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다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고 싫은 줄 알았는데 간절히 원했던 거였다

by 사이

내가 변한 건지, 나만 몰랐던 건지

꽤 오랫동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만큼은 아닌 일들이 있다. 반대로 별로 관심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오히려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버려 당황스러운 일들도 있다.


시간이 흐르며 내가 변한 건지, 아니면 원래 그랬는데 내가 착각했던 건지 모를 일이다. 누군가가 이유 없이 너무 불편하고 싫다면,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너무 닮아서라는데. 혹시 나는 잘하고 싶어도 못하는데, 그 '누구'는 너무 잘해서 부러웠던 게 아닐까. 솔직하게 부러워할 자신이 없어서 애써 관심 없는 척 한 건 아닐까. 혹은 너무 갖고 싶은데 가질 수 없어서 신포도 보듯 했던 건 아닌가 생각해본다.


자유와 구속 사이

밥보다 잔소리를 더 많이 먹고 자랐다. 할 수 있는 것보다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이 더 많았다. 목소리 크게 내지 말기. 다리 벌리고 앉지 말기. 여섯 시 넘어서 다니지 말기. 어린 동생 질투하지 말기.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 절대 빠지지 말기.


그래서일까. 성인이 되어서도 줄곧 타인과 있는 게 불편했다. 설령 그들이 내게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아도, 괜히 눈치를 보게 되었다. 여기에 사람 수가 늘어나면 피로도가 급격하게 올라갔다. 너무 자주 만나지는 않는 한 두 사람과의 관계를 지향했고 여러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상황은 최대한 피했다. 가족들과 집에 있는 시간도 편하지 만은 않았기 때문에 밖으로 돌았다. 여자 휴게실, 영화 감상실, 아는 사람 만날 일 없는 카페. 열심히도 피해 다녔다. 여행도 현실과 거리감이 필요할 때 떠났던 것 같다. 취업할 때도 최대한 협업할 일 없는 직무를 고르고 골랐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결국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오랜 고민 끝에 이제 회사를 떠나 자유롭게 내 일을 하겠다고, 회사에 퇴사 소식을 전한 뒤부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가 설레서라기보다 너무너무 두렵고 불안했기 때문이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창업에 도전은 무리라고 판단이 되어, 결국 다른 회사에 입사하기로 했다. 규모는 훨씬 큰 대신, 업무의 영향력과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직군으로.


원체 겁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유로움과 안정감 사이에서 안정을 선택하는 나 자신을 반복적으로 마주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이걸 어른이 되어간다고 해야 하는 건지, 현실 감각이 생기는 거라고 해야 하는 건지, 당연하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나를 몰랐던 건지. 오히려 큰 회사의 작은 조직으로 가는 것이 나처럼 평범한 노동자가 가장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기회에 나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아는 것보다 나는 훨씬 더 겁이 많고 불안하고 보수적인 사람이라는 거. 남들보다 생존의 위협을 더 크게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에 너무 위험한 환경에서 긴급 처치는 가능하지만,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거.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그래야 지속 가능하다는 거. 그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거. (물론 또 안정적인 상황에 가면 무슨 딴 소리를 할지 모른다. 인간은 늘 모순 덩어리니까.)


또 혼자서 잘 해내고 싶지만, 비즈니스 의사결정을 하고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것. 나와 직원을 책임질 만큼 강하지 못하다는 것. 같이 고민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관계를 간절히 필요로 한다는 것. 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 것 같으니 피해왔다는 거. 사실은 나도 의지하고, 누군가에게 의지가 될 때 행복하다는 것. 적당한 책임감과 작은 오너십이면 아직까지는 움직일 동력이 된다는 것.


그렇게 자유를 주창하고 다녔는데, 실제로 내가 몇 년 간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다소 민망하고 부끄럽다. 그래도 이게 지금의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인데, 창피해도 받아들여야지.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건데, 한번 좋아했다고 영원하지 않고 나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꼭 그런 게 아닌 일들도 참 많더라. 또 새로운 회사와 환경에 가서 적응을 하고 시간이 가면 어떤 가치가 더 소중해질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한동안 어디 가서 자유 타령은 하지 말아야지. 조용히 주어진 일과 관계에 충실하면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하는지 잘 살펴보겠다고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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