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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에스더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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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울 Dec 11. 2021

여름나라에서 온 그녀

(2/10)

  그녀는 여름 나라에서 왔다. 가장 춥다는 12월의 최저기온이 섭씨 21도인 나라였다. 가난한 부모를 위해, 더 배우려는 동생들을 위해 겨울이 있는 나라까지 날아왔을 것이다. 아무리 피 끓는 나이라고 해도 웃풍이 심한 조립식 패널에서 영하 20도를 견디는 일은 얼음 칼날로 자신의 살을 한 점씩 베어내는 고통이었으리라. 제 기능을 상실한 전기히터는 그녀에게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먼지가 앉은 전기히터를 발로 툭 걷어찼다.


  시신이 도립병원으로 옮겨졌고 경찰 조사도 대충 마무리된 상태라서 마을에 남아 내가 해야 할 일은 없었다. 간사에게 전화를 걸어 현지 상황을 간단히 보고하고 도립병원으로 건너갔다. 빈소의 이름 칸에는 ‘Sok Phkay’라고 적혀 있었고 상주와 장지는 빈칸으로 남아 있었다. 모국의 친지들이 참석하기 어렵고 국내의 연고자도 찾기 힘든 이주노동자의 장례식은 썰렁 그 자체였다. 상주 없이 치루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장례용품과 조문객을 위한 식사는 최소한으로 주문했다. 이주민 관련 시민단체들에 빠짐없이 전화를 걸어 문상을 와달라고 부탁했다.


  오후에 캄보디아 출신 이주민이 통역을 도와주러 왔다. 그녀의 도움을 받아 프까이 부모에게 사고 소식을 알렸다.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나에게 건네는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딸의 장례식에 올 수 없으니 장례를 잘 부탁한다는 프까이 부모의 말을 전하면서 그녀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티슈를 몇 장 뽑아서 건넸다. 그녀를 장례식장 밖으로 데리고 나가 바람을 쐬고 잠시 얘기를 나눴다. 한국에 들어온 지 십 년이 넘었다는 그녀는 이십여 분 더 가야 하는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삼십 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둘이나 있다고, 아이들 때문에 오래 머무를 수 없다고 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며 명함을 건넸다.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야 영농법인 대표, 근로감독관, 자치단체 관계자 등이 조문하러 왔다. 분향과 헌화, 재배는 건성이었다. 이들의 관심사는 오직 프까이의 죽음이 자신들과 무관함을 보여주는 일인듯했다. 내가 이주민 복지재단 소속의 변호사인 줄 알고 프까이의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을 먼저 했다. 하지만 프까이가 근처 병원에서 진찰이나 치료를 받았다는 기록은 없었다. 이주민 복지재단과 시민단체는 부검을 주장했지만 영농법인 대표와 공무원들은 결정권이 없다면서 눈을 딴 곳으로 돌렸다.


  휴대폰으로 뉴스를 검색했다. ‘비닐하우스 속 이주노동자 사망’이라는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시민단체와 가까운 매체들은 ‘동사(凍死)’로, 경제지를 포함한 보수적인 매체들은 ‘오랜 지병’으로 제각기 사인을 추측해서 보도하고 있었다. 불교 신자가 대다수인 캄보디아 출신이었기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에서 장례와 발인을 도와주기로 했다. 밤늦게 현장을 빠져나왔다. 차 문을 열고 운전석 시트에 몸을 기댔다. 눈이 뻑뻑했다. 한참 동안 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마른 세수를 했다. 시동을 켜고 핸들을 잡았다. 화들짝 놀랄 만큼 차가웠다. 집에 도착하면 현장 방문 보고서를 마무리해서 간사에게 보내줘야 했다.


  벌써 다섯 번째 보고서였다. 반복해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이주노동자의 주거권이 외면당하고 있음을, 매달 보험료는 걷어가면서 한 번도 병원에 갈 수 없음을, 열악한 주거 시설에도 불구하고 월세는 턱없이 비싸다는 점을 적시했다. 매번 문제점을 지적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몸에서 기운이 쑥 빠져나갔다. 머그잔에 캐머마일 티백을 넣고 정수기의 온수 버튼을 눌렀다. 그때 휴대폰이 몸서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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