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사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봄. 왜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은 다들 봄이 되면 행복해 보인다. 아마 봄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라 그런 걸까?
매년 봄이 되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들뜬다. 지나가다 길가에 피운 작은 꽃들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꽃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가슴이 설레는 걸 보니 나도 꽃을 보고 웃을 줄 아는 여자였다.
저 꽃들도 봄을 기다렸겠지? 아마 봄이란 생명의 시간을 빌려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싶었겠지. 죽음의 계절을 당당히 살아남은 여유를 따스한 봄으로 보여 준다.
신기하게 계절에 따라 노래 리스트에 담겨 있는 노래들도 매번 바뀐다. 봄과 관련된 노래만 듣고 있어도 가슴에 웃음이 난다.
며칠 전에 버스를 타고 ‘벚꽃엔딩’을 들으면서 창밖에 팝콘처럼 활짝 핀 벚꽃을 보니 어깨가 들썩이며 기분이 좋아졌다. ‘아~ 이게 봄이지!’라며 혼잣말을 했다.
모두가 봄을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봄이 행복한 계절인 것 같다.
생각해보니 가장 행복했던 봄은 엄마와 언니와 울산대공원에 놀러 갔던 날이다. 처음으로 가족사진도 찍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셋이 웃고 떠들며 온종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활짝 웃는 엄마의 미소가 기억이 난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어린 기억이 해마다 봄이면 계절을 돌아 찾아온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흐릿해지지만,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봄으로 느껴진다. 순수하게 웃고 마냥 좋았던 아릿하고 소중한 봄이 또 올까? 그때를 떠올리다 보니 내릴 곳을 지나쳤다.
환승 카드를 찍고 후다닥 버스를 내리니 벚꽃 잎이 거리마다 흩날린다.
거리도 꽃도 사람들의 웃음도 그리고 나도 봄처럼 활짝 피기를 소망한다.
(부제: 너와 나를 설레게 했던 계절이 왔다.)
누구나 꽃을 보면 가슴이 설렐까?
바람을 타고 날아온 꽃향기에 접어두었던 추억 하나가 살포시 떠올랐다.
그날은 벚꽃이 만개했고 밖은 여름인지 봄인지 모를 만큼 더웠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중학생 때 마산에 잠시 살았다. 거기서 수줍은 첫사랑을 만났고 함께 봄을 보았던 달콤함이 살아났다.
곰 같은 체구에 생김새는 아주 험악하지만, 마음은 너무나 여린 고등학생 오빠였다. 겉은 무뚝뚝하고 표현이 부족해 항상 몇 번을 되물어야 했고 재미라고는 찾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속정은 깊어 말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챙겨주는 남자였다. 이제 그 남자 친구를 ‘곰’이라 칭하겠다.
‘곰’이랑 나는 항상 똑같은 데이트뿐이었다. 중학교 2학년 여자와 고등학교 1학년 남자가 할 수 있는 데이트는 토스트로 배를 채우고 pc방에서 몇 시간 게임에 열중하고 친구들과 모여 노래연습장을 다녀오는 하루. 그게 전부였다.
매번 똑같은 일상에 무료해가던 날. ‘곰’이가 이상했다. 괜히 말을 많이 붙이기도 하고 잘 잡지 않던 손을 잡고 놀러 가자 보챘다.
마산이라는 동네는 넓지 않아서 어디를 가도 거기서 거기라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따라나섰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다 보니 멀리 산들이 보이고 싱그런 가로수가 길게 뻗어 있는 봄꽃들이 보였다.
“곰아, 얼마나 가야 해? 멀미 때문에 너무 힘들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어색한 미소를 띠며 어깨를 토닥였다.
“다 왔어, 곧 내릴 거니까 잠시만 참아.”
거짓말. 잠시만은 무슨 얼굴이 하얗게 뜨고 입술이 새파래지고서야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다.
“죽이려고 이렇게 멀리까지 온 거지? 멀미도 심한 거 뻔히 알면서!”
“알았어, 미안하니까 저기 좀 봐봐”
저기 좀 보라는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사방이 온통 꽃 천지였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손을 잡고 웃고 떠들며 흰 눈처럼 뒤덮인 벚꽃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음악 소리와 맛있는 냄새로 가득한 그곳에는 즐거움과 행복이 가득했다.
“뭐야? 너무 예쁘다! 꼬지 있다! 꼬지 먹자!”
생각해보니 ‘곰’이에게 조금은 귀여워 보였을 것 같다. 방금까지 멀미로 정신없던 애가 냄새에 이끌려 꼬지를 탐하고 있으니.
우리는 커다란 꼬지를 사이좋게 들고 사람들과 봄에 섞여 걸었다.
