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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Nov 20. 2022

준비

: 준비되지 않은 상실에 대처하는 법

"아빠가 이상하다야! 말도 못 하고… 아버지 바꿔 줄게 얘기해봐라…"


주말 오후, 다급한 엄마의 목소리가 전화기 넘어 들렸다.


"어머니! 어머니! 바꾸지 마시고… 빨리 119 부르시고 병원으로 가세요. 저도 금방 따라갈게요!"


고함에 가까운 아내의 목소리에 심장이 덜컹한다. 아버지는 전립선암 말기에 경도 치매에다 당뇨 환자다. 그런데도 여전히 술을 즐겨 마신다.


가끔 후회되는 게 많다며 얇아진 생의 끈을 언제라도 놓아도 되지 않겠냐, 는 마음일까 싶기도 했다가 또 가끔은 가깝게 닥친 생의 마지막이 억울한 듯 고집불통에 당신만 생각하시는 걸 보면 진절머리가 난다.


아버지와 난 평생을 가깝지 않았다. 장남이라며 책임감을 몰아세우셨지만 정작 아버지는 가정에 책임감은 없었다. 늘 술 취한 아버지만 봐야 했고 그런 아버지 때문에 하루하루 아등바등하는 엄마를 보며 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인생 목표로 세웠다. 여전히 아버지는 장남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역정을 내신다. 난 그럴 때마다 숨이 막힌다.


응급실로 달려간 아내는 저혈당 쇼크가 와서 그랬다고 알려 왔다. 그런데 포도당을 맞아도, 초콜릿을 먹어도 혈당이 오르질 않는다고 아침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머리만 대면 잠을 자신다고 걱정하던 엄마의 말과는 달리 아버지는 밤을 꼴딱 새우며 주위 환자들의 안부를 궁금해하셨고, 7번의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 길을 5번을 잃으셨다 한다. 그리고 지리기도 하시고.


결국 아침이 밝고 나서야 잠이 드셨고 아내는 동생에게 보호자의 자릴 넘겨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옷을 갈이 입히며 보니, 아버지 허벅지가 자기 팔뚝보다 얇아졌다고 울컥하는 아내를 보며 이젠 정말 상실의 순간에 가까워졌음을 실감한다. 


아내는 물먹은 스펀지처럼 무거운 몸을 소파에 뉘고 잠이 들었다. 밤새 뭐라도 먹었냐 묻지도 못했는데. 잠든 아내 얼굴을 보며 많이 미안해한다. 불편한 남편 뒷수발도 지칠만한 나인데 시아버지 병수발까지 척척해내면서도 웃어 줘서 더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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