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곁에 없는 사랑하는 이에게-
“제발, 말꼬리 좀 잡지 마.”
그의 말은 늘 그랬다.
'담배 좀 줄여라.'
'늦으면 늦는다고 전화 한 통만 해라.'
'집에 들어오자마자 먼저 씻어라.'
시작은 이렇게 늘 사소했다.
애교 섞인 말로,
농담 섞인 말투로 시작된 대화는
어김없이 싸움으로 커졌다.
‘왜 이게 안 되지?’
손톱만 한 불씨는
그의 말과 표정을 타고 굴러 커졌고,
그의 몸짓을 타고 또 굴러,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그의 말 하나하나가
내 머릿속에서 조각나 분해되기 시작했다.
그와 난
아주 작은 고무줄 하나의 양 끝을 잡고
당기고, 또 당기며 버텼다.
그리고 그 조각들은
소환된 과거를 껌딱지처럼 데리고 와
가슴 언저리에 엉겨 붙고
목덜미를 타고 올라온
내 말꼬리로 바뀌어,
그에게 꽂혔다.
참 많이도 다투었다.
서로의 마른침에 엉켜 붙은
원망의 딱지와 차오르는 분노는
독사의 눈과 혀가 되어
그를 향해 내뱉어졌다.
그리고,
돌아서려는 그의 등 뒤에도
나는 길게, 아주 길게
말꼬리를 늘어뜨렸다.
그 순간을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멈출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는
무능력한 내 모습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미웠다.
사실은…
스스로에게 더 화가 나 있었다.
알고 있었다.
이건 아니란 걸.
하지만 그는
길게 늘어진 말의 꼬리,
그 한쪽 끝을 놓고
그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리고 놓아버린
그의 손에서 튕겨 나온 고무줄 끝은
모질게도 나의 마음을 할퀴었다.
나는 아직도
그 아픔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러나 여전히,
내 손에 칭칭 감겨 있던 말꼬리의 끝도
만만치 않게
그의 마음에
아픈 생채기를 남기곤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생채기를 받아줄 사람조차
더는 내 곁에 없다.
말꼬리를 잡는다는 건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말과 행동에
내게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지
그도 알아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그 말의 꼬리를
다시 그에게 던지는 건,
“나도 아프다”는 울부짖음이었다.
내게 뭐라도 해달라고—
변명이라도 좋으니—
나를 좀 바라봐 달라는 절규였다.
놓을 수 없었다.
그 말도,
그 말에 담긴 그의 마음도.
놓아버리면
그와 나 사이 모든 것이
사라질까 겁이 났다.
나는 그저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나, 지금 너무 아파.”
“그러니까 제발, 나 좀 봐줘.”
“나를 안아줘.”
“아직도 너를, 많이 사랑해.”
그래서 나는
자꾸 말꼬리를 잡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누구도 더 이상
내 말꼬리를 잡아주지 않는다.
그 외침은
그를 향한 마음뿐만은 아니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랑에 서툴고,
그러나 누구보다 절실했던
한 사랑을 향한 간절함.
'아직도 너를 많이 사랑해'
그 말 하나 남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