한참을 가니 북소리가 가슴에 쿵쿵 울렸다. 궁금해서 다가가니 축제의 묘미인 군악대가 발을 맞춰 신나는 퍼레이드를 보여 주었다.
흥겨움에 취해 ‘곰’이 어깨에 살짝 기대어 퍼레이드를 보았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에게 첫 데이트라는 뭉클한 기억을 썼다.
“정말 고마워. 너무 예쁘다.”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어 오늘만을 기다렸을 그 마음에 감동하고 진심으로 고마웠다.
“너랑 꼭 오고 싶었어. 말하면 안 돼서 혼자 상상하고 한동안 설렜는
데 좋아해서 다행이다.”
서툴렀던 풋풋함이 봄바람처럼 ‘곰’이의 얼굴에 환한 미소로 불었다.
그날 나는 진해군항제를 처음 보았고 그때 본 새하얀 벚꽃 길을 잊을 수가 없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기에 소중하다고 했다.
오늘처럼 불어오는 바람에 꽃향기가 가득할 때면 길을 걷다 바라본 하늘 언저리에 나비가 살랑거리면 나뭇가지마다 가득 핀 벚꽃을 볼 때면 산적 같은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보이던 ‘곰’이와의 추억이 생각난다.
너와 나를 설레게 했던 계절이 왔다. 내 첫사랑과 아지랑이 흩날리는 봄이.
봄바람도 운다는 걸 내 나이 쉰이 되어 알았다.
항상 준비 없는 이별은 얄궂은 계절 봄에 불청객으로 온다.
열세 살에 맞은 봄은 아직도 조각난 퍼즐이다.
“이 노래는 영국에 있는 록 밴드 ‘비틀스’가 부른 ‘예스터데이’란다.”
하얀 바지에 깔 맞춤한 흰 점퍼, 잠자리 모양 짙은 선글라스 너머로 반짝이던 눈동자는 소녀들의 심장을 들었다 놨다 했다.
노래 한 곡 해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굵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부르는 팝송이 꽃망울을 툭 건드렸다. 순간 배나무에 매달린 배꽃들은 봄 소풍 나온 여중생들의 마음에 팝콘처럼 톡톡 터졌고 선생님의 팝송은 어느 클래식 명곡보다 깊은 울림으로 여린 감성을 흔들었다.
공부면 공부, 책이면 책, 노래면 노래, 역사면 역사.
어느 것 하나 막힘이 없던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은 이제 막 사춘기를 시작한 수줍은 소녀들의 첫사랑이었다. 가히 연예인에 맞먹는 인기로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 잘생긴 외모는 빛이 났다.
가르치려 하기보다 이해하려 했던 제자들을 향한 사랑이 진심으로 전해져 더 깊게 들렸던 노래. ‘예스터데이’는 해마다 살아 돌아와 애잔한 그리움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는 당신이 매력 있는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를 들을 수 없었다.
죽음이란 공간에 삶이 들어차면 눈물부터 흐른다.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을 듣고 친구들과 달려간 자리에 사진으로 남은 웃는 모습은 정지화면이었다. 세상에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미소가 있을까!
아빠의 부재를 알 리 없는 어린 아들의 장난감 자동차가 잠든 손에서 툭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울컥거렸다. 어렸지만 알 수 있었다. 아빠 없이 살아갈 하루가 그리 녹록하지 않음을.
한 개를 잃어 완성을 못한 퍼즐은 빈자리로 남아 아직도 애잔하다.
첫사랑이 잠든 자리에 봄은 헤어짐을 이야기하며 살다 보면 무뎌진다고 걱정마라 했다. 그래서였을까. 시렸던 시간도 점점 따스해졌다.
스물여섯에 다가온 봄은 지독했다.
“내가 봄꽃을 보고 갈는지 모르겠다. 너무너무 보고 싶은데.”
늦은 밤 걸려온 언니의 전화는 마지막 유언이 되어 별로 남았다.
평소 몸이 아팠지만 그리 쉽게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리란 생각을 못 했다. 기다림이 없는 인연의 시간은 끈 떨어진 연이 되어 하늘가를 맴돌다 연기처럼 사라졌다.
따뜻한 온기가 남은 유골함을 안았다. 밖으로 나오니 산마다 길마다 노란 개나리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눈에서 진물이 나도록 개나리며 진달래와 벚꽃과 들꽃을 볼 수 있는데 어디에도 언니는 없었다.
너무 고와서 심장이 따끔거렸다. 몽글몽글 끓어오르는 미안함에 숨이 막혔다. 좀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은 남겨진 사람에게 울음이었다.
