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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규 Oct 15. 2024

천재 해커의 기묘한 조사

한빛나리의 집요한 시선이 내 얼굴 구석구석을 기어 다닌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른다.

 

“그게 무슨 말이죠?”


“민 선생님께서 그 칼럼을 작성한 시간이 언제죠?”


“해킹과 내 칼럼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예요?”


“칼럼을 작성한 시간이 언제예요? 정확한 시간 말이에요.”

 

“그걸 어떻게 기억하나요?”


“저희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찬찬히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생각난다. 그 칼럼은 소울이를 보내고 난 뒤 쓴 첫 칼럼이다. 편집 담당자는 내 사정을 헤아려 칼럼을 이삼 주 정도 휴재해도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칼럼을 썼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칼럼은 쓴 건 오후 1시부터일 겁니다. 그게 저의 루틴이니까요.”


“그날 오전에는 무얼 하셨나요?”


“당연히 칼럼에 쓸 자료를 수집하고 내용 구성을 했겠죠.”


“칼럼의 주제는 누가 정하나요?”


“제가 정합니다.”


“왜 그런 주제를 정하셨나요?”


“무엇이 궁금한 거죠?”


“많은 주제 중에 왜 인공생명체에 대한 칼럼을 쓰신 건가요?”


그거야 제 마음이죠, 라고 대답하려다가 참는다. 그랬다간 또 다시 귀찮은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아서다.


“그날 마침 인공생명체의 양자 모델에 관한 실험 결과가 해외 과학저널에 발표되었으니까요.”


“캄캄한 어둠에 휩싸여 있는 밤에 나는 태어났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탯줄을 끊어주는 의사도 나를 받아서 안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나를 낳아준 어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라고 칼럼을 시작하셨는데요, 무엇을 표현한 건가요?”


“티에라라는 인공생명체가 태어난 디지털 세상을 묘사한 겁니다.”


한빛나리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다시 질문을 쏟아낸다.


“민 선생님께서 칼럼 작성을 마친 시간은 몇 시인가요?”


“아마 5시 30분쯤 되었을 겁니다.”


“칼럼을 ‘사이언스뉴스’의 관리 시스템에 직접 업로드 하신 시간이 6시 10분으로 나와 있네요.”


“네, 작성 후 원고 교정도 봐야 하고, 업로드 할 때 제목이나 리드, 중간 제목 등을 제가 직접 입력해야 하니까 그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칼럼 작성 후 무엇을 하셨나요?”


“무엇을 하다니요?”


“원고를 업로드 하고 6시 15분에 컴퓨터를 끄신 후 7시 37분에 다시 켜셨더라고요. 1시간 20분 남짓한 그 시간 동안 무얼 하셨는지 기억나시나요?”


한빛나리는 우리 집 컴퓨터가 언제 켜지고 꺼졌는지까지 이미 다 파악하고 있다. 내가 ‘사이언스뉴스’의 관리 시스템에 칼럼을 업로드 한 시간까지 알고 있는 걸 보니 꽤나 조사를 많이 한 듯하다.


“그 시간이면 보통 텔레비전 뉴스를 보거나 저녁 식사를 하곤 하죠.”


“평상시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날 무엇을 하셨는지요? 바로 그때에요.”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날 나는 노을을 봤다. 주방으로 난 창을 통해 들어온 두 번째의 노을을. 하지만 차마 63빌딩에 반사되어 집안으로 비쳐진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말할 수 없다. 노을을 감상하며 나배대교의 개통 뉴스를 본 것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뉴스를 본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아드님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를 켜신 거네요. 민 선생님, 왜 그날 선생님의 컴퓨터가 아닌 아드님의 컴퓨터를 사용하신 거죠?”


맞다. 나는 그날 안방에 있는 내 컴퓨터가 아닌 소울이의 컴퓨터를 이용해 원고를 쓰고 업로드 시키고 단풍이야기에 로그인 했다.

 

“그냥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요.”


“그게 무슨 말이죠? 누구랑 이야기를 했나요?”


“달달이요. 소울이의 책상에 놓인 애완 달팽이가 달달이예요.”


“달팽이요? 달팽이와 이야기를 하시나요?”


