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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두칠 Dec 01. 2023

공무원은 깨끗한가?

오해 셋 : 공무원의 청렴성

선호의 답 : 이만하면 그래도 90점쯤?


이번에는 좀 민감한 얘깁니다. 아니, 좀 많이 민감한 얘깁니다. 과연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깨끗한가에 대한 이야깁니다.


우리나라 행정서비스는 세계적으로 꽤 훌륭한 수준입니다. 외국에서 관공서 이용해본 사람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기도 하죠.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일 진짜 잘하는 거라고. 속도든 정확도든 대한민국 공무원은 정말 탑급일 겁니다. 제가 공무원이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요.

대한민국 행정의 국제 순위 : 전자정부 평가 1위(‘12. UN), 관세행정 1위(‘09. 세계은행) 등


그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무원을 잘 믿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요즘말로 ‘슈킹’한다고 하죠. 뒤에서 몰래 뭐 해먹는 거 아니냐는 의혹을 엄청 삽니다.

대한민국 정부신뢰도 36개국 중 32위(‘18. OECD. 단, 코로나를 계기로 22개국 중 7위 수준으로 상승)


초과근무 부정 수령 같은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중앙정부든 지자체든 뭘 하려고만 하면 ‘이거 다 짬짜미 해처먹으려고 그러는 거다’는 여론들로 웅성웅성 합니다. 당장 기사 댓글들 몇 개만 찾아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저 로봇 만드는 회사 주식이라도 있나“, ”누가 또 로비를 했구만“, ”공급업체랑 뭐 있나“ <초등학교 영어수업에 ’로봇 교사‘투입된다> (’23.11.29. 연합뉴스 등 기사 댓글 중 일부)


진실은 무엇일까요. 진짜 공무원들이 쏠쏠하게 뇌물을 받아 먹고 있을까요. 현직 공무원으로서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우리나라 정책브리핑에서 많이 쓰는 표현을 좀 따오자면요, “사실은 이렇습니다.”



의외로 깨끗한 우리나라 공무원

일단 밑밥부터 좀 깔고 가겠습니다. 우리나라 공무원들 있잖아요, 생각보다 의외로 되게 깨끗합니다. 뇌물요? 안 통합니다. 이걸 극단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공항입니다.


여행들 많이 다니시죠? 해외여행 많이 가는 걸로 따지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또 세계에서 손에 꼽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혹시 외국 공항에서 그런 경험 안 해보셨나요? 무슨 처리를 괜히 늦게 해준다거나, 별 시덥지도 않은 이유로 붙잡아두거나요. 아니면 해외여행 커뮤니티에서 필리핀이니 캄보디아니 어느 어느 나라 공항에서 입국 빨리하려면 그쪽 공무원한테 얼마를 어떻게 찔러줘라 하는 글을 보신 적은요?

2018년 기준 해위여행자 수 6위 (‘19. 마스터카드 <글로벌 여행도시 지표 보고서>)


직접 겪어보지는 않으셨을 수 있지만, 최소한 저런 류의 얘기들은 종종 들어보셨을 겁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정말 저러니까요. 팩트니까요. 저는 직접 경험했었습니다. 중국에 여행을 갔던 때였는데, 이상하게 저만 입국 처리가 너무 느린 거에요.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 세월아 네월아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서 다른 한국인이 슬쩍 귓뜸해주시더라고요. 순진하게 기다리고만 있으면 안 된다고. 저기 창구에 있는 사람한테 얼마라도 쥐어주라고. 결론은요? 옆 사람이 얘기해준대로 했더니 바로 쾌속 통과였죠 뭐.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인천공항에서 저러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나 가시나요. 최소한 저는 비슷하게라도 상상이 잘 안 됩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깨끗한 행정에 익숙하다는 거겠죠.


