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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규 Oct 15. 2024

미니 뇌에 의식이 생기다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아직 살짝 덜 찬 상현달이다. 서울의 밤하늘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천체는 달을 비롯해 금성, 화성 등이 고작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것은 바로 지금의 달과 금성, 화성이 아니다. 달은 약 1.3초 전, 금성은 2분 20초 전, 화성은 3분 2초 전의 모습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4.22년 전의 모습만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5세기 이후 밤하늘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고 있는 북극성은 약 400년 전의 모습이다. 우리가 올려다보는 밤하늘의 우주는 온통 과거뿐이다.


엄밀히 따지면 밤하늘뿐만 아니라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은 과거다. 아무리 가까운 것이라도 빛이 움직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있으니 과거의 모습일 수밖에 없다. 1미터 앞에 있는 사람의 모습도 사실은 0.000000003초 전의 모습이다.

 

소리는 빛보다 속도가 더 느리니 1미터 앞의 사람이 말하는 소리는 약 0.003초 전의 목소리다. 우리는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10억분의 3초 전의 모습을 보고, 0.003초 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소울이의 모습은 내게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소울이의 0.000000003초 전의 모습과 0.003초 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사진과 동영상 속에서만 보고 들을 수 있는 소울이는 마치 끝없이 팽창하고 있는 우주처럼 그 거리와 시간이 내게서 점차 멀어져 가고 있다.

 

그 머나먼 곳에서 소울이가 내게 전해온 메시지의 흔적을 추적하기 위해 나는 지난 일주일 내내 뉴스를 검색했다. 하지만 지난번의 해킹 사건과 달리 이번 사건을 보도한 언론 매체는 딱 한 군데뿐이었다.


생일 때 지하철을 타고 삼성역으로 이동하는 내내 나를 따라다녔던 ‘아빠, 생신 축하드려요’라는 문구가 해킹(?)으로 인해 생긴 사고라는 뉴스를 올린 곳은 서울시 지하철 관련 뉴스를 전문으로 보도하는 매체다.

 

하지만 이 매체도 서울교통공사의 관리 시스템이 잠시 불안정해져서 열차의 도착 현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안내판에 열차 운행과 상관없는 내용이 송출돼 잠시 혼선을 빚었다는 내용만 간략하게 보도했다. 환승 통로와 승강장, 그리고 지하철 내부의 동영상 광고판이 이상한 광고로 도배되었다는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삼성역의 케이사이지니에 송출된 ‘생일 축하 메시지’ 건과 관련한 기사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나와 함께 그 화면을 직접 목격한 행인들이 자신들의 에스엔에스(SNS)에 혹시 그와 관련된 내용을 올리지 않았나 싶어 검색해봤지만, 역시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요즘 뜨는 해외여행 명소나 맛집, 명품을 싸게 파는 세일 정보 등에 대해서는 열광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옥외광고판과 지하철 곳곳의 수많은 광고판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그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처음엔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어쩌면 이 같은 무관심이 내게는 행운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아야, 아무도 눈치 채지 않아야 소울이가 내게서 멀어져 가는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 후로 소울이는 내게 어떤 메시지도 보내오지 않았고, 모방범죄처럼 잇달아 터지던 해킹 사고에 대한 뉴스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오늘 저녁 메인 뉴스를 장식한 소식은 최석우 박사의 새로운 연구 성과다.


‘부처님오신날을 하루 앞둔 오늘,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기적 같은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한국뇌과학연구원의 최석우 박사팀은 배양해 오던 뇌 오가노이드에서 지능을 지닌 의식이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실험결과를 얻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뇌 오가노이드에서 신생아 수준의 뇌파가 발생했다거나 눈과 유사한 구조체가 발생했다는 보고는 있었지만, 의식 생성과 관련한 연구 결과는 세계 최초여서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의식이 있는 뇌 오가노이드의 개발은 자폐증이나 치매, 그리고 식물인간 등과 같은 뇌 관련 질환의 원인 규명 및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혁신적인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식물인간은 질환이 아니다. 대뇌의 손상으로 의식과 운동 기능을 상실한 상태의 환자를 가리킨다. 식물인간은 질환이 아니라 사람이다. 내 아내는 질환이 아니라 사람이다.


