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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빠진 그릇이 되고 싶다.

- 난, 누군가의 이 빠진 그릇이 되고 싶다. -

by 두니

살다 보면,
우리는

참 많은 것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필요한 것,
필요하지 않은 것.

좋아하는 것,
그저 그런 것.


그렇게 모인 것들이

어느새 우리 공간에 스며들고,
같이 숨을 쉬며 살아갑니다.

오늘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참 평범한 그릇 하나입니다.


색도 없고,
모양도 특별하지 않은,
그냥…

말 그대로 평범한 하얀 그릇이었죠.

참 아끼던 그릇이었습니다.


색도, 모양도 단정하고

조용한 그 모습이
어떤 음식도

다 받아주는 착한 그릇 같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조심성 없는 제 손이

그릇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툭—
한쪽 이가 빠졌습니다.


"아… 아깝다."
그 말 한마디가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그릇은

주방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

언젠가 버려질 날만을 기다리며

잊혀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의미 없는 시간이 지나간

어느 날,
요리를 하다가
흙 묻은 양파를 놓을 데가

마땅치 않아 두리번거리던 순간—
그 그릇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양파를 담아봤죠.

신기하게도… 참 잘 어울렸습니다.


흙도, 양파도, 이 빠진 그릇도….
주저할 필요 없이

막 쓰다 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요.

그날 이후,
그 그릇은 자꾸만 손이 가는

부담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과일과 채소 껍질을 받아주고,
지저분한 생선 가시도 품어주고,


때로는

펜이며 클립까지….

무엇이든, 어디든, 말없이 받아줬죠.

그릇은
싱크대에서 식탁 한가운데로

서재에서 다시 침실까지….

그리고
여행을 갈 때조차 저와 함께 합니다.

‘어차피 깨진 그릇’이라며
한 번만 쓰고 버리려던 그 그릇이—
지금은
제 하루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버렸어요.


이 빠진 그릇은
한 번도 장식장에 올라간 적 없습니다.
빛나는 날에 쓰인 적도 거의 없죠.


하지만 저는 압니다.
그릇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를요.


잔 긁힘에 거칠어졌지만,
더 자주 손이 가고,

그래서 그냥 '나' 같습니다.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내어주며
내 하루를 편하게 해주는 그릇.

그 그릇처럼—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자주 손이 가는….
꼭 필요하진 않지만 없으면 허전한….
눈부시진 않지만

부담 없이 편히 머무는 사람….


그릇은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릇이 내게 가르쳐준 것이 있습니다.


온전해야만

아름다운 건 아니라는 것.


부서진 뒤에도,

충분히 소중해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이 ‘이 빠진 그릇’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그런 그릇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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