제가 공무원으로 몇 년 일하면서 제일 놀란 것 중에 하나가, 밖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나라 행정이 너무 너무 깨끗하다는 거였어요. 애초에 뒷거래가 끼어들 틈이 없더라고요. 제가 내린 결론은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하는 거여서 그렇다는 거였어요. 실무자가 뭐라도 하려면 규정이 있어야 되고 근거가 있어야 되고 선례가 있어야 됩니다. 안 그런 건 윗 사람들한테 보고를 하기가 힘들거든요. 실무자 한 사람이 뭘 마음대로 이렇게 저렇게 할 수가 없는 구조인 겁니다.


그렇다고 윗 사람이라고 또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규정과 근거와 선례가 있어야 하는 건 똑같으니까요. 물론 약간의 재량판단은 있을 수 있겠지만, 누가 봐도 안 되는 건 거의 못 합니다. 규정도 근거도 없는 걸 하면 백이면 아흔아홉은 감사를 받는데, 혹시나 아래 실무자들이 징계 받을 상황에 처해도 딱히 위에서 안 막아주거든요? 막아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되지만, 어쨌든 내가 당장 감사 받고 징계 먹을지도 모르는데 그걸 열심히 적극적으로 추진할 실무자가 어딨겠어요.


돈이 들어가는 문젠 더 그렇습니다. 정부 예산은 결국 국민 세금이기 때문에 감사원 감사도 그렇지만 국회 감사까지 세게 들어옵니다. 그래서 절대 함부로 못합니다. 작은 납품 건 하나 처리할 때도 그렇습니다.


요약하자면, 우리나라 행정은 깨끗합니다. 한 사람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다수가 함께 시스템으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도 깨끗했는가 하면

저보다 공무원 연차가 훨씬 많이 쌓이신 분들, 뭐 10년차 쯤이 아니라 20년차 30년차 이렇게 되신 분들은 가끔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공무원 좋은 시대 다 갔다고. 나 때는 이렇지 않았다고.


굉장히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이겠지만, 꽤 위험한 부분도 있어요. ‘청렴’에 관해서 말이죠. 저 말이 무슨 말이냐면, 이제는 공무원이 뒤에서 재미를 못 본다는 소리거든요. 권력을 못 누린다는 소리거든요. 밥을 먹을 때, 내 돈을 써야 된다는 소리거든요. 바꿔말하면 옛날에는 안 그랬다는 소리고요.


분명히 그랬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구전되는 얘기들도 그렇고,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일부를 직접 겪으신 것 같기도 하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다니까요? 막상 공무원이 되어보니까 공무원이 깨끗해서 놀랐다니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공무원이 안 깨끗하다는 이미지가 괜히 씌인 게 아니죠. 가끔은 아니 뗀 굴뚝에서도 연기가 나긴 합니다만, 이 경우는 아닌 것 같네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 저것 쉽게 떠오릅니다. <마약왕>에서 배우 최민식이 연기했던 세관공무원의 모습도 그렇고, 올해 청룡영화제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5관왕을 휩쓴 <밀수>에서도 부패한 공무원이 나오죠. 공통점은 다 몇 십 년 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라는 거.


그 몇 십 년 전을 실제로 사셨던 우리 부모님들 얘기를 들어보세요. 딱지 떼려고 하는 교통경찰들한테 좀 봐달라면서 담배 한 갑이랑 지폐 몇 장을 건넸다는 얘기도 친척 어른들한테 많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선생님한테 양주를 드리던 엄마의 모습은 제가 몇 번이나 직접 봤어요. 그 때는 그냥 선물인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니 어쩌면 그게 촌지라고 부른 무엇이었을 수도 있겠더라고요.


많은 나라들에서는 행정 부패가 큰 사회 문젭니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엔 좀 그랬었는지도 모릅니다. 깨끗한 현대 행정이 자리잡기까지의 과도기라고나 할까요.


사족이지만, 약간 그런 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워낙 낮았던 월급을 그런 식으로라도 좀 보전하려고 했던. 실제로 인류 역사를 쭉 봐도 그렇죠. 공무원 급여가 낮으면 꼭 부패가 일어나죠. 어떻게든 주머니는 채워넣어야 하니까. 지금도 그래서 민간 대비 급여 수준을 조사하고, 너무 차이가 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물론 부패가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요.

