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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Jul 04. 2020

[에세이] 답장이 없으면 슬프긴 하겠다

출근길. 라디오에서 영화 '카페 벨에포크'에 대해 짤막한 소개가 흐른다. 순간 시곗바늘이 뒤로 휙휙 돌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과거의 어느 시점, 그곳이 사랑에 절절했던 기억인지 시작하는 기억인지 끝날 때였던지 그도 아니면 내가 다른 인생을 살게 한 지점이었던지.


나를 잡아끌었던 이야기는 디지털 세계를 좋아하는 아내와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남편, 하나부터 열까지 뭐하나 맞지 않은 부부는 결국 파자마 차림으로 쫓겨난 남편이 기억 속 각인된 첫사랑 여인과 머문 시간을 정확히 소환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디제이는 청취자에게 물었다.

"여러분은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 어느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당신의 인생에서 찬란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시간 여행은 할 수 없겠지만 골똘해졌다. 그래도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다치기 전으로? 아니면 노래 '사노라면'을 쏟아지는 여름 소나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친구와 걷던 우정 충만한 고교시절? 아니면 첫눈이 펑펑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에 거대한 토토로 인형을 등에 짊어지고 맞았던 이별? 그도 아니면 쭈뼛쭈뼛 얼버무리며 제대로 좋아한단 티도 못 냈던 아내를 만났던 순간?


하필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야기 때문에 이 책을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다. 내게 사랑은 언제나 보랏빛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늘 잿빛도 아니었다는 걸 확인시켰달까. 그래도 내게만 사랑은 호의적이지 않다고 상처받던 이별의 기억보다는 사랑의 기억으로 조금은 덜 아프게 기억하는 방법을 배웠던 그때의 기억들을 순간 추억하게 만든다.

"아플까 봐 헤어진 건데 헤어져서 너무 아파. 내 선택이 틀린 걸까." p41


메시지의 절절한 내용보다 그 밑에 표시되는 '읽지 않음'이란 글자가 작가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더 이상 내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 내 생활을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에 조급해지고 아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솔직, 단호한 것 같기도 하지만 절절한 미련이 좀 답답하기도 했다. "이젠 좀 끊어 내"라고 같이 어깨를 들썩이고 있다. 작가의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에 내 경험의 감정이 뒤엉킨다. 나도 여리고 상처 잘 받던 그랬던 때도 있었다는 기억에 씁쓸해진다. 이젠 그런 비슷한 기억조차 갖기엔 너무 늙었다.

  

너를 사랑하는 내가 있기 전에
나를 사랑하는 내가 있어야 해
p122


작가의 사랑과 이별에 대해 흔들리고 불안했던 감정들이 죽어있던 내 연애 세포를 흔들어 놓았다. 이별에 절망하고 사랑에 벅차고 갈등에 아파 차곡차곡 쌓아두기만 하던 작가의 감정을 덜어내려는 노력처럼 느껴졌다. "나 이만큼 아팠어"라는 투정이나 '내 나쁜 전 남자친구를 고발합니다'라는 듯 이유 있는 아픔이라고 이해를 바라는 것처럼.

8년이 넘는 세월 사랑이라 믿었던 관계는 갑작스럽게 갖게 된 내 장애를 넘어서지 않았다. 미련을 남기지도 돌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연락을 끊었다. 그 후에도 닫아 걸은 마음을 동정이 아니라 사랑이라며 세차게 두드렸던 사람 역시 가족의 반대를 넘어서지 않았다. 그랬다. 사랑도 연민도 아닌 그저 동정이었을 것이다. 본인은 여전히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분명 동정이었다.


아무튼 작가처럼 절절하진 않았지만 내 인생에 사랑은 달콤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내를 만났다. 그녀는 장애 따위는 상관하지 않았고 수많은 인파 속에도 나만 보고 있었으며, 어느 곳에서도 잡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사랑이란 감정을 뒤흔들며 불안해하지 않았다. 젖어들 듯 아내는 내게, 나는 아내에게 그렇게 '당연해'졌다. 비로소 사랑이 달콤해졌다.


흔들리는 게 청춘만은 아니듯 사랑도 달달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우린 모두 알고 있지만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하고 이어가려는 집착으로 점점 쓴맛이 더해진다. 내 상처가 훨씬 아픈 것처럼 타인의 아픔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이해와 공감을 하게 하고 버티고 삭히다 아파 상처로 너덜너덜 해진 사람의 감정을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담고 사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울고 싶으면 울어야지 어쩌겠나. 우린 캔디가 아니니. 그리고 작가가 마지막에 덧붙인 이야기처럼 그런 아픔을 다 이겨내고 다시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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