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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여자 아이

1.3%의 ENTJ 강한 여자로 커가는 중입니다.

by 두니

한창 유행하던 노래 속

‘최진사댁 셋째 딸’로 태어났지만,

난 착하고 예쁜 셋째 딸은 아니었다.
버려지지 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법을

스스로 배워가던 중이었다.

위로는 두 언니, 아래로는 두 동생.
부모님의 외출 앞에서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애매한 자리에 놓인 여분의 아이였다.

서럽게 울며
“나도 데려가... 나도 갈래...”
하고 매달렸지만,
나를 떼어내려는 엄마의 손길은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강하고 단호했다.

그러다 막내로 남동생이 태어났고,
딸 넷을 키우기 벅찼던 엄마는
나를 창신동 고모님 댁에 '잠시' 맡기셨다.
세 살 터울의 두 언니들과
세 살 어린 여동생 사이에서
나는 ‘맡기기 좋은 나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이해하기엔

나는 너무 어렸다.

전차가 다니던 시절.
그 전차는

나를 엄마에게 데려다 줄 줄 알았고,
나는...

오랫동안 그 전차를 타고 싶었다.

얼마 후,

엄마는 나를 다시 데려오셨고
그때부터 나는

‘말 잘 듣는 아이’로 변해갔다.


엄마가 두 동생의 손을 잡고

외출하실 때도,

두 언니가 놀이터에 놀러 나갈 때도

나는 혼자 남았다.


따라가고 싶어

안달을 하며 울고 애원해도

소용없을 거란 걸

난,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서러움을

꾸역꾸역 목 안으로 삼키는 방법은

억지로, 저절로 터득되었다.
왈칵 터져 나오는 눈물을 들키기 싫어

숨어서 울었다.


야단맞는 언니들의 행동을 보며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 무언지를 배웠고,

둘째 언니가

내 손등을 할퀴어 피가 났을 때도

나는 그저 울기만 했다.


두 동생이 장난을 칠 때,

서로 싸워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 때,

난, 거기에 있지 않았다.


두 언니가 미워지고,

두 동생이 귀찮아지고,

버려졌다는 설움이 북받쳐 오를 때,

그리고

엄마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할 때.

나는 다락방으로 숨어들었다.


어느 날,

이런 나를 예쁘게 보신 아버지는

다락 한쪽에 작은 창 하나를 내주셨고,

다락방은 나 만의 우주가 되었다.


이렇게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겨낸

다섯 살의 어린 여자 아이는

다락방에서

자기를 만들어 갔다.


1.3%의 ENTJ 강한 여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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