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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과 별과 등대 Jun 11. 2020

2. 벚꽃 따라 고래 찾아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날이었다.

4살.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 바보 같고 순수했던 이야기다. 그래서 더 소중한 추억이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그 날을 다시 되짚어 보려 한다.

 엄마는 언니랑 나에게 고래를 보러 가자고 했다. 우리는 그 말에 깜빡 속아 고래를 찾으러 쉬지 않고 계속 걸었다. 이 산을 넘으면 고래를 만날 수 있다는 부추김에 힘들지만 신난 기분이 더 컸다. 산에 고래가 있다니……믿을 수 없는 얘기다.

그땐 왜 산에 고래가 있으리라 생각했을까?

엄마를 따라 벚꽃이 활짝 핀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벚꽃과 나무들은 우리 기분을 아는지 하나같이 춤췄다.

 엄마와 언니를 따라 산을 오르니 보이는 건 고래도 바다도 아닌   나무들로 덮인 산과 꽃들뿐이었다.

내가 생각한 고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어디에도 없었다.

엄청나게 실망하고 내려오는 길엔 입을 내밀고 투덜거렸다.

 “고래가 없어요. 다리만 아파요. 고래 보여 주세요.”

아무 말 없이 엄마는 앞만 보고 걸었다. 언니와 나는 바닥에 떨어진 벚꽃 잎들을 주워 다음에는 고래를 보러 갈 수 있나 없나 하는 내기를 했다. 꽃잎이 하나둘 떨어질 때마다 심장이 쫄깃했다.

 산을 다 내려온 우리에게 엄마가 내민 것은 ‘고래밥’이었다.

  “너희가 찾던 고래가 여기 있네.”

어색한 미소로 말했다.

 왜 고래가 산에 있다고 말했을까? 가끔 그때가 떠올라 물어보면 그 날과 똑같이 말없이 웃어넘겨버린다.

왜 그런 장난을 쳤는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나에게 있어서 가장 황당하고 재밌었던 추억이다.

다시 돌아가도 엄마를 따라 산을 오르겠지. 4살 아이는 ‘고래밥’을 들고

작은 발걸음으로 열심히 따라가겠지.

 봄볕 가득한 벚꽃과 고래밥은 기억 속에 희미해 가지만 기억 속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다가 가끔은 그리움으로 기지개를 켤 것이다.

봄이 되면 생각나는 고래 소동.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내 마음속 저장!!


 아이들의 상상력은 기발하다. 그리고 그 상상 속 세상은 어른들이 이해하기엔 알쏭달쏭하고 오묘하고 신기하다.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포근한 햇살이 꼭 ‘이런 날은 무조건 나가야 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날이었다.

옆집 친구가 가족들이랑 놀러 갔다고 우리도 가자고 엄마를 졸랐다. 그런데 갑자기 나와 동생에게 고래를 잡으러 가자고 했다.

 고래를 본다는 기쁨에 나와 동생은 노래를 부르며 준비물을 챙겼다. 사냥을 하려니 많은 준비물이 필요했다. 잠자리채, 물총, 마실 물, 반창고, 손수건도 챙겼다. 묵직한 가방에 눌려 걷기 힘들었지만 괜찮았다. 곧 고래를 만날 수 있으니 이 정도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엄마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멀리 오르막길이 보이는데 가자 했다.

힘들게 긴 오르막길을 숨이 차게 걷는데 문득 생각이 났다.

 -고래를 어디에 넣어오지? 고래는 엄청 클 텐데.

 -동생이 무서워하면 뭐라고 달래줘야 하지?

 -잠은 어디서 재우지? 우리 집은 좁은데.

별의별 생각을 하며 엄마의 발꿈치를 따라갔다.

뺨이 빨개지는 동생과 나와는 다르게 엄마는 밝은 미소로 앞장섰다.  

양쪽으로 이름 모를 빨간 꽃들이 가득했는데 그 사이로 보인 엄마의 웃음이 유난히 예뻤던 기억이 난다.

“와아아, 드디어 도착!”

엄마의 목소리가 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런데 이게 뭔가?

도착한 곳은 울산 MBC 방송사였다. 커다란 건물에 ‘MBC’라고 적혀 있을 뿐 어디에도 눈을 씻고 찾아봐도 고래는 없었다. 헉헉대는 가슴을 안고 오로지 고래를 보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왔는데

귀여운 밍크고래라도 있어야 하는데 고래는커녕 물고기도 없었다. 엄마에게 따져 묻고 싶었지만, 실망에 가득 차 먼저 눈물이 났다.

 “여기 고래가 어딨어요. 흐윽…… 고래 잡으려고 가방을…… 흐어엉”

순간 당황한 엄마는 나를 달래며 옆으로 가면 고래를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눈물을 닦으며 따라간 곳에는 고래가 있기는 있었다.

아주 새까맣고 생각보다는 작고 볼록 나온 배에 생동감이라곤 전혀 없는 돌로 만든 고래 동상.

얼마나 기대를 하고 상상을 하고 나선 길인데 이럴 수가!

정말 고래가 없다는 걸 알고 내려오는 길 내내 속이 상해 울었다. 어떤 달램도 통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래도 고래를 봤지 않냐며 크게 웃었지만, 약이 올랐다.  

완전히 속았으니 이건 최소 일주일은 넘게 삐져있을 일이다. 밥도 안 먹고 씩씩거리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흐르는 눈물을 계속 닦았다.

 “미안해. 미안. 우리 여기서 고래밥 사 먹고 집에 갈까?”

양손에 과자를 들고 엄마는 우는 나를 달랬다.