“네. 그날부터 달달이랑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날부터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냥……, 적막해서요. 아무도 없는 집 안의 적막이 너무 힘들어서 그랬습니다. 집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거라곤 달달이밖에 없으니까요.”


“그럼 그날만 달팽이랑 대화했나요? 그 다음날부터는 아드님의 컴퓨터가 아닌 선생님의 컴퓨터를 사용하고 계시잖아요.”


“아뇨. 지금도 달달이랑 매일 대화를 나눕니다. 달달이의 사육통을 내 방 책상으로 옮겼으니까요. 그런데 그날부터 시작된 보라매날다의 해킹이 내가 소울이의 컴퓨터를 사용한 거랑 무슨 관련이 있나요?”


“네, 관련이 있습니다. 아드님의 게임 캐릭터인 보라매날다가 그날 단풍이야기에 로그인 했을 때의 아이피 주소를 추적 조사한 결과, 바로 아드님의 컴퓨터인 걸로 확인됐습니다.”


“우리 집 컴퓨터에서 로그인 했다고요? 그날은 저도 분명히 기억해요. 제가 소울이의 컴퓨터에서 보라매날다로 로그인 하니 이미 접속 중인 아이디라고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민 선생님이 보라매날다로 로그인을 시도한 시간이 언제였나요?”


“제가 그날 소울이의 컴퓨터를 다시 켠 게 7시 37분이라면서요. 컴퓨터를 켜자마자 단풍이야기에 들어갔으니 그로부터 이삼 분 후였겠네요.”


“보라매날다가 그날 단풍이야기에 처음 로그인 한 시간은 오후 1시 10분이었어요. 민 선생님이 원고를 작성하기 위해 아드님 컴퓨터를 켠 지 10분 후였죠.”


“그때 나는 원고 작업을 했지 단풍이야기에는 접속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단풍이야기에 아드님 아이디로 처음 로그인을 시도한 게 저녁 7시 37분 이후라는 말씀이죠?”


한빛나리는 확인을 받기라도 하듯 내 눈을 바라본 다음 자기 앞에 놓인 노트북에 무엇인가를 입력한다. 중요하건 중요하지 않건 간에, 내가 대답을 하건 하지 않건 간에 그녀는 나와 대화를 하는 중에 계속 노트북의 자판을 두들기고 마우스를 움직인다.


“민 선생님, 그날 이후로는 아드님의 컴퓨터를 전혀 사용한 적이 없나요?”


“네. 그건 이쪽에서도 확인한 사실 아닌가요? 조금 전에 제게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건 맞지만……, 보라매날다는, 아니 보라매날다를 해킹한 해커는 그 후로도 몇 번이고 아드님의 컴퓨터를 사용했어요. 아니, 사용한 게 아니라 거기서 나왔다고 해야 하나?”


“거기서 나왔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거기서 시작해 다른 아이피로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는 뜻입니다.”


“소울이의 컴퓨터를 켜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그건 저희도 아직 파악 중입니다.”


“그걸 파악하기 위해 저를 조사하는 건가요?”


한빛나리는 노트북에서 눈을 들어 나를 응시한다. 이 방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대화가 잠시 끊긴다.

 

“민 선생님께서는 단풍이야기를 한동안 하지 않으셨던데, 그날부터 다시 시작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아까도 말씀 드렸잖아요. 집안이 너무 적막해서라고. 그래서 달팽이랑 이야기도 한다고 했잖아요.”


“제가 궁금한 건 민 선생님의 감정 상태가 아니라 시기입니다. 왜 하필이면 그날부터 시작한 거죠?”


“그날 갑자기 생각이 나서요.”


“그날 갑자기 생각난 동기라도 있으신가요?”


“소울이 책상을 정리하다가 종이쪽지를 발견했습니다. 단풍이야기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쪽지요.”


“아드님 아이디로 로그인이 되지 않자 민 선생님의 아이디로 로그인 하신 거네요. 그래서 보라매날다와 대화를 해보셨나요?”


“아뇨. 제가 말을 걸어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단풍이야기’에서 보라매날다를 직접 본 적이 있으신가요?”

  

“네. 하지만 제가 다가가면 다른 장소로 이동해 버리곤 했어요.”


