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엄마의 병실은 6인실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호흡기병동은 빈자리가 없었고, 대부분이 나이 지긋한 어르신 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24살이었던 나는 병동의 막내였고, 엄마의 병원에서 지내며 출퇴근했기 때문에 병동사람들과 안면을 튼 상황이었다.
병원에서는 식사시간이 되면 카트를 끌고 병실을 돌아다니며 식당선생님들께서 배식을 나눠주신다. 당뇨식, 미음, 일반식, 보호자식 등 환자에 맞는 다양한 식단이 제공된다. 맛있게 밥을 다 먹은 후 식판을 가지고 복도의 반납카트에 밀어 넣으면 반납까지 완료됐다. 여기서 가장 힘든 부분은 마지막이다. 식판을 가지고/ 일어나/ 복도에 걸어 나가/ 반납카트에 식판을 밀어 넣기. 몸이 아픈 환자들에게 아주 힘든 몇 가지의 미션이 식사시간마다 주어지는 거나 다름없었다. 물론 간병인이나 가족이 항상 옆에 있으면 모든 걸 도와주시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은 환자분들에게는 매 식사시간이 힘들었을 것이다.
어느 날, 옆침대의 할머니께서 식사를 다 하시고 한 손으로는 폴대를, 한 손으로는 식판을 들고 침대에서 일어나셨다. 손아귀 힘도 없는 할머니께서 비틀비틀 식판을 쏟을 듯 들고나가시는 거다. 어느 누가 그 상황에서 도와드리지 않겠는가. 엉덩이가 이렇게 가벼워질 수가 없었다. 곧 쏟을 듯 한걸음 내딛으시는 할머니의 식판을 대신 반납해 드렸다.
"아이고 젊은 아가씨가 도와주네."
한마디에 나는 매우, 매우 뿌듯해했다. 나에겐 힘들지 않은 일이니, 도와드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엄마에게 칭찬받을 것 같다는 어린아이의 마음이 샘솟았다.
그런데 엄마가 하는 말에 머리가 띵! 했다.
-도와드린 거 너무 잘했다고. 그런데 너무 자주 해드리진 말라고. 나중에는 당연히 해줘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아빠의 간병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인지, 엄마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나는 뭐 이런 것 가지고! 라며 엄마가 너무 예민하게 걱정하는 거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한 분을 해드리면 다른 분도 해드려야 했다. 누구는 가져다주고 누구는 안 가져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식사시간마다 속으로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점점 할머니들은 식판을 가져다 놓으려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내가 와서 치우리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한 자세로 앉아계셨다. 식사시간마다 뜨거운 시선들이 나를 쫓아다녔다.
이러한 상황이 며칠씩 반복되자, 좋게 시작했던 마음이 차갑게 식어갔다. 난 엄마를 간병하려고 있는 거지, 다른 할머니들을 간병하려고 있는 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날에는 자리를 피하고 싶어 엄마의 식사가 끝나면 부리나케 다른 곳으로 도망가기도 했다. 이게 뭐가 어렵다고 하기 싫어하는 나를 보며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나의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는 어르신들에게 미운마음도 들었다. 매번 고맙다는 말이라도 들었으면 이렇게까진 하지 않았으려나.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명대사를 몸소 느꼈다. 그렇다고 내가 처음부터 할머니를 외면했어야 할까. 아니면 당연하게 생각하는 할머니의 탓으로 돌려야 하나.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정답은 없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나갈 것 같다는 결론이다. 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걸 외면하는 철판 같은 능력은 없다. 사실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어쩌겠냐. 그냥 계속 이렇게 살아가는 수밖에. 내 호의에 상대방이 고마워한다면 뿌듯함을 느낄 것이고, 고마워하지 않는다면 그저 토라진 강아지처럼 흥! 해버리고 말리라!
앞으로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나에게도 어른의 넓은 지혜가 생기지 않을까- 라며 괜스레 미래의 나에게 책임감을 넘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