‘최석우 박사팀이 만든 뇌 오가노이드는 의식 작용이 생성되는 영역으로 알려진 전두엽, 측두엽, 후두엽, 두정엽, 대뇌피질, 시상핵 등의 뇌 부위를 각각 배양한 다음 연구진이 개발한 세포융합 기술로 합체시켰습니다. 이 뇌 부위들은 사람의 피부세포를 재설계해서 개발한 줄기세포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해외 유명 연구진이 만든 뇌 오가노이드의 경우 신경세포의 규모가 수 만 개에 불과했지만, 최 박사팀이 만든 뇌 오가노이드는 1000만 개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 박사팀은 이렇게 만든 미니 뇌를 이용해 컴퓨터 프로그램의 코드를 작성하는 코딩 작업은 물론 롤 게임으로 알려진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을 학습시키는 데도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뇌 오가노이드를 이용해 간단한 수학 방정식을 풀게 하거나 고전적인 아케이드 게임을 학습시키는 데 성공한 사례는 있지만, 코딩 작업을 하거나 종합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롤 게임을 한 경우는 이번이 세계 최초입니다.’

 

최석우 박사가 가장 좋아하는 수식어가 ‘세계 최초’이다. 방송사에서 섭외가 오면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서라도 출연하고, 기자들의 연구실 방문을 누구보다도 반기는 그의 최대 관심사는 세상의 주목을 받는 일이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린다. 여기도 최 박사의 새로운 연구 성과에 대해 보도 중이다.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가 취재 기자에 묻는다.


‘그럼 최석우 박사팀이 만든 뇌 오가노이드에 의식이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확인된 건가요?’


최 박사의 연구실 간판이 보이는 곳에 서 있는 취재 기자가 대답한다.


‘전기 펄스로 뇌를 자극하는 방법을 통해 확인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처럼 의식이 없는 뇌에 전기 펄스로 자극하면 전기 에코, 즉 메아리가 매우 단순한 패턴으로 나타납니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단순하게 나타나는 것과 같죠.

 

하지만 전기 펄스로 의식이 있는 뇌를 자극하면 전기 에코가 단순하고 규칙적인 패턴으로 반응하는 무의식적인 뇌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패턴으로 울려 퍼지게 됩니다. 의식이 있기 때문에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전기 활동을 보이는 거죠. 최 박사팀은 뇌 오가노이드에 전기 펄스를 가한 결과 의식이 있는 뇌와 똑같이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전기 에코가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앵커가 다시 묻는다.


‘사람이 만든 미니 뇌에 의식이 있다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을까요?’


기자는 휴대폰 속에 준비한 답을 거침없이 읽는다.


‘전기 펄스와 같은 실험 방법만으로 의식이 생성되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의식은 뇌의 복잡한 네트워크와 화학적 과정의 결과로 생기는 복잡한 현상으로서, 아직까지 그 정확한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때문에 전기 에코의 패턴만 보고서는 이 미니 뇌에 의식이 있는지의 유무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게 과학계의 의견입니다.

 

하지만 최석우 박사팀의 연구 결과는 여러 가지 뇌 장애 관련 질환의 연구 및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뇌가 완전히 기능하지 않는 상태에서 인간의 뇌 장애를 연구하는 것은 마치 인슐린을 생성하지 않는 췌장을 연구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치매 같은 뇌 질환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뇌와 똑같은 오가노이드, 즉 의식이 있는 오가노이드가 필요합니다.’


텔레비전 채널을 다시 돌린다. 이 채널은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 중인데, 화면 밑으로 뉴스 속보라며 최 박사의 연구 성과를 알리는 자막이 떠 있다. 온 나라가 그의 연구에 열광하고 있다. 그는 이제 국민 과학자를 넘어서서 국민 영웅이 되었다.

 

심지어 한 뉴스 매체에서는 최 박사의 이번 연구 성과가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식의 기사를 내놓았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메인을 장식한 뉴스 기사는 온통 뇌 오가노이드의 과학적 지식을 세밀하게 다룬 기사들뿐이다. 그것들만 읽어도 모든 국민이 뇌 오가노이드 전문가가 될 판이다.


최 박사는 기자들의 연구실 방문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 아니라 기자들이 가장 인터뷰 하고 싶어하는 인물이 된 지 오래다. 최 박사는 자신의 소원대로 세상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소원이 너무 지나쳤던 것인지 세상이 최 박사를 주목하는 방식이 약간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연구 결과가 발표된 지 정확히 열흘 하고도 하루 후 그의 연구실에서 함께 일하던 한 연구원이 양심선언을 하고서부터다. 그 연구원은 한국뇌과학연구원의 공개 게시판에 글을 올려 최 박사의 뇌 오가노이드가 전부 줄기세포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일부는 사후 뇌 기증 환자의 진짜 뇌세포를 사용했다고 폭로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양심선언한 그 연구원은 해당 연구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며, 최 박사를 시기해 그런 글을 올렸다는 기사들이 보도되기 시작한 것이다. 최 박사의 지지자들은 한국뇌과학연구원의 정문 앞에서 그 연구원을 사퇴시키라는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

 

또한 사후에 자신의 뇌를 최 박사에게 기증하겠다는 지지자들도 줄을 이었다. 과학계에서도 줄기세포를 분화시켜서 만들었는지 진짜 뇌세포를 사용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최 박사의 놀라운 세포융합 기술이 중요하다는 여론이 우세했다.

