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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규 Oct 15. 2024

보헤미안과 플랑크톤

어떤 일이나 사건을 일으킨 근본적인 이유가 확실하거나 분명하지 않을 때 우리는 ‘원인 미상’이란 표현을 쓴다. 원인 미상의 화재가 발생했다거나 원인 미상의 폭발, 폐사, 통증, 질병 등등 이 말 뒤에는 기이하고 변스러운 어감의 단어들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소울이가 떠난 공식적인 이유도 원인 미상으로 기재되어 있다. 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 담당 교사는 일주일 이내에 교육청에 사건의 경위를 보고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일단 ‘원인 미상’으로 보고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나도 한빛나리의 물음에 ‘원인 미상이에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교육부 통계 자료를 보면 지난 2020년에 148명의 초·중·고교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 그중 원인 미상이 정확히 절반에 해당하는 74건이다.

 

그밖에 주요 원인으로는 염세비관, 우울증, 가정불화, 성적비관, 학업 스트레스 등으로 나열되어 있다. 신기한 건 학교폭력이나 집단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은 0건이라는 사실이다. 2020년도뿐만 아니라 지난 5년간의 통계를 보아도 학교폭력은 모두 0건으로 보고되어 있다.


학교 측에서는 소울이의 갑작스런 선택에 대해 그 원인을 병실에 박제되어 있는 엄마로부터 찾으려는 눈치였다. 가정에서 가장 유력한 조력자가 되어야 할 엄마가 그렇게 되어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시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소울이는 엄마로 인해 우울하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빠가 엄마 때문에 우울해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하며, 엄마가 언젠가는 다시 일어설 거라고 굳게 믿었다.

  

사실 학교뿐만 아니라 내 입장에서도 소울이의 선택은 원인 미상이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으로 기억을 되돌려 아무리 꼼꼼히 따져 봐도 소울이가 평상시와 다른 점은 없었다. 사고 1주일 전, 1개월 전, 아니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봐도 내 기억 속의 소울이는 항상 그대로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차려준 밥을 먹은 후 등교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은 후 학원에 가고, 10시쯤 집에 오면 샤워를 하고 나와 잠시 대화를 나눈 뒤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주말에는 나와 함께 요양병원으로 가서 엄마를 보고, 남는 시간에는 애니메이션 주제곡을 피아노로 연주하거나 롤게임을 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 즈음에 특별히 우울해 하거나 고민이 있는 눈치도 아니었다. 사고 나기 이틀 전만 해도 평소처럼 자신이 사고 싶었던 만화 전집을 인터넷으로 주문하곤 만화책들을 정리할 수 있는 책장을 하나 더 사야겠다고 말했다.

  

경찰의 조사 결과는 더욱 의외였다. 소울이 사건을 맡은 담당 형사는 내게 마치 디지털 장의사가 다녀간 것처럼 깨끗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사이버 상에서 이루어지는 학교폭력과 연관이 있을까봐 소울이의 휴대폰을 디지털 포렌식한 결과, 모든 정보가 깨끗이 지워져 있었다는 것.


예를 들면 카카오톡 같은 모바일 메신저 앱에서 주고받은 대화 내용은 기존 정보를 모두 초기화해서 복원이 불가능하게끔 되어 있었다. 에스엔에스(SNS)에 올린 사진은 물론 심지어 다른 사람의 계정에 남긴 자신의 댓글까지도 깨끗하게 없애버렸다. 간단히 말하자면 디지털 세상에서 민소울이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소울이가 감추고 싶었던 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정도로 철저히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선 소울이처럼 디지털 기기에 능숙한 아이일지라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라고 처남은 말했다.

 

그럼 그 오랜 시간 동안 난 아무 것도 모른 채 소울이를 방치한 셈이다. 혼자서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또 지우며 세상을 등질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아주 사소한 일에 분통을 터트리거나 엉뚱한 것에만 신경 쓰고 있었다.


