예의바르게 차려입고 나왔다. 그렇다고 명품을 휘두르고 나왔다는게 아니다. 면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어도 뭔가 그냥, 차분하고 세련됐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 나는 패션을 논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이 없다. 그냥 우아하다고 느낄 뿐이다. 나도 저렇게 입고 싶다 정도. 아마 행동과 말투,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것들이 그런 감정을 불러 일으켰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제목을 굳이 '서초동 파리크라상'이라고 한 이유는,

다른 여러 곳의 빵집, 카페 등을 다녀봤지만 이런 분위기를 느껴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일반화 할 수 없다'고 말한 이유는 내가 전국의 파리크라상을 다녀보지 않아서다. 나는 파리크라상을 예전에 별로 가본 적도 없다. 그만큼 이 글은 지독히 주관적이다.) 아마 이 곳이 주변 번화가와 동떨어진, 어느 정도 폐쇄적인 곳이라 주변 주민들의 특성이 짙게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동네의 특성이라고 해두자. 아무튼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유독 이 시간의 이 빵집이 좋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 시간이 매번 기다려진다.


나는 어떻게 하면 저런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우리 가족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궁금하다.

먼 훗날 나이가 들어, 나의 온 가족이 모인 언젠가 지금 이 장면을 상상하며 비교해보고 싶다.

나는, 아니 우리는, 우아하고 세련된 삶에 한 걸음 가까워졌을까?


나른하고 따뜻한 주말 오전, 

빵집의 시간은 그렇게 천천히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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