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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Sep 09. 2020

[에세이]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쉬려고요, 그동안 많이 힘들었거든요"


아, 좌절감이 들었다. 나도 그동안에 여전히 힘든데. '아무런 특기도, 이렇다 할 취미도 없는' 건 똑같은데 작가는 6년을 일하고 자발적 백수의 삶을 괜찮다고 말하는데 나는 23년을 일하고 있는데도 백수가 될까 봐 매일을 마음 졸이며 산다. 아, 작가와 다른게 있다. 나는 그다지 성실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일하는 게 싫다거나 우울하게 만드는 건 아니지만 결코 자발적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그게 빌어먹을 마음에선 일관되게 '더럽고 치사하고 빡치지만' 버티라고 응원한다. 참 문제다.


그리고 내가 자발적 백수가 두려운 이유는 늘 가난이 아닌 빈곤한 사람들을 자주 목도하는 일을 하는 데 있다. 이놈의 자본주의는 특기도, 능력도, 빽도 없는 사람이 일할 수 없다는 건 가난한 삶에서 행복을 찾는 기적 같은 일보다 빈곤으로 삽시간에 추락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 결과 삶은 전쟁터도 지옥도 아니고 곧장 죽는 거다. 게다가 나는 작가와는 다르게 여기저기 많이 아프신 부모님이 계시다. 애들도 어리고. 그래서 백수되는 일이 너무 어렵다. 근데 너무 부럽다.

"백수가 되고 나서야 드디어 나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p64


작가는 행복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바로 다른 사람의 삶을 욕망하는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용기"라고. 궁핍한 생활이 불안하거나 두려운 건 아니지만 나릉의 경제적 활동을 꾸려 나가면서 자신만의 패턴을 찾는다는 건 솔직히 꽤나 근사해 보인다. 돈을 모으는 게 아니라 잘 쓰는 거라는 그의 말은 옳다. 그가 고백에 가까운 경력을 읊어가던 직장 생활 이야기에는 왠지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진 않을까 싶었다.


계약직이라고 하기도 뭣한 열악했던 애니메이션 제작 현장에서 담배와 콜라로 끼니를 때우며 8년을 버텼다. 아마 1년 치 월급을 떼이고 사장이 야반도주해버리지 않았다면 난 계속 언젠가 내 손으로 창작 애니메이션을 하고 말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계약직 강사로 7년을 버텼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해 볼 수 있어 더 잘하려고 애썼던 시기다. 계약직이 건 정규직이 건 관계없었다.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새벽 5시에 일어나 안산에서 노량진까지, 밤 11시까지 일했다. 힘든 게 아니라 죽을 거 같아 이직을 했다. 하던 일이 아닌 전혀 다른 사회복지였다. 여전히 계약직이었지만 공공연한 무기 계약직. 출근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퇴근 시간에 가도 되나 눈치를 보는 내게 누가 그랬다.


"퇴근 안 해요?"


라니 그동안 일하면서 퇴근 시간이라고 퇴근하라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다. 다들 퇴근하지 않으니 더 일을 찾아 해야 했고 그저 좋아하는 일이니 좀 더 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며칠 밤을 새우고 계단에서 두 번 구르고 나서 알았다. 퇴근은 하라고 있는걸.


행복했다. 아주 잠깐. 퇴근 시간이 익숙해지는 순간 내가 주도하지 않은 일들 속에서 모든 일은 허가 사항이고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시스템에서 십수 년을 일해온 나는 조직이라는 곳에서 겉돌기만 했다. 주어진 일을 하고 하던 일을 컨트롤 씨 컨트롤 브이 하고 있자니 매너리즘에 빠졌다. 지금은 숨쉬기 어려운 지경이다.

이 책은 처음에는 단순히 '백수'라는 타이틀에 부럽다는 시기심을 살짝 양념으로 뿌린 감정이 들었다. 한데 읽다 보면 직장인보다 더 직장에 대한 치열한 고민에 대한 흔적이 묻어난다. 그렇다고 구직자나 취준생처럼 절박한 초조함보다 클래스가 다른 고민이랄까. 그게 뭐라고 콕 집어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게 아쉽다. 가끔 경로를 잃어도 어쨌든 갈 수는 있다는 위로? 기름값은 좀 들진 몰라도 말이다.


자발적 백수가 되고 나서야 자신의 경로를 찾은 진짜 백수 이야기. 자발적 백수를 고민하는 이들이나 회사에서 버티기를 하며 퇴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느낌이다.  그나저나 출간도 했으니 작가님! 노트북을 사셨나요?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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