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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Oct 05. 2022

이분법적 경계를 넘어서기 위하여

ⓒGreg Montani



 인생은 언제나 두 갈래 길(방향) 혹은 두 분류(현황)로 나뉘곤 한다. 여기에 감정이나 의지가 깃들면 ‘흑백논리(黑白論理)’로 발전해 옳고 그름을 규정짓기도 한다. 세상이 두 가지 개념으로 구분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굳이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좌파와 우파’ 같이 골치 아픈 이야기까지 갈 것도 없다. 우리는 늘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서 불안에 떨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성공’이라는 전제조건을 달성해야 한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행복 쟁취를 위해 부단한 노력으로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여기에서 시작한다. 일명 ‘갓생’ 열풍의 시작도 같다. 새벽, 네 시에 읽어나 생산적 활동을 하고 알차게 하루를 마무리하면 남들과 구분되는 성공자의 삶을 사는 것 같이 느끼는 것이다.



 나는 공공기관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권익옹호와 기획 홍보를 업무를 맡고 있다. 한때는 유도선수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엄연한 사무직 직장인이 되어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복지사 이전에는 애니메이터에 영상제작자, 디자인 강사까지 거쳐왔으니 그야말로 부단히 노력했다며 자신을 격려해주고 싶을 정도다. 퇴근 후에는 취미로 독서를 즐겨왔고, 2014년부터 지금까지 천 권이 넘는 책을 리뷰해 블로그에 올렸다. 성실한 포스팅 덕분에 포털 ‘인플루언서’라는 등급까지 얻게 됐다. 몇몇 동료와 함께 책을 펴낸 것도 자랑거리 중 하나다.



 내가 과연 ‘갓생러’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행복을 위한 노력만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갓-생존러’라고 설명하고 싶다. 사실 나는 지체 장애인이다. 180cm에 가까운 키에 운동선수 생활을 하던 내가 돌연 스물의 나이에 사고로 목이 부러져버렸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기에 자의로 죽음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도 ‘인공 뼈’라는 신기술의 임상실험 대상으로 지원하며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로봇처럼 각지고 뻣뻣하게 걷는 것이 전부여서 사실상 휠체어를 타는 것이 더 효과적이긴 하다.



 10월 3일 기준, 장애인으로 살아온 날이 32년 128일을 기록했다. 굳이 ‘기록’이라 표기하는 이유는 앞으로 살날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어서다. 그리고 이 기간은 내가 이분법으로 구분되는 경계를 넘어서기 위한 사투가 이어진 기간이기도 하다. 퇴원을 퇴원하면서 나는 크게 두 가지의 목표를 세웠는데 하나는 결혼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밥벌이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목표는 생각보다 금방 이뤄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함께하는 지금의 삶은 나에게 있어 무한한 행복을 선사하고 있다.



 문제는 두 번째 목표였다. 나는 사회의 일원으로 밥벌이하기 위해 ‘갓생’의 방식을 택했다. PC가 생소하던 90년대, 매일 기저귀를 차고 3시간씩 절뚝이며 걸어 컴퓨터 디자인 학원에 다녔다. 자격증도 취득하고 업무에 자신이 생겼을 무렵이 되자, 벼룩시장 구인 광고를 살펴보며 취직의 꿈을 그려갔다. 신문에서 적당한 회사를 찾아 전화를 걸었고, 면접을 보러 절뚝이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회사에 도착한 나는 면접을 볼 수 없었다. 그 짧은 5분의 시간 동안 누군가를 채용한 것이 아니라 내 걸음걸이를 보고 거절한 것이다.



