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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Jul 21. 2020

[에세이] 숨을 참던 나날

드디어 왔다! 우연히 누군가의 서평에서 "너무나 극적이고 버라이어티 한'이라는 문장을 스치듯 보게 되고 각인되었던 제목. 더 우연히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 선 예약 목록에 있던 책을 발견하고 신청해놓고 반년 이상 잊고 있었다. 생각보다 두껍고 생각보다 우울한 표지에 생각보다 훨씬 두근거리게 되서 숨을 참고 있다.


"도대체 내가 잃을 게 뭐지?"라고 물어야 했던 소녀의 시간은 깊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어둡고 깊은 물 속으로 부러 스스로 가라앉히려 발버둥치는 모습이다. 서글프지만 눈물은 나지 않고 바삭거려 더 아플뿐이다.

"때론 분노와 사랑은 구분하기 어렵다." p89


온통 상처입은 자신을 더 상채기 내는 말들 사이로 설렐 정도로 흔들리는 문장들을 만나게 되는 일이란 미안할 지경이다. "바람이 머리 위로 불어 나뭇잎이 흔들렸다."같은 섬세한 표현에 물 속에서 숨을 쉬려 입을 동그랗게 모을 때처럼 숨이 막힌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기억들조차도 더럽게 침울하고 더럽게 불쾌해지는 감정을 동반하게 한다. 이 모든 걸 네 살 혹은 열 두살 때론 열 몇살에 겪어야 했던 그의 감정을 난 백만 스물 하나만큼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방심해서 순식간에 손을 종이에 베일때처럼 동공이 커질 수 있을 만큼 커지고 어이없고 한편으로는 멍청하고 더럽게 아프다.


그가 행복한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지만 그 역시도 여섯 살로부터 점차 줄어 결국 7년만에 물 속에, '가족 말고 다른 것'에 속하고 싶을 만큼 분노는 다른 것을 향한다. 다만 그의 기억이 맞다면 말이다.

"물 속에 들어갈 때는, 책에 빠져들 때처럼, 삶을 땅에 버려두어도 된다." p205


타인의 글에서 그것도 딸을 강간하는 내용에, 그제서야 자신이 '존재'한다고 느끼는 감정이, 심지어 '다행'이라는 공기로 둘러 쌓인 감정을 느껴야 하는 그를 지구 반대편에서 아파한다고 위로가 될까. 우린 백만분의 일이라도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의 표현대로 눈을 너무 세게질끈 감아서 이마에서 피가날 지경이다.

"사람은 기억을 되새길수록 그 기억을 변형하게 된다. 기억을 언어로 전환할 때마다, 그 기억은 변화한다." p388

이 책을 읽어낸 시간은 얼마였을까. 3시간? 혹은 그보다 좀 더 오래? 그리고 도대체 기억 속에 이 책이 머무를 시간은 얼마일까. 몇일? 혹은 몇년? 가늠하기 어려울만큼의 시간이라는 건 분명하겠지. 아직도 물 속에 잠수하고 있는 느낌이다.


작가의 삶은 '자기 파괴적' 그리고 옮긴이가 언급한 '부적응자'라는 꼴랑 한 단어에 잠길만큼 얕지 않다. 그렇다고 온갖 역경을 이겨낸 것이 대단하다고 훌훌 털어낼만큼 가볍지도 않다. 분명 그렇다. 그럼에도 자기파괴적 삶에서 유유히 잘 건너온 일은 분명 대단하다. 달리 어떤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작가가 숨을 참았던 날만큼 독자도 참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질식하고 말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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