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기 위해 끊어내는 ‘갈’의 찰나에
‘갈’의 초상은
옛 이야기를 끊어내는 목마름,
‘갈함(渴)’이다.
아가의 숨결처럼
야리야리한 연록의 새 입술로 와서
거친 숨을 토해내던 한때,
그 힘의 무성함을 끊어내기 전
그 찰나와
그 마지막의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가을은
미치도록 분주하고
변덕스럽게 고요하다.
누군가는 스쳐 지나가고,
누군가는 그 안에 오래 머문다.
나는 언제나 그 끝자락에서
손에 쥔 것들을
천천히 내려놓는 쪽이었다.
무성했던 생의 가지들이
스스로를 태워 낙엽이 되듯,
삶도, 사랑도
언젠가는 갈함으로 접어든다.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기기 위해 끊어내는
그 찰나의 순간.
우리가 걸어온 계절들이
이제 천천히,
침묵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 침잠 속에는,
분주한 마음과,
차분한 결심이 함께 녹아 있다.
나는 이제,
그 모든 순간의 기억을 가슴에 안고,
다음 순환을 꿈꾼다.
더는 붙들지 않아도 괜찮은,
슬픔조차 아름다운
가을의 초상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