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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딘 Jan 05. 2021

다르지 않은 내일을 위한 오늘

미뤄온 이야기를 시작하며

2019년 7월 8일

다가올수록 이게 얼마나 큰 기회인지 실감난다.
더 많은 것을 얻고 싶고 배우고 싶고 누리고 싶지만 그 마음만은 버리고 싶다.
그저 순간순간 나를 위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고 싶다.


준비 끝에 비자를 신청하고 오는 길에 적은 글이다. 떠나기 전의 나는 유럽에서의 1년이 내 인생을 바꿔놓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의 나는 사라지고 새로운 내가 되어버리는, 내가 선택했지만 그 결과는 랜덤인 사다리타기를 시작하는 기분. 그래서 떠나는 날, 살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다신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 익숙한 모든 걸 두고 모든 게 낯선 곳으로 떠나기로 한 나를 원망했다.


돌아보면 유럽에 있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시기다. 잘 우울하지도 기쁘지도 않게 인생을 모노톤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엉엉 우는 일도 많지 않은데, 이상하게 린츠의 기숙사에서는 수도꼭지가 고장난 것처럼 눈물이 나곤 했다. 그만큼 나에게 솔직했던, 나밖에 없었던 시간이었다. 실제로도 진짜의 나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던 것 같다. 외로우면서도 편하고, 여행이 가고 싶은데 두려운, 사람이 그리우면서도 귀국하기 싫은 이중적인 감정과 늘 함께 했다. 그 사이에서 린츠의 내가 마음고생했던 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처음 겪는 일들과 감정들로 하루하루 머릿속에 떠다니는 글자가 너무 많았고, 그래서 일기를 매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내가 있었던 린츠, 그리고 유럽의 기록을 내가 남기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테니까. 그렇게 매일 sns에 업로드한 일기는 227일의 나를 기억해줬고, 덕분에 이제 그 이야기를 정리해보려 한다.




그래서 내 인생이 바뀌었는가.


비행기를 경유한 것도 처음, 유럽 땅도 처음, 외국에서 살아본 것도 처음,  영어로 듣는 수업도 처음, 부지런히 아프리카와 중동 땅까지를 밟고 왔어도 여전히 나는 그대로다. 내가 예상치 못하게 나를 바꿔버릴 것 같던 유럽은 아무것도 바꿔놓지 못했다. 떠나기 위한 준비부터 다녀와 생각을 정리한 지금까지 지난 2년 동안 내 마음의 절반은 그곳에 있었다. 그렇게 오래 생각하고 메어있었음에도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 한마디를 쓰기 위해 수개월을 고민했다. 내가 모르게 달라진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새로움을 경험하고도 달라지지 않은 건 나의 잘못이 아닐까. 227일 동안 과분하게 행복했고 좋은 기억들을 많이 안고 돌아왔지만 과연 그게 내 유럽 생활을 정리하는 전부여도 되는가.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달라진 게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다르지 않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아야 된다는 마음가짐 하나.

이역만리 먼 땅에 혼자 있었어도 다르지 않던 내일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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