흰 눈처럼 날리는 벚꽃 잎이 쌓이는 거리마다 안타까운 계절은 추억을 싹 틔우고 솜털 같은 구름은 먹먹한 가슴을 어루만졌다. 남겨진 사람들은 보고 싶은 얼굴 하나 봄 햇살에 새겼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어르신들의 다독거림을 경험하지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가버린 그녀의 발걸음이 멈춰 선 자리. 봄이다.
서른두 살 헤어짐에 익숙해져 갈 무렵. 심통 난 봄이 선택권을 양보했다.
1번 헤어진다.
2번 지금 당장 헤어진다.
3번 뒤돌아보지 말고 헤어진다.
4번 이혼한다.
어느 것을 선택해도 언젠가 한 번쯤은 후회하리라. 알고 있었다.
멈춰 선 자리에 가득한 설렘이 미치도록 좋은 날이었다. 조용히 봄 향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헝클어진 정신을 빗어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따스한 밤이었다.
‘나에게도 행복이란 보상을’ 이란 말을 안주 삼아 쓴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속에 찌르르 전기가 일었다.
비워낸 잔에 흐린 달이 떨어졌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별은 하늘에 달은 잔 속에 말이 없었다.
침묵이 주는 여유가 참 좋아 한참을 그렇게 술과 친구가 되었다.
까짓 거. 세상에만 달과 별이 있더냐. 나에게도 집에 가면 달과 별이 있다.
비워지는 술병만큼 채워지는 눈물을 아이처럼 소매로 쓱 닦고 일어서니 우라질! 봄 향기가 사방에 가득했다. 술에 취한 건지 향기에 취한 건지 몽롱했다. 걸음마다 소복소복 달과 별이 쌓였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아홉수에 그것도 마흔아홉 봄에 하늘 아래 땅 위에 부모가 없는 고아가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살아왔던 시간에는 풀어야 할 숙제처럼 엄마가 남아있었다.
오랜 시간 오해로 응어리진 두 사람의 시간은 평행선이었다. 먼저 내려놓지 못한 마음은 이별을 앞에 두고서야 통곡으로 변했다. 마지막까지 붙잡았던 천륜의 끈이 끊어진 5월은 엄마의 제삿날이 되어 해마다 미친 듯이 그리움을 몰고 올 것이다. 남들과는 달랐던 우리의 인연은 끝내 서로를 용서하지 못했고, 차갑게 식은 저승 가는 길을 배웅하는 것으로 주저앉아야 했다.
말하지 못한 속내를 쓰다듬다 녹아내린 어미의 한은 자식에게 지우지 못하는 주홍글씨로 남았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고 싶다던 소망이 민들레 홀씨처럼 흩날리던 오후는 한 여인이 남기고 간 흔적들로 비틀거렸다. 저 멀리 아련히 보이는 아지랑이 사이로 나비 한 마리가 살포시 날아올랐다.
마지막 가는 길은 처연한 슬픔의 봄이 마중 나와 있었다.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르는 찰나가 스쳐 가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차차! 봄의 한가운데 중년의 여자가 울고 있다.
인생 오십에 느끼는 봄은 새로운 삶이다.
사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싶다. 혼자만의 시간을 이제는 가져도 누가 뭐라 하지 않겠지. 곁을 지키는 반려견과 친구 하면서.
작은 몸짓 하나에도 사랑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표현하는 직진의 살가움이 참 좋다. 감춰 둔 사랑도 꺼내놓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한방이’가 떠나간 날도 올해 봄이었다.
돌아서면 금방이라도 꼬리를 흔들며 가슴까지 앞발을 들고 뛰어오르던 생기발랄했던 귀여움을 이제 다시 볼 수 없음이 허전하다. 사무실 뒷산에 ‘한방이’를 묻었다. 낮잠을 자는 듯 편안하게 눈을 감은 모습은 죽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름을 부르면 금방이라도 달려와 꼬리를 흔들 것만 같은데 와 닿지 않는 현실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봄비를 만났다. 어깨에 머리에 살포시 내려앉아 위로를 건넸다. 초록 물이 생생한 잎사귀마다 봄은 비가 되어 젖어들었다.
왜 이리 봄은 지독할까! 나의 봄은 헤어짐에 길든 알싸한 일상이다.
생명의 기지개는 삶 속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지만 해마다 돌아오는 봄은 겨울보다 춥고 알싸했다. 이상하리만큼 나에게 봄은 곁을 내주지 않았다. 세상의 품에서 모든 것이 ‘발아’의 설렘을 준비하는 순간에도 언제나 그랬듯이 ‘발악’하는 슬픔이 가끔은 서러웠다.
기억 속 자리 잡은 상흔마다 봄은 색색의 시간으로 나이테를 만들고 옹이가 된 그리움은 다가올 시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