도대체 소울이는 왜 그리 철저히 자신을 감춘 것일까. 왜 떠나는 바로 그날 아침까지 내게 오늘 저녁 메뉴가 무엇이냐고 물으며 환히 웃었던 것일까. 교육청에 보고된 원인 미상보다 내게는 그것이 더 원인 미상이다.


한빛나리와의 면담인지 조사인지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다음날 저녁뉴스를 보고서야 그날 양재역에서 염곡동으로 가는 길이 왜 그리 막혔는지 알 수 있었다.

 

‘택시 앱이 해킹되면서 어제 오후 3시경 서울 양재동에서 대규모 교통 체증이 발생했습니다. 경찰에 의하면 신원 불명의 해커 집단이 택시 앱을 해킹한 후 동원 가능한 모든 택시에 양재동으로의 콜을 요청함으로써 그 일대에 극심한 교통 체증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양재동 일대의 주요 도로가 두 시간 넘게 정체되었으며, 지하철을 이용하려는 승객들로 러시아워가 아닌 시간임에도 지하철이 만원을 이루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택시 앱을 관리하는 업체는 즉시 콜 요청 기능을 차단했지만, 교통 체증을 막지는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왜 하필이면 내가 가는 장소와 그 시간대에 택시 앱 해킹 사건이 발생한 걸까. 혹시 이번 사건도 나와 한빛나리가 의심하고 있는 인물이 관련된 걸까?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나의 인지 편향은 다음 뉴스를 보면서 멈추었다.


‘어젯밤 10시경에는 서울 63빌딩의 전원 시스템이 해킹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해커의 범행 목적입니다. 해커는 63빌딩 전체의 조명을 껐다 켰다 조절하며, 건물 표면 전체를 화면으로 삼아 벽돌깨기 게임을 했습니다. 벽돌깨기 게임은 1980년대에 유행한 블록 격파 게임으로서 전자오락실이나 컴퓨터에서 흔히 접할 수 있었던 게임입니다.


63빌딩의 건물 전체에서 행해지는 진기한 광경을 보기 위해 부근을 지나는 차량들이 서행하는 바람에 한때 올림픽대로와 노량진, 여의도 등의 인근 도로가 정체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보통 해킹의 목적은 주요 정보나 금전을 요구하는 것인데, 시스템을 마비시켜 놓고 단순한 게임을 벌였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한 사례라고 경찰은 밝혔습니다.’

 

대형 빌딩의 전원 시스템을 해킹해 벽돌깨기 게임을 벌인 것은 나와 전혀 상관이 없다. 그로 인해 일시적으로 나타난 부근의 교통 정체 현상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택시 앱 해킹으로 인한 양재동의 교통체증 사건도 나와 전혀 무관한 일이 아닐까? 고개를 돌려 주방 쪽을 보니 창 너머로 63빌딩 창문 곳곳에 옥수수 알처럼 켜진 조명들이 반짝이고 있다.


‘경찰은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는 사회 혼란 야기형 해킹 사고들이 동일범의 소행인지 아니면 모방 범죄인지의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들이 북한의 소행일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정보 관련 기관에서는 미국 재무부와 함께 북한 해커 조직이 관련된 가상화폐를 압수하고 계좌를 동결시켰는데, 이에 대한 보복으로 북한이 여러 가지 수법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디지털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택시앱이나 63빌딩의 해킹은 북한이 개입한 사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풍이야기의 아이템을 훔치고 지하철에서 중년 남성이 폭행당하는 영상을 북한이 해킹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럼 강남의 대로변에 있는 케이사이지니와 요기놀자, 국과수, 한국뇌과학연구원, 누리뉴스에 대한 해킹은? 북한의 짓인데 우연히 나와 관련된 걸까? 


