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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든지 Oct 09. 2020

[소설] 백귀야행

뜨거운 여름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공기가 선선해졌는데 섬뜩한 제목이 되려 끌렸다. 두 겹으로 되어 있는 띠지가 눈에 띄어 펼쳤다가 숨어 있는 책에 대한 소개 글을 찾았다. 뭔가 심오하다. SSG 읽히지 않고 헤아릴 수 없는 심오. 읽기 전인데도 벌써부터 흥미롭다. 어떤 귀신이 튀어나올까 싶어 무릎에 이불을 덮고 전설의 고향을 기다리던 그때처럼 긴장한다.


생각처럼 귀신들의 향연은 벌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김도 덩달아 빠졌다. 5개의 단편에서 옅게 여성으로서의 울분 같은 감정이 소설들을 관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독특한 소재의 우렁총각의 존재가 그렇고 답도 없는 글 밥에 귀신이 된 두 처자의 처지도 그렇고, 열다섯 민정이를 담은 은수도 그렇다. 그리고 모성애에 갇힌 혜선도 그랬다. 어쩌면 82년 생 김지영 속 김지영 같은 삶들.

"이왕 이렇게 되어버렸으니까",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는지", "그 이상의 '진도'는 생각하지 않았다"의 짧디짧은 한 문단에서 자갈 길을 만난 것처럼 덜컥 거리는 문장이 계속 걸렸다. 희주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어렴풋이 추측됐지만 그래도 성훈이와의 사이라서 그랬다. 나는 왜 '장애'라는 화두에는 예민해지는지. 왜 장애인은 소설 속에서조차 약자여만 하는지. 답답하다.

"그날 나의 사춘기는 막을 내렸다. 원래 사춘기란 자신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찾는 기간이니까." p179


아직 사춘기를 겪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엄마도 그랬다. 우리 애들은 특별히 말썽이나 속을 썩이지 않았다고. '자신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찾는 시기'인 그 통증을 겪지 않아서 나는 쉰이 넘은 나이에도 자아 찾기에 휘청거리는 건가 싶어 가시가 박힌 것처럼 따끔거렸다. 그러다 '후회할 수도, 변명할 수도 없는 실수의 소산', 우린 모두 그런 존재감을 갖고 태어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분명 참신하고 흥미롭지만 처량하달까 쓸쓸하달까 애잔하달까 마음 한구석이 싸해지는 공기가 담긴 소설이다. 단숨에 읽히는 소설이지만 읽으면서 드는 음습한 기운이 들러붙어 침잠하는 느낌이 좋지만은 않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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