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의 교차로에서 푸코를 만나다
푸코가 뉘신지 알지도 못한 채 귀동냥은 한 게 있어 낯익은 이름이라 장애를 바라보는 그의 철학이 궁금했다. 나는 진보적 장애 운동(일명, 장판)에서 활동한 적도 없지만 당사자라는 정체성은 장판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냉정과 열정을 오간다. 뻑하면 쇠사슬로 몸을 묶은 채 도로를 기어다는 그들과 한편 그들이 그렇게 이끌어 낸 것들을 그저 향유하면서 복지관 투어를 하면서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들을 섭렵하면서 장애인이란 특권을 누리는 그들 사이에서 당사자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 부분에서 밝히는 바는 복지관 투어를 한다는 건 비약일 순 있겠지만 일할 수 있음에도 일할 권리를 저버리고 사회보장에 의존하며 시간을 향유하는 자들에 국한한 표현이다.
어쨌거나 장판을 무대로 활동하는 이들이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쟁취나 투쟁을 외치며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는 듯한 거친 시위를 펼치고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며 '얻어 냈다'라는 감회 섞인 외침을 종종 듣는다. 무엇을 누구에게서 얻어 냈을까. 처음부터 내 것이었어야 할 것들을, 아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주어진 적이 없었을지 모르는 것을 빼앗겼다고 할 수 있을까. 정작 '준' 이들은 공감해서가 아니라 불편하고 귀찮아서 던져 '준' 것이었으면 어쩌나 싶다. 생각하다 보니 화나고 쓰다 보니 씁쓸하다.
52년, 인생사에서 반은 비장애인으로 또 반은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당사자로서의 정체성은 간간이 혼란스러웠다. 아니 여전할지도. 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으로,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으로 자기 검열하듯 종종 시선이 분산되는 일이 그렇다.
장애인에게 어떻게 장애가 일상에서 '장애'로 부상하는지 경험하고 목도하면서 분노도 아쉬움도 안타까움도 결국 비빔밥에서 섞이지 못하면 무용인 양념처럼 비주류의 비애쯤으로 선을 그어 버렸는데 장애학을 어깨너머로 좀 본 후에는 부쩍 장판에 관심이 생겼다. 그때 이 책을 알게 되었는데 읽고 싶어 손에 넣었다.
저자가 이 책을 어찌 내게 되었는지, 결기가 느껴지는 이야기를 읽으니 전속력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았을 때처럼 심장이 터질 듯하고 온몸에 피 도는 속도가 빨라져 흥분된다.
"바로 그 인간학의 에피스테메(시대를 지배하는 인식이나 학문적 지식, 참됨 앎) 위에서 '장애'라는 개념과 '장애인'이라는 인식 대상 역시 출연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즉 노동을 통한 가치 산출 능력이 인간의 본질로 구성되면서, 그런 노동 능력이 결핍된 인간으로서 장애인이 인식 대상으로 출현한 게 아닐까?" 31쪽
권익옹호나 자립이 중요해진 지금이야 장애인에게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나 옹호가 일반적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애인에게 그런 권리는 인정되지 않았다. 배려나 시혜에 넌덜머리가 난 중증 장애인들이 일할 기회를 달라고 팔을 걷어붙이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장애인이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것에 노동이 차지하는 범위는 어느 정도일까? 장애로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장애인은 자연스럽게 노동시장에서 밀려나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사회보장 영역으로 편입되게 된다. 이런 일은 장애의 문제일까? 아니면 노동 시장에서 활동할 기회를 박탈 당한 시스템의 문제일까?
비단 장애인뿐만 아니라 인간이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노동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어쩌면 자본주의 체제의 특별함은 아닐까. 백수 혹은 장애인에게 노동은 과연 존재 가치가 될 수 있을까.
한편, 내가 푸코의 난해함을 이해할 날이 올까? 기름이 물 위에 막을 형성하고 미끄러지듯 푸코의 철학을 책으로 옮긴 저자의 사유 사이에 막처럼 껴 신나게 미끄럼을 타는 느낌이 든다. 내용은 이해는커녕 독해도 못하고 활자만 미끄러지듯 읽고 있다. 참 많은 고민과 사유에 탐독을 더해도 이렇게 어렵던 책이 있을까 싶다. 줄곧 난독에 시달리며 읽었던 문장을 되짚어야 했다. 결국 완독을 잠시 미뤘다.
나는 당사자로서 장판에 나서지 않는 것이 비겁하다 생각지 않는다. 그렇지만 마음 한쪽 구석엔 한국의 척박한 장애 복지를 이만큼 펼쳐놓은 사람들의 밥상에 숟가락만 들고 밥상에 둘러앉은 것 같아 가슴에 휑하게 찬바람이 들이치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입장에서 장애학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데 대학원에서조차도 깊은 공부를 할 수 없었다는 점은 아쉽기만 하다. 장애학이 인간학(인문학)에 기초하고 있고, 인간의 존재는 무엇인가?를 묻는 인간학과는 달리 장애 혹은 장애인의 존재는 무엇인가를 묻는 대신 장애(인)를(을) 구성하는 인식의 틀은 무엇이고 어떻게 생성되며 또한 그 권력 효과는 무엇인가를 묻는다.
다시 말해 장애(인)는(은) 신체나 정신적 손상으로 인한 결함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로 인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배제를 경험하게 하는 사회적, 법률적, 제도적 장벽을 문제로 본다는 데 있다고 밝힌다. 하지만 책의 끝을 보지 못한 채 개인적으로 보자면 이런 다양한 장벽들에 앞서 장애(인)을 규정하는 인식의 문제를 인식해야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아무리 사회적, 물리적 환경이 나아진다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불편을 감소 또는 제거하기 위한 정도일 뿐 구성원으로 개인이 포지셔닝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예컨대 입구에 단차 때문에 휠체어가 입장할 수 없다면 단차를 없애거나 경사로로 해결할 수 있다. 한데 그조차 "우리 집엔 장애인은 안 와도 된다"라는 입장이라면 여기에서 파생되는 심리적 장벽으로 인해 장애인은 철저히 배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이 책은 장애(인)에 진심이 느껴져 참 고마운 책이다. 다만 장애학이라는 학문적 익힘이나 철학적 사유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쉽지 않다는 게 아쉽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오랜 시간 저자 해오고 있다는 철학 강의도 들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