 

그런 가운데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뇌의 서로 다른 부위를 새로운 세포융합 기술로 합체시켰다는 최 박사의 발표가 사실이 아니라는 증언이 게시판에 올라왔다. 만약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논문 조작에 해당되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러자 여론은 반반으로 갈라졌다. 뇌 오가노이드에 의식이 생긴 것은 뇌의 서로 다른 부위가 저절로 합체된 증거라며 최 박사를 옹호하는 여론과 이와 반대로 아무리 의식이 생긴 것이 사실일지라도 연구 과정을 속였다면 엄연한 조작이라는 여론이 팽팽히 맞섰다.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결정적 증언이 터져 나온 것은 처음 양심선언이 나온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최 박사와 공동 연구를 진행한 대학 교수가 뇌 오가노이드에서 의식이 감지된 시점이 논문과 다르다고 발표했다.

 

최 박사팀의 뇌 오가노이드와 연결된 컴퓨터 시스템은 방화벽으로 외부 통신 시스템과 철저히 차단되어 있다. 그런데 지난번의 한국뇌과학연구원의 해킹 사건 때 그 컴퓨터 시스템도 뚫려버렸다는 것.

 

최 박사는 논문에서 의식이 감지된 시점이 해킹 사건 이전이라고 기술했지만, 실제로는 해킹 사건 이후에 의식이 갑자기 감지되기 시작했다는 게 그 대학 교수의 증언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최 박사는 의식의 감지 시점을 속여서 논문을 작성한 셈이다.


이 증언이 주목받은 이유는 해킹에 의한 뇌 오가노이드의 오염 여부 때문이다. 만약 해킹에 의해 오염되었다면 최 박사가 생성되었다고 발표한 의식은 뇌 오가노이드에서 자연스레 발생한 게 아니라 해킹에 의한 외부의 자극으로 발생했을 수도 있다.

 

최 박사의 연구 결과에 대한 내부인의 폭로가 잇달아 터지자 여론은 급격히 돌아섰다. 최 박사의 논문을 게재했던 국제 학술지는 논문 조작 여부에 대해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으며, 국내 언론들도 최 박사의 연구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의식은 뇌의 복잡한 네트워크와 화학적 프로세스가 작용해 생기는 현상으로서, 아직까지 그 정확한 메커니즘이 이해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최석우 박사팀이 만든 뇌 오가노이드에서 의식이 생성되었는지의 여부 또한 현재의 과학 수준으로는 입증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의식의 본질은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으며, 의식이 뇌의 어떤 물리적 또는 생화학적 특성에 의해 발생하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또한 비교적 측정과 모델화가 가능한 지능과 달리 의식은 주관적이며 더 복잡합니다. 최석우 박사팀의 뇌 오가노이드에서 관찰되는 활동과 기능이 만약 지능보다 더 복잡한 의식 수준의 움직임이라면 실체가 모호한 게 사실입니다. 만약 그것이 외부 해킹에 의해 발생한 의식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한국뇌과학연구원은 최석우 박사에 대한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최 박사의 연구실과 관련이 없는 과학자들로 특별조사단을 구성했습니다. 특별조사단은 최 박사 연구실에서 관련 자료와 데이터를 모두 수거했으며 필요할 경우 최 박사를 직접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서는 지난 3월경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뇌과학연구원에 대한 해킹이 최석우 박사팀의 연구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수사를 개시했습니다. 사이버테러대응센터 관계자는 최 박사팀의 컴퓨터 시스템을 대상으로 디지털 증거분석 작업을 하는 한편 당시 해킹에 사용됐던 해외 아이피를 특정해 단서를 추적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내가 KBSI를 떠나면서 가장 우려했던 일이 기어이 터지고야 말았다. 지금까지 최 박사와 함께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면 내가 저들 대신 양심선언과 폭로와 증언을 하는 자리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국민영웅에서 하루아침에 조사를 받는 입장이 된 최 박사는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와 그동안 쌓인 피로를 핑계로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정확한 해명은 하지 않은 채 환자복을 입고 링거 주사를 꽂은 상태로 병실 침대에 드러누운 최 박사의 모습이 공개되자, 그의 연구실에 사후 뇌 기능을 하겠다고 약속한 강성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그의 행태에 분노하는 이들이 생겼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최 박사의 놀라운 연구 성과를 시기한 세력의 음모라고 주장하며, 최 박사를 여전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처남이 내게 아뜩한 소식을 전해준 건 그로부터 일주일 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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