분명 일주일 동안 밥을 안 먹겠다 했지 간식을 안 먹는다고는 안 했다.  ‘고래밥’ 과자 안에 불가사리와 오징어도 있었으니 일단 사냥은 성공일 수도 있겠다. 게다가 맛있는 양념도 잔뜩 묻어있으니.

과자 한 봉지에 언제 울었냐는 듯 기분이  싹 풀렸다.

그때 난 왜 그리도 커다란 고래를 잡아 오고 싶었을까? 기발한 상상력이 고래를 잡아 와서 키울 수 있으리라 믿은 것 같다.

 바다에 있는 고래가 아닌 하늘을 날아다니는 고래를 만나고 싶었다.

밤이면 고래를 타고 별들을 낚시로 잡아 엄마에게 주고 싶었다.

그나저나 엄마는 왜 고래를 잡으러 가자고 했을까?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 한번 물어볼까?



 무작정 나선 길이었다. 봄의 유혹에 넘어갔다 말하기에는 약간 모순이 있었다. 적당한 거리가 아닌 제법 먼 길을 걷는 것도 모자라 아까부터 시작된 오르막은 조금씩 한계를 실험했다. 발바닥에 시뻘건 연탄 두 장을 신발 대신 신고 있는 느낌이었다. 턱까지 차오른 숨이 견디지 못하고 땀과 뒤범벅이 되어 헉헉거리며 허공을 갈랐다.

 “엄마, 언제 도착해요. 빨리 고래 보고 싶어요.”

돌아보니 땀이 송골송골 맺힌 별이랑 달이 손에 벚꽃을 들고 걸어온 길에 꽃잎을 한 장씩 놓고 있었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아이들은 아버지를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집에 가는 길을 잃지 않으려 조그만 조약돌을 내려놓았던 간절했던 남매의 소망일까. 찌든 가난에 자식을 버려야 하는 아비의 마음이 이럴까.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 맴돌아 눈을 감으니 속눈썹이 바르르 떨렸다.

 알레르기로 시작된 지독한 봄 앓이가 숨길 수 없는 재채기로 온몸을 괴롭히던 오후였다. 시무룩한 얼굴로 집에 온 아이는 옆집 친구가 가족들과 고래를 보러 간다며 뒷말을 흐렸다. 얼마나 가고 싶고 보고 싶을까.

가난이 전 재산인 엄마에게 일찍 철이 들어 버린 동심은 그 흔한 과자 하나 사 달란 법이 없었다. 아빠의 부재를 일찍 알아버린 초등학생은 외로움을 친구 삼아 동생을 돌봤다. 본인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잘못인 양 눈치를 봤고 왠지 모를 짠함은 그림자처럼 함께였다.

  “그래. 가자. 고래 보러”

말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입으로 바로 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모르겠다.

고래를 보러 가자는 말에 아이들의 얼굴에서 환하게 빛나던 웃음이 눈이 시려서 볼 수 없었다는 기억이 답이 될까!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은 나침반이었다. 목적지 없는 항해는 등대가 없는 망망대해였고 약속한 고래는 바다가 아닌 좁은 골목길에서 헤엄을 멈췄다. 집과 점점 거리가 멀어져 낯선 동네에 들어선 아이들은 혹시 엄마가 이상한 생각을 할까 돌아갈 길 위에 조약돌처럼 벚꽃 잎을 또박또박 흔적으로 새기고 있었다.

가도 가도 고래는 없고 거짓말쟁이 엄마는 생각 속에 생각을 찾았다.

고래 동상이 있는 방송국이 떠올랐고 가는 길마다 벚꽃은 머리에 어깨에 발에 살랑거렸다.

   “찾았다. 고래 여기 있네.”

 얼마나 놀랐는지 아이들은 처음에는 울지도 않았다. 한참 후 현실을 파악하고 실망감에 터져 나온 눈물은 잠글 수 없는 수도꼭지였다.

어디서부터 달래야 할까? 숨이 따가워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중간쯤 내려가던 속울음이 딱 그 자리에 멈춰 딸꾹질이 되었다.

저 멀리 작은 구멍가게가 보였다.

  “저기 들어가 보자.”

한 바퀴 가게 안을 둘러보니 ‘고래밥’이 보였다.

8살 별이랑 4살 달 이에게 사주며 큰소리로 고래 여기 있네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멀뚱한 표정으로 ‘고래밥’을 손에 든 아이의 얼굴은 눈물 자국으로 땟국물이 가득했다.

정말 고래를 보여주고 싶었다.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커다란 고래를 타고 별이랑 달이랑 함께 등대를 보고 싶었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 어미는 자식을 품에 안으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오늘의 약속을 기억하고 꼭 지키겠다고. 땀범벅이 된 채 우리는 구멍가게 평상에 앉아 저녁노을이 질 때까지 과자 한 봉지를 다 먹지 못했다. 그냥 배가 불렀다.

 봄은 어김없이 해마다 돌아오지만, 고장 난 기억은 유독 아픈 추억만 찾아낸다. 가끔 손녀의 손을 잡고 과자를 사러 가면 습관처럼 ‘고래밥’을 산다. 과자를 들고 방긋 웃는 얼굴은 오르막길을 오르며 보았던 내 아이들의 뺨에 묻은 진달래 빛 봄이다. 뛰어가는 뒷모습은 나풀거리는 개나리다. 이번에는 진짜 고래를 보러 한 번 가볼까?

양손 가득 ‘고래밥’을 들고.

슬슬 재채기가 시작되려는지 콧속이 간질간질하다.

에취. 터져 나온 봄이 쑥쑥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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