어쩌면 케이사이지니와 요기놀자에 대한 해킹 건은 나와 전혀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CW미디어의 허재현이 저지르고 다닌 악행으로 절망의 나락에 빠진 사람이 어디 나 혼자뿐이겠는가. 그렇게 따지면 국과수나 한국뇌과학연구원에 대한 해킹도 마찬가지다. 나와 관련된 사안에 대한 해킹만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그 기관 전체에 대한 공격이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해킹 사건에 대해 보도하는 뉴스를 보면서 문득 플랑크톤을 떠올린다. 물속을 부유하며 물고기의 먹이가 되는 바로 그 플랑크톤 말이다. 플랑크톤의 어원은 ‘방랑자’라는 뜻의 그리스어다. 파도나 물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흘러 다니기 때문이다.

 

보헤미안 같은 방랑자들은 자신의 의지로 인해 이곳저곳 이동하며 살지만, 플랑크톤의 방랑은 스스로의 운동능력이 없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물의 흐름에 저항할 힘도 없으며 방랑에 대한 스스로의 의지도 없다.


한빛나리의 말대로라면 보라매날다는 소울이의 컴퓨터에서 시작해 국내외의 아이피를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보라매날다는 보헤미안처럼 자신의 의지로 이동한 걸까 아니면 플랑크톤처럼 그저 어떤 흐름에 몸을 맡긴 것일까.


나는 왠지 보라매날다의 방랑에서 플랑크톤의 모습이 연상된다. 전기의 흐름에 몸을 맡겨 온통 0과 1의 물결로 출렁이는 디지털의 바다 속에서 끊임없이 떠다니는 애처로움 같은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보라매날다가 만약 자신의 의지대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면 플랑크톤이 아니라 거북손이나 따개비가 되었으면 한다. 바닷가의 울퉁불퉁한 바위 표면에서 파도를 견뎌내며 찰거머리처럼 붙어 있는 고착생물 말이다. 그들도 어린 시절에는 물을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떠다니는 플랑크톤이었지만, 적절한 장소를 찾으면 찰싹 달라붙어 그 어떤 세찬 파도에도 휩쓸리지 않고 평생을 그곳에 정착해서 산다.


단풍이야기나 지하철, 전광판, 택시 앱, 빌딩 전원시스템 같은 곳으로 더 이상 흘러 다니지 말고, 앞으로는 한 곳에 단단히 뿌리내린 거북손이 되어 보려무나.


  나는 오랜만에 ‘발자국99’를 열어 오늘의 날짜를 클릭한다.

      

  2022년 4월 27일 수요일 날씨 : 맑음

  제목 : 플랑크톤의 슬픔

  보헤미안이 자기다운 삶을 살기 위한 자유 의지로서의 방랑자이라면, 플랑크톤은 스스로의 운동능력이 없어서 물의 흐름에 따라 흘러 다니는 수동적 의미의 방랑자이다. 만약 너도 플랑크톤처럼 이리저리 흘러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이젠 방황을 끝내고 바닷가 암초 위의 거북손처럼 정착해보렴. 어디에 어떤 형태로든 네가 굳건히 존재하기만 한다면 아빠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소울이가 떠난 이후, 아니 아내가 박제된 이후 처음으로 일기를 쓴 나는 오후에 완성한 칼럼 원고를 업로드 하려고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를 연다. 내가 사용하는 문서 작성 프로그램에도 자체적인 맞춤법 검사 기능이 있지만,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있는 맞춤법 검사기로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원고를 업로드 하는 게 내 오랜 습관이다.


오늘 업로드 할 칼럼의 제목은 ‘금성에서 발견된 또 하나의 생명체 증거’이다. 미국과 영국의 과학자들이 금성의 구름 속에서 생명체의 존재 증거를 밝힌 새로운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나는 문서 작성 프로그램 속의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마우스로 복사한 뒤 맞춤법 검사기의 빈 화면에다 붙여넣기를 한다.


그런 다음 검사하기 버튼을 클릭하자 원고는 다음과 같이 변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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