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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과 별과 등대 Jul 06. 2020

여름

3. 우리 집 워터파크


 여름이면 엄마는 언니와 내가 워터파크보다 훨씬 좋은 수영장에 놀러 갔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을 쥐어짜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한 증거는 어릴 적 앨범에 있다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그래서 찾아본 앨범에는 수영장이나 워터파크에 놀러 간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있는 사진이라고는 촌스러운 꽃무늬 수영복을 입은 언니와 내가 활짝 웃으며 고무대야에 들어가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아! 그날의 기억이 기분 좋게 살아났다.

 형편이 넉넉지 못해 수영장이나 워터파크는 꿈꿔보지도 못 했다.

친구들은 가족과 산으로 바다로 강으로 놀러 다니느라 바빴다. 기가 죽은 언니와 나에게 엄마가 야심 차게 준비한 것은 마당에 차린 엄청나게 크고 붉은 고무대야 수영장이었다. 촌스러운 꽃무늬가 가득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머리가 꽉 껴서 눈매가 매서워지는 수영모까지 쓰면 놀이 준비 완료다.

얼음같이 차가운 물을 가득 받은 고무대야는 신나는 수영장이 되었다. 물장구도 치고 호스를 무기 삼아 해적 놀이도 하고 목청이 터지라 고함도 지르며 정신없이 놀았다.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엄마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지나면 오늘이 아주 큰 추억이 될 거라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하며 날씨만큼 맑고 밝은 우리의 모습을 담았다.

 오늘 앨범을 열어보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났을 추억이 낡은 사진 한 장으로 다시금 심장을 뛰게 했다.

이번 여름은 시간을 꼭 내서 수영장에 놀러 가서 사진 한 장 찍어 추억을 대비해놔야겠다. 낡은 사진 한 장으로 어린 시절 그리움을 생각한 것처럼 올해 여름의 행복한 기억을 먼 훗날에 떠 올릴 수 있게.

언니에게 함께 예전의 촌스러운 수영복을 사러 가자 말해볼까!



 어릴 때는 집마다 빨간 고무대야가 있었다. 주로 이불을 빨거나 김장을 할 때 썼다. 하지만 우리 집은 용도가 달랐다.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는 짜릿한 워터파크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따가운 햇빛이 존재감을 과시하는 날이었다.

여름방학이라 놀이터에서 놀고 싶지만 폭염으로 집 밖으로 나가기 힘들었다. 뜨거운 바람을 불어주는 선풍기 앞에서 가쁜 숨을 쉬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친구들 집에 있는 에어컨이 내심 부러웠다. 마당에서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빼꼼히 내다보니 커다란 고무대야에 시원한 물이 채워지고 있었다. 물을 다 채우고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시멘트 바닥에 물을 뿌리니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물방울이 반짝였다.

 “자아, 지금부터 물놀이 시간이다.”

엄마의 목소리가 마당을 가득 채우면 동생과 나는 촌스러운 수영복과 수영모로 갈아입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돌고래 물총은 하늘을 쏘고 오리 인형은 통통배가 되어 놀다 보면 손을 쪼글쪼글해지고 입술은 파랗게 변한다.

지칠 줄도 모르고 바닥에 열기가 오르지 않게 고무호스로 물을 뿌리고 놀다 보면 조금 추워진다. 그때 미지근한 물로 목욕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면 덥지도 춥지도 않고 적당한 온도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엄마표 수박화채를 먹는다. 이때 먹는 화채가 최고로 맛있고 시원하다.

 수영장이나 여름 놀이공원의 즐거움은 없지만, 돈도 안 들고 만족도는 최상인 별 다섯 개 워터파크!!!

우리에게 그리움이 가득한 여름의 추억을 만들어준 마당은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가끔은 가난한 엄마의 웃음이 남은 그 집이 생각난다.

 딸이 욕조에서 첨벙첨벙 발길질하며 “수영 잘하지?” 하고 물어본다. 큰 수영장에 놀러 가고 싶다고 한다.

너도 빨간 고무대야 워터파크에서 한번 놀아볼래?





찜통에 갇힌 하늘의 가쁜 숨이

따가운 바람을 타고

아지랑이 일렁이는 땅에

수십만 개의 바늘로 쏟아지면

더위의 역풍 맞은 단칸 사글셋방

금이 간 낡은 창문 틈사이

빚쟁이의 능글능글한 걸음으로

여름은 심드렁하게

드러눕는다.


발등을 깨물던 모기 한 마리

소스라치게 놀라 일시 정지하면

가난한 집 한 뼘 앞마당에 열리는

세 모녀의 물 축제는

바람난 고무대야의 엉덩이춤으로

시작되고

흐느적거리는 호스에서 터진

물줄기는 

햇살마다 무지개로 아이들

머리에 한꺼번에 쏟아진다.


깨알 같은 웃음이 성긴 행복으로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달달한 그리움으로

한 장의 사진이 가슴 끝에 또르르 맺힌 사랑으로

한낮의 추억을 쓰다듬던

우리 집 워터파크

손녀에게도 해 줘 볼까.

추억이 머문 그자리

여름은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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