 생사의 고난에서 살아 돌아와 사회의 시선과 싸우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나다. 당시 디자인 강사로 활동할 정도로 실력을 갖추었지만, 급여는 열정페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구분되지 않고 평가받기만을 바랐다. 평가조차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나는 좌절하고 말았다. 내가 가진 능력이나 인간적인 가치를 선보일 기회가 더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동안은 침울한 시기를 보냈던 기억이 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NA



 생산성의 입장에서 효율과 비효율이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인간을 구분하게 되는 것 같다.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는 어린 시절, 서울대 출신 아버지도 지쳐버리게 만든 형법 책을 통째로 외워버린 영재다. 국내 최고 로스쿨 수석 졸업이라는 화려한 성과에도 도무지 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바로 그가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로펌에 입사하지만, 생산성을 증명하기 전까지는 ‘훼방꾼’ 정도로 취급되곤 한다. 쓸만한 인재로 평가받지 않고서는 천재적인 성과와 노력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드라마 제목처럼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 <미생>에는 “직장이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삶의 치열함을 뜻하는 말이겠지만, 장애인에게는 비유가 아니라 매일 현실로 나타난다. 전쟁터라 불리는 회사에 들어서기까지 출퇴근의 지옥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커다란 전동 휠체어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은 물리적 불편한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러시아워에 휠체어를 들이밀고 버스에 올라타 주변을 돌아보면 어느새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리니 그 앞에서 망설이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렇게 그들과 다시 구분되어 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 콜택시’가 있다. 이 벤 차량은 이름과는 달리 불러도 도통 나타나질 않는다. 넉넉잡고 세 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귀한 존재이기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매일 지각하곤 했다. 늦어진 시간을 채우기 위해 야근할 생각을 하면 그야말로 ‘갓-생존’이라는 말이 들어맞는 것 같다.



 콜택시에 올라 안도하는 것도 잠시, 가끔 기사분이 이야기를 건네는 경우가 있다. 장애인복지관으로 향하는 나를 복지관 이용인으로 파악하고 난 뒤에 말이다. 여차여차하여 출근길이라는 사정을 털어놓으면, 허드렛일이나 하는 사람으로 짐작하고 힘들지 않으냐며 격려하기도 한다. 처절하게 노력하고 도전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비장애인이 보기에는 생존을 위한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최근 ‘갓생’으로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며 꿈을 키워가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면 새삼 기특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할 결과가 만족스러울지 아닐지는 모를 일이라는 점에서 걱정이 앞선다. 남들이 그려놓은 그럴듯한 모범적 행동이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나름의 계획으로 끊임없는 노력을 이어왔지만, 세상은 그 노력 자체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이는 탓할 수도 없고 원망할 수도 없다. 디자인 외 일까지 수행이 가능한 남자 직원을 채용하려는 회사에서 나는 인재가 아니었다. 이 사실을 이해하고서야 좌절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치를 알아가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장애는 하나의 불편함이다. 비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가진 불편함과 부족함은 제거해야만 하는 미션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길 바란다. 필요에 따라 배우고 극복하면서 인간적인 성장을 거듭하는 것이다. 굳이 이분법으로 구분해보자면 ‘어떤 일’을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임하는지가 중요하다. 



 ‘갓생’에 부정이나 긍정하진 않겠다. 다만, 내가 경험했던 방황을 되풀이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누군가가 그려낸 삶의 모습에서 행복을 찾으려 자신을 부정하지 말아라. 세상은 두 가지의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장애와 비장애, 행복과 불행 등 우리는 언제나 경계선에 홀로 서 있다. 자신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갓생’의 방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적합한 노력을 동력으로 주입해보자.



모였다 하면 힘듦이나 불행을 배틀해야 그나마 숨통이 틔우는 시대에 갓쟁이 뭔지도 모르는 구닥다리 세대인 내게 관련한 내용으로 청년들에게 힘이 될만한 글을 써달라는 지인의 요청이 있었다. 생각대로 휘갈긴 날것의 이야기는 정리되지 않아 편집자의 손을 거친 글을 '더 나은 세상과 의미 있는 삶의 입구', IPKU에 기고한 글이다.


 원문: http://www.ipku.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6


#칼럼 #장애 #IP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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