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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Sep 10. 2020

[사회] 나혜석의 말 - 여자도 사람이외다

남들의 부러움을 받았지만 그것으로 출세하려 하지 않았고, 아내이자 어머니였지만 인형이기를 거부했다. 그렇게 경직된 사회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그래서 깨어 있고자 했으며, 여성이기 전에 한 인간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의 삶은 시대와 어울리지 못했고, 시대는 그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들어가는 말을 읽는 것으로 충분히 비장함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죽음에 억울함에 펴낸이의 약간의 떨림이 느껴질 정도로. 이미 100년 전에 여성 인권을 대변하는 그를 말하는 이 책은 인형이 아닌 여성이 아닌 사람, 그대로 "나, 혜석"을 고한다.

  

또 부인의 온량 유순으로만 이상이라 함도 필히 취할 바가 아닌가 하노니, 말하자면 여자를 노예 만들기 위해 이 주의로 부덕(婦德)의 장려가 필요했도다. p19


신사임당이 이랬을까, 아들의 출세를 위해 불을 끄고도 칼질을 보여준 썰기의 달인 한석봉 어미가 그랬을까. 100년 전에 이리 거침없는 말을 할 수 있었던 베짱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정신이 시대에 뒤떨어짐을 강조하는 산문이나 대담, 사설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그가 100년 전에 남녀평등을 외치지 않았다면 우린 여전히 가부장 시대에 질퍽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여 그가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다.

이 책은 경희, 모(母) 된 감상기, 이혼 고백서에서 사람으로 당연하게 여겨져야 하는 것들이 무시되고 억눌리는 가부장적 시대의 고발을 넘어 변혁 시키려 노력했던 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겼다.


한창 꿈 많고 할 일이 태산이던 고작 20살이던 그에게 닥친 임신은 청천벽력이었고,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겪게 되는 세간의 관심이 아들이냐 딸이냐의 성별에 머무르는 일들, 야밤에 자다 말고 일어나 젖을 물려야 하는 독박 육아의 억울함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그의 글에서 모성애와 이성이 엉겨 붙은 감정에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입덧으로 고생하던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아내 이음미 씨에게 미안해졌다.

  

다수는 펼치기 전에 굽히게 된다. 여하히 누르든지 미혹하든지 분지르든지 하더라도 한뜻으로 살려고만 하면 되지 않는가. 겨울에 얼어붙은 개천을 보라. 그 더럽게 흐르던 물이 어떻게 이렇게 희고 아름답게 얼어붙는가. 이것은 확실히 그 본체는 순정과 미를 잃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점으로 보아 진보해 가는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p208


그가 태생부터 여성 인권에 눈이 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유학과 구미 만유(프랑스 유학이겠지?)를 다녀오면서 급변한 게 아닌가 싶다. 이때 인생의 가치관이 정립되었다는 걸 보면. 그의 이혼 연대기를 보면서 이미 마음 떠난 남편에 여전한 연정이 있음에도 이혼을 해야 하는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하오'체의 글이라서 생경하면서도 읽는 맛이 있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한 장면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깨인 여성으로써 시대에 순응하지 않고 앞서 나갔던 그의 거침없는 행보가 그의 삶을 파란만장하게 만든 것을 시대 탓으로만 치부하기엔 가혹한 건 아닐까 싶다. 그도 가슴 한편엔 두려움을 담고 있지 않았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당당한 걸음을 멈추지 않은, 기어이 소환된 그를 기억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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