<민관 보수수준 실태조사> (인사혁신처)


지금도 구멍은 있다

공무원으로서 참 부끄러운 얘기긴 하지만 용기 내서 말해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 공무원은 깨끗하기만 할까?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 절대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일부 그런 경우들이 있긴 있습니다.


제일 먼저 얘기할 수 있는 게 지자체, 그리고 임시조직입니다. 중앙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좀 덜 깨끗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상시조직의 성격이 옅으면 옅을수록 덜 깨끗해지고요. 공무원 개인의 인식 차이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제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다는 건 결코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거겠죠.


그렇다면 제도의 문제라는 게 뭐냐. 바로 어느정도나 시스템화 되어 있느냐에 대한 얘깁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지금 시점에서 중앙 공무원이 깨끗할 수밖에 없는 건 행정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독점하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시스템에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공무원 개인이 청렴결백한 덕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방 현장으로 갈수록 재량이 많아지고, 시스템화 되어 있지 않은 영역이 넓어지고, 개인의 양심에 기댄 채 투명하지 않게 처리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견물생심이라고 당연히 덜 깨끗해지겠죠. 임시조직도 마찬가지고요.

<허위실적으로 '잼버리백서' 수의계약, 공무원과 한통속?> ('23.11.13. 뉴시스)


중앙부처도 아직 남아있는 문화가 있습니다. 주로 경제부처들에서 OB라고 부르는 집단인데요, 엄밀히 따지면 현직 공무원은 아니고 민간 기업으로 이직한 전직 공무원들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정부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거죠. 십 수 년 또는 수 십 년 간 일했던 기관이라 인적 네트워크가 잘 갖춰져 있고, 그러한 휴민트를 발휘해서 현직 공무원들한테 이런 저런 부탁들을 하게 됩니다. 내부 정보를 캐묻기도 하고요. 물론 위법 부당하게까지 현직 공무원들이 응하지는 않습니다. OB들도그렇게 심한 요청까지는 안 하지만요. 다만 현직들이 이러한 OB의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들도 가까운 미래에 재취업할 회사들이기 때문입니다.

<공정위 출신, SK-삼성-LG 등 대기업 재취업 후 공정위 접촉> ('19.10.17. 파이낸셜 리뷰)


결국 위법 부당하다고까지 얘기하기는 애매하지만, 어쨌든 민간 회사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업무가 처리되기도 합니다. 가령 어떤 행정절차를 거치는 기간이 짧아지는 거죠. 보통 2주 정도 걸리는 업무가 3~4일만에 처리가 되기도 하고요. 실무자 입장에서는 날벼락 같은 지시가 떨어지는 경웁니다. 분명히 다다음주 정도까지 하면 되는 일인데, 갑자기 위에서 당장 내일까지 보고를 하라고 하는 거죠. 상관의 지시를 받았으니까 실무자는 어쩔 수 없이 밤새 야근을 하게 되고요.


물론 업무 결과까지 바깥 회사에서 말하는 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공무원은 규정에 따라 일을 해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감사에 징계까지 당하니까요. ‘공무원이 좋았다’는 옛날이었으면 모를까, 지금은 그렇게 못합니다. 우리나라가 그래도 여기까지 잘 발전해온 거죠. 아직 옛날에 빠져있는 사람도 없진 않지만 꽤나 많은 부분에서 자정작용이 잘 일어나고 있습니다.

<산업부, 산하기관에 갑질 직원 비리 "무관용 특단 조치"> ('23.10.11. 서울파이낸스)



저도 공무원이지만 가끔 뉴스를 보면서 괜한 음모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저건 누구랑 짜고치는 것 같다고요. 불행히도 어떨 땐 정말 그럴 때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렇게 짜고칠 수 있는 건 아주 극소수 몇 명입니다. 정치인 수준으로 고위직에 올라 앉은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절대 다수의 일반 공무원들은 절대 안 깨끗할 수가 없는 시스템입니다. 우리나라 행정은 정말 꽤나 투명합니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아주 귀찮은 일이지만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 이정도의 자부심은 가져도 될 거 같습니다. 우리나라, 그래도 꽤 깨끗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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