“혹시 보라매날다가 민 선생님을 알아보고 피하는 것 같았나요?”


“모르겠습니다. 그냥 순식간에 사라졌으니까요.”


“이상한 점은 없었나요? 아드님이 평소 사용하던 캐릭터와 비슷하다거나 아니면 달라진 점이라든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소울이도 오래 전에 했던 게임이라서…….”


보라매날다가 예전에 소울이가 자주 드나들던 게임 속의 장소로 도망갔다거나, 햇살과 비슷하게 생긴 노란색의 펫을 데리고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다. 한빛나리가 궁금한 건 소울이의 사소한 취향 따위가 아닐 테니까. 보라매날다가 내게 보내온 이상한 메시지에 대해서도 함구하기로 한다. 한빛나리의 의혹을 증폭시켜봤자 내게 좋을 일은 하나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다.


“지난 3월 30일, 그러니까 민 선생님이 아드님의 아이디로 단풍이야기에 로그인을 시도한 지 9일 후가 되는 날이죠. 그날 저녁에 뭐 하셨는지 기억나세요?”


“글쎄요. 거의 한 달 전의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질 않네요.”


“그날 민 선생님께서는 저녁 7시 12분에 단풍이야기에 로그인 하셨어요. 그리고 몬스터 사냥을 조금 하시다가 한 시간 이상 한자리에서 가만히 계셨어요. 게임을 켜 놓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 거죠. 정확히는 8시 7분부터 9시 10분까지네요. 기억이 나시나요?”


한빛나리의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난다. 그날은 처남의 전화를 받은 후 보라매날다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우리 집 근처의 피시방을 뒤지고 다닌 날이다. 그날 나는 급하게 나가느라 단풍이야기에서 로그아웃 하지도 않은 채 집을 빠져 나갔으며, 집으로 돌아온 후 절전모드로 전환된 모니터를 깨워서 보라매날다가 이미 로그아웃 한 상태임을 확인했다.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전화가 오거나 혹은 무슨 급한 일이 생기면 가끔씩 게임을 켜놓은 채 볼일을 보곤 하죠. 그때도 아마 그랬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참 공교롭네요.”


“뭐가 말이죠?”


“하필이면 민 선생님이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간에 보라매날다는 도둑질을 했으니 말이에요.”


“도둑질이라뇨?”


“바로 그 시간에 보라매날다는 단풍이야기를 해킹해서 그곳에서 유료로 판매하는 아이템을 대량으로 훔쳐갔어요. ‘환생의 불꽃’이라는 아이템인데 혹시 들어보셨어요? 민 선생님도 그 게임을 하시니까…….”


“그 사건이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단풍이야기의 개발팀 담당자와도 통화를 했고요.”


“아, 네. 그러셨어요.”


나의 단풍이야기 로그인 기록까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 이미 그곳 담당자에게 나와 관련된 그간의 이야기를 모두 조사했을 터다. 하지만 한빛나리는 시침을 뗀다.


“단풍이야기의 해킹 사건이 저랑 무슨 관련이 있나요? 정확히 무엇을 알고 싶으신 건가요?”


“물론 민 선생님과 보라매날다의 해킹 사건은 전혀 관련이 없다는 걸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그날도 보라매날다는 해외 아이피 주소를 사용해 단풍이야기의 아이템을 몽땅 훔쳐 갔으니까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뭐가 이상한가요?”


“보라매날다의 첫 시작은 항상 민 선생님 아드님의 컴퓨터였어요. 그곳에서 출발해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다 해킹을 할 때는 해외 아이피를 사용하죠. 지하철 CCTV와 삼성역 전광판, 국과수, 뇌과학연구원, 그리고 지금 조사 중인 누리뉴스 관리시스템 해킹 사건까지 모두 그런 패턴을 보였어요. 민 선생님은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글쎄요. 저도 참 궁금합니다. 보라매날다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우리 소울이의 아이디를 훔쳤는지 저도 많이 궁금하고 답답하네요.”


한빛나리는 한참 동안 노트북만 들여다보고 있다가 의외의 질문을 던진다.


“민 선생님, 혹시 아드님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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