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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단 Oct 04. 2023

홀로서기

항암과 방사선, 표적치료 모두 끝난 엄마는 많은 것에서 해방됐다. 오래 떠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일상생활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병가를 냈던 직장으로 무사히 돌아갔고, 집에서 생활할 수 있었으며,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병원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병원을 꾸준히 엄마를 불러댔다. 또다시 재발되지는 않는지, 다른 곳에서 문제가 나오진 않는지 추적해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자연스러웠다. 가끔 나 또한 엄마가 아픈 사람이 맞았는지 그 시절이 기억이 안 날 정도다. 2년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았다. 엄마는 여전히 다양한 운동을 하고 새로운 취미를 찾아나갔다. 과거에 했던 클라이밍이나 하루종일 걷는 등산 같은 운동은 더 이상 하지 못했지만, 그 외에도 이 세상에는 할 게 참 많았다. 엄마는 새로운 노래교실을 다니고, 뜨개방에 다니고, 명상수업을 들었다. 엄마만의 새로운 생활패턴을 만들어나갔다.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 시절에는 엄마가 참 안 됐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늘 주변을 챙기는 역할이었고 자기 자신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집안에는 관심 없던 아빠의 무심함, 그리고 술과의 전쟁이 일상이었다. 언제 집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채로 긴장하고 살아야 했다. 언니와 나의 사춘기 또한 매우 심했기에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가 병에 걸리게 된 것은 매우 안타깝고 슬픈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엄마는 이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다. 비로소 스스로 설 수 있는 법을 배운 듯했다. 




"결국 스스로, 혼자 이겨내야 해. 모든 일은 자기 자신에서부터 시작 돼."

엄마가 병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수시로 했던 말이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있어야 이 세상이 존재한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이 그렇기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나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나를 온전히 세우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거나, 희생하거나 하는 행동은 스스로의 삶의 방향을 흐려지게 만드는 것이다. 


병을 통해, 아니 병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삶에 대한 가치관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그저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일 뿐이지만 그 영향력은 엄청났다. 후회 없는 삶을 살 것. 하루하루 나를 위한 행동을 할 것. 내가 온전해야 세상이 온전하다는 것. 


인생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살던 철없는 20대 여자의 삶이 바뀌었다. 건강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이 머릿속에 자라났다. 많은 어른들이 말하듯 건강이 1순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신체적 자유가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그 무게가 느껴졌다. 나이 들어서도 건강하게, 혹여나 내가 아파서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관리가 필요했다. 엄마아빠의 화려한 병력을 피하기 위해서 주 3회 운동을 하고, 단당류를 피하며 첫 식사는 단백질로, 술은 줄이려고 노력한다.


생활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사회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돈을 버는 것이다. 생산적인 활동을 스스로 이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가족 중 누군가가 돈을 잘 벌어도 그건 내 돈이 아니다. 심지어 부모님이 물려주신다고 해도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내 힘으로 지속적으로 사회적인, 생산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성취감을 느끼며 제자리에서 만족하기보다 더 성장하는 나를 만들려 노력한다. 


스트레스 관리도 가장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보통 타인에서 올 것이다. 내가 몸소 느낀 방법 중 하나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기'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저 것을 지키기는 매우 어렵다. 나 또한 파트별로 비교대상을 두고 항상 나와 비교하며 살았다. 남보다 더 예뻐지기 위해, 특출 나기 위해 노력함은 물론이고 시기질투 또한 쉽게 했다. 남이 내려가면 내가 올라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기준으로 삼으면 관리가 쉬워진다. 모든 사람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저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의 성장에 포커스를 두는 것. 그거면 된다. 

이에 이어지는 이야기로 다른 사람 마음을 내가 어떻게 조정할 수 없다는 것을 항상 되뇌어야 한다. 내가 이렇게 생각을 한다고 다른 사람도 똑같이 생각하라는 법은 없다. 내가 이해가지 않는다고 해서, 이 방법이 더 효율적이라고 해서 상대방에게 몇 번이고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너는 그렇구나- 나는 이래-' 하고 그러려니 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다른 사람에게 조언이랍시고 하는 말들은 모두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보는 내가 편하자고 하는 말임을 깨달은 순간 많은 것을 놓아놓을 수 있었고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상대방도 줄어들었을 것 같다ㅎㅎ..)




엄마아빠의 병원생활은 매우 힘들었지만, 그 속에서 깨달은 것들이 많았다. 나는 간접경험으로 이 모든 것을 겪었기에 가볍게 이야기하는 것이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간병생활은 나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지금도 아픔에 허덕이고, 생활에 치이고, 병실 속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견뎌낼 수 있다고. 이 또한 지나간다고. 너무 좌절하고 주저앉기보다 하루하루 행복한 작은 일들을 찾아나가 현재를 온전히 느껴보자고! 현재가 쌓이면 과거가 되고 미래가 보인다. 내 미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투병에 지친, 간병에 지친, 일상에 지친 모두에게 힘을 나눠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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