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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단 Oct 04. 2023

친구

엄마는 내향인 중 제일가는 내향인이라고 생각했다. 텐션이 높은 편도 아니고, 활동적인 걸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다. 술은 입에도 안 댔으며, 노래 부르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음주가무와는 어울리지 않는 동떨어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언니와 내가 대학교에 들어간 후, 엄마의 생활은 180도 바뀌었다. 


점점 엄마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졌다. 주말만 되면 집은 텅- 비어버렸고, 평일에도 몇 번씩이나 바깥에서 저녁까지 해결하고 들어오는 게 일상이었다. 괜히 미안하다며, 엄마가 집을 비워도 괜찮냐는 말을 넌지시 할 때마다 우리는 손사래를 치며 이런 외출은 언제나 환영이라고 말했다. 언니와 나는 엄마가 지금이라도 바깥 생활을 즐기는 것이 너무 보기 좋았기에.


나가봤자 집 앞 뜨개방이 전부였던 엄마는 어느덧 백두대간을 완주했으며, 암벽을 타기 시작했다. 한 여름에는 푸르른 나무를 아래에 둔 절벽에서, 한 겨울에는 차갑다 못해 꽁꽁 얼어버릴 것 같은 빙벽에 매달린 사진을 보여줬다. 나는 장난으로 '암벽 타다 다치면 보험처리도 안 되는 거 알지?' 했지만, 친구들한테는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 엄마 이런 사람이야-' 하며 자랑스러워했다. 어느 날은 친구들과 해외로 여행을 가기도 하고, 서핑을 배우고, 아이스링크장을 가기도 했다. 나보다 활동적인 엄마의 모습에 내가 알던 엄마가 맞나? 하며 의심했던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주말마다 집을 비우는 엄마를 보며 얼마나 친구가 많은지, 인맥이 얼마나 넓은지 알고는 있었다. 근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저 얕고 넓은 관계가 아니라, 깊고 넓었다. 


코로나로 인해 병문안이 안되자 엄마의 전화기는 불이 났다. 내 전화기도 불이 났다. 몸도 안 좋은 엄마가 혹여나 귀찮을까 봐 나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일주일 단위로 엄마의 상태를 물었으며,  온갖 몸에 좋은 식자재로 집 앞 택배기사님의 발걸음은 끊기지 않았다. 내가 일정이 있거나 일을 빼지 못하는 날이면,  엄마 친구가 연차를 내고 병원을 함께 가주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날은 엄마가 방 밖에 전선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시끄러워 잠을 못 자겠다고 했단다. 그러자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던 부부께서 말도 없이 뚝딱 고쳐주고 가신 적도 있었다.


엄마는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엄마는 우울해하다가도 친구를 만나면 까르르 무방비상태로 웃었다. 내가 아무리 우울함을 덜어주려 해도, 힘을 주려해도 되지 않던 것이 친구들이 오자마자 해결되었다. 엄마를 보며 아무리 가족이 사이가 좋을지라도 친구가 주는 감정은 다르다는 걸 몸소 느꼈다. 친구와 가족, 각자가 채워줄 수 있는 영역이 다르구나. 인생을 살아가는데 친구와 가족 모두 너무 소중한 존재라는 것. 진심이 통하는 사람이, 진심을 나눌 수 있는 타인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 전, 엄마가 말했다. 나는 스위스에 갈 거라고. 친구들과 함께 스위스에 가서 그 풍경을 꼭 구경할 거라고. 나는 무조건 가라고 했다.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가 아닌, 꼭 꼭 꼭 가라고! 나에게는 스위스가 포인트가 아니었다. '친구들과 함께'가 포인트였다. 나이가 들어서도 함께 여행을 계획하는 친구가 존재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삶이라 생각하기에, 엄마가 언제든 어디든 친구와